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문항 [만물상]
수능 수학 29번, 30번 문제는 대입 수험생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수학 30문항 중 가장 어려운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을 마지막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구인이 풀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배점도 가장 많은 4점짜리여서 이 문제를 푸느냐 여부로 대학 간판이 바뀐다. 단답형이지만 주관식이라 찍을 수도 없다.
▶수학만이 아니다. 수능 과목당 적어도 1문제, 많게는 4문제 정도가 킬러 문항이다. 지난해 11월 수능에서 사회탐구 영역 사회·문화 10번 문항의 오답률은 무려 97.5%였다. 입시 업계 등에서 자체 채점을 통해 분석한 결과였다. 남녀 연령대별 평균 임금이 나온 표를 제시하면서 자료에 대한 옳은 분석을 고르라는 문제였다. 수능 객관식은 5지선다이므로 정답률이 20%는 나와야 정상이다. 전문가들은 “수험생들을 헷갈리게 하는 함정까지 파 놓은 것”이라고 했다.
▶2019학년도 수능에선 ‘국어 31번의 난’이 있었다. 국어 영역인데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활용하는 제시문을 읽고 답을 찾아야 했다. 호기심에 풀어본 사람들은 몇 번 읽어도 무슨 문제인지부터 파악하기 어려운 암호문 같았다고 했다. 객관식인데 오답률은 81.7%에 달했고 일선 교사들이 화를 냈다. 결국 교육과정평가원장이 고개 숙여 사과하는 초유의 사태로 번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킬러 문항과 관련해 “약자인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며 “수십만 명의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한 부적절하고 불공정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다른 쪽에서는 변별력을 주기 위해 킬러 문항을 출제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래야 상위권과 최상위권을 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상위권도 모자라 최상위권을 또 갈라야 하는 것인지, 수능은 대학 수학(修學) 능력을 보는 것인데 이런 문제들이 정말 수학 능력과 관련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서울 강남에서는 킬러 문제를 푸는 학원들이 신흥 강자로 부상했다. 킬러 문항이 시험의 변별력을 높이는 쉬운 방법이지만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원인이기도 하다.
▶입시 전문가들에게 킬러 문항 출제가 불가피한지 물어보았다. 수능이 4과목인 데다 가중치·가산점 등이 다르기 때문에 킬러 문항이 없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유럽 등에서는 대입 시험에서 우리나라처럼 ‘킬러’ 운운하는 최고난도 문항은 없다고 한다. 킬러 문항이 입시 편의 때문이라지만 이렇게 우리 아이들을 ‘교육 지옥’에 빠뜨려 나라와 사회, 개인들이 얻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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