지난봄이었다. 내가 연세대 교수가 된 해에 입학생이었던 제자들과 점심을 같이했다. 헤어지면서 종로 2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한 제자가 뒤따라오더니 "혼자 댁까지 찾아가실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럼, 찾아가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라고 했더니 "제 선친께서는 85세 때부터 집을 찾아오지 못하곤 해서 전화번호 명패를 달고 다니곤 했습니다"라는 걱정이었다. 90 전후가 되면 자주 있는 일이다. 노인성 치매의 초기 현상일 것이다.
내 친구도 강연을 하다가는 줄거리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같은 얘기를 중복하곤 했다. 그다음부터는 강연을 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친구는 심한 건망증 때문에 아내나 딸이 동행하면서 도와주곤 했다. 실수를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말을 잊어버리는 데도 순서가 있다. 고유명사, 보통명사, 형용사, 부사, 동사 순으로 기억이 안 난다.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먼저 잊어버린다. 형용사를 잊기 때문에 문장 표현이 줄어든다. 동사는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는다. 배가 고프다든지, 머리가 아프다는 말은 죽을 때까지 뒤따른다.
내 아내는 오래 병중에 있었다. 최근의 일들은 깡그리 잊어버리면서도 옛날 일은 기억하곤 했다. 자주 만났던 내 친구 A교수도 92세 때 "김 교수, 이게 몇십년 만이야!"라며 엉뚱한 인사를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동창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내가 "우리가 92세까지 살 줄은 몰랐지요?"라고 했더니, "우리가 그렇게 오래 살았나?" 하면서 놀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런 얘기를 하면서 함께 웃기는 했으나 눈시울은 뜨거워졌다. 왜 그런지 친구가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았다. 나도 그렇게 되겠지만….
내 선배였던 R교수의 얘기가 생각난다. 아내가 치매를 앓았는데 워낙 성격이 착했기 때문인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쪽 옷장의 옷들을 저쪽 옷장으로 옮겨 놓았다가는 다시 순서를 바꾸어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을 종일 계속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남편이 들어오면 "누구시지요? 우리 선생님은 학교에 가고 안 계시는데요"라면서 놀라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90 고개를 넘기면서는 가장 무서운 병이 치매라고 걱정한다. 내가 잘 아는 목사는 "이다음에 치매에 걸려 '하느님이 어디 있어? 누가 보았나?'라고 말할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투병하는 아픔보다도 치매가 더 걱정이기도 하다.
이런 일들을 주변에서 보곤 하기 때문에 나는 지방에 강연을 가게 될 때에는 누군가와 동행하는 절차를 밟는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금년부터는 흠 없는 가족이나 제자에게 내 강연을 객관적으로 듣고 평가해 달라고 부탁한다. 실수하거나 청중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치매에만 걸리지 않는다면 1~2년 더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내 친구도 강연을 하다가는 줄거리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같은 얘기를 중복하곤 했다. 그다음부터는 강연을 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친구는 심한 건망증 때문에 아내나 딸이 동행하면서 도와주곤 했다. 실수를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말을 잊어버리는 데도 순서가 있다. 고유명사, 보통명사, 형용사, 부사, 동사 순으로 기억이 안 난다.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먼저 잊어버린다. 형용사를 잊기 때문에 문장 표현이 줄어든다. 동사는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는다. 배가 고프다든지, 머리가 아프다는 말은 죽을 때까지 뒤따른다.
내 아내는 오래 병중에 있었다. 최근의 일들은 깡그리 잊어버리면서도 옛날 일은 기억하곤 했다. 자주 만났던 내 친구 A교수도 92세 때 "김 교수, 이게 몇십년 만이야!"라며 엉뚱한 인사를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동창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내가 "우리가 92세까지 살 줄은 몰랐지요?"라고 했더니, "우리가 그렇게 오래 살았나?" 하면서 놀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런 얘기를 하면서 함께 웃기는 했으나 눈시울은 뜨거워졌다. 왜 그런지 친구가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았다. 나도 그렇게 되겠지만….
내 선배였던 R교수의 얘기가 생각난다. 아내가 치매를 앓았는데 워낙 성격이 착했기 때문인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쪽 옷장의 옷들을 저쪽 옷장으로 옮겨 놓았다가는 다시 순서를 바꾸어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을 종일 계속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남편이 들어오면 "누구시지요? 우리 선생님은 학교에 가고 안 계시는데요"라면서 놀라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90 고개를 넘기면서는 가장 무서운 병이 치매라고 걱정한다. 내가 잘 아는 목사는 "이다음에 치매에 걸려 '하느님이 어디 있어? 누가 보았나?'라고 말할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투병하는 아픔보다도 치매가 더
이런 일들을 주변에서 보곤 하기 때문에 나는 지방에 강연을 가게 될 때에는 누군가와 동행하는 절차를 밟는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금년부터는 흠 없는 가족이나 제자에게 내 강연을 객관적으로 듣고 평가해 달라고 부탁한다. 실수하거나 청중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치매에만 걸리지 않는다면 1~2년 더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