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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을 정치 쇼에 이용하지 마라

빠꼼임 2024. 9. 29. 06:28

세월호 유가족을 정치 쇼에 이용하지 마라

[아무튼, 주말]
[서민의 정치 구충제]
2014년 가슴 아픈 사고
野의 가스라이팅 멈춰야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일러스트=유현호

“지금이라도 유가족 보시는 앞에서, 유가족 와 계시니까, 사과하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이진숙 방통위원장 청문회 첫날, 조국혁신당 이해민 의원이 한 질문이다. 실제로 청문회장 앞쪽에는 노란색 외투를 입은 유족 한 분이 마이크 앞에 서 있다. 이진숙은 “저희로선 최선을 다했지만, 미흡했다면 사과드립니다”라고 말하지만, 이해민은 “그 정도로는 되지 않습니다”며, 자신이 준비한 사과문을 모니터에 띄운 뒤 그대로 읽으라고 한다. ‘나 이진숙은 MBC 보도본부장 당시 전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안긴 ‘전원 구조’라는 세월호 참사 당시 오보와 2차 가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시간을 10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에 마음 졸이던 때, 난데없는 ‘전원 구조’ 소식이 보도됐다. 뒤늦게 오보임을 알게 된 유족들이 그 보도에 얼마나 마음 상했을까 싶다. 그런데 그 책임을 이진숙에게 묻는 것은 온당할까? 당시 보도본부장이었으니 전혀 책임이 없진 않겠지만, 실상을 파헤쳐 보면 저 사과 요구는 번지수가 틀렸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최민희 위원장이 이 후보자가 선서문을 제출할 때 그를 다시 불러 얘기하고 있다. /뉴스1

첫째, ‘전원 구조 오보’를 최초로 낸 곳은 MBC가 아니다. 시작은 인터넷판 기사들, 그 뒤 MBN이 방송사 중에서는 가장 먼저 ‘전원 구조’를 자막으로 내보냈고, MBC와 YTN도 자막으로 뒤를 잇는다. ‘전원 구조’를 자막이 아니라 공식 보도로 내보낸 건 연합뉴스가 11시 25분, KBS와 MBC가 11시 29분, SBS는 11시 32분이었다. 둘째, 전원 구조 보도는 본부장에게 보고되지 않고 나갔다. 당시 이진숙 본부장이 한 말이다. “현장의 지나친 속보 경쟁과 여러 (정보) 소스로 혼선이 빚어졌다.” 그러니까 이건 재난 상황에서 데스크에게 보고하지 않고 기사를 내보내는 우리 언론의 관행을 탓할 일이지, 이진숙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건 부당하다. 셋째, 오보의 진범도 이미 밝혀졌다. MBN 기자에게 전원 구조 소식을 들은 MBC 노모 기자가 회사에 있던 박모 기자에게 이를 전달했고, 박 기자가 만든 그래픽을 이용해 특보를 진행한 이는 부조정실에 있던 윤모 기자. 이들은 모두 민노총 언론노조 소속이다. 그러니 이진숙이 아니라 언론노조를 탓하는 게 이치에 맞다.

희한한 일은 그다음 벌어졌다. 오보의 주역인 언론노조가, 그리고 그들 편에 선 좌파가 엉뚱하게도 이진숙이 오보의 주범인 듯 몰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세월호 특조위는 진짜 범인인 언론노조 대신 이진숙을 불렀고, 그 뒤에도 ‘이진숙=전원 구조 오보’란 등식을 만들고자 온 힘을 다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새빨간 거짓말도 수백 번 반복하면 진짜로 착각하기 마련이다. 혜경궁 김씨 사건과 친형 강제 입원 사건 등의 혐의로 조사받을 때마다 휴대폰 비밀번호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물론, “압수 수색이 들어오면 비밀번호를 잊어버렸다고 하면 된다”는 말을 무슨 대단한 노하우인 것처럼 얘기한 자는 이재명 대표지만, 사람들은 ‘비밀번호’ 하면 한동훈 대표를 떠올린다. 민주당이 수천, 수만 번 ‘한동훈=비밀번호’인 양 떠들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전원 구조 오보에는 여러 사람이 연루돼 있고, ‘단원고 전원 구조’를 무전으로 전한 경찰도 그중 한 명이지만, 좌파는 앵무새처럼 ‘전원 구조=이진숙’을 외쳤다. 드디어, 그 노력이 결실을 볼 때가 왔다. 2024년 7월, 이진숙이 방통위원장으로 지명된 것이다. 탄핵한다고 협박해 현 정부에서 임명한 방통위원장 두 명을 내쫓은 전력이 있는 야당으로선 세 번째 탄핵을 하려면 앞의 두 번보다 더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했을 것이다. 조국당 이해민이 ‘전원 구조’를 핑계로 이진숙을 윽박지른 건 그런 차원이었다.

 
용혜인(왼쪽부터) 기본소득당 대표, 이해민 조국혁신당, 김현 더불어민주당, 윤종오 진보당 의원이 지난 1일 국회에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을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뉴스1

다시 청문회장으로 돌아가자. 이해민의 사과 요구에 이진숙은 “이미 마음을 담아 사과했다”고 말한다. 이해민이 질문한다. “이걸 (사과문을) 읽을 수 있습니까?” 이진숙은 “없다”고 한다. 이해민은 잠시 이진숙을 노려보다 다시 묻는다. “진짜 없습니까?” 이진숙이 없다고 하자 이해민은 “대단하시네요”라고 비아냥댄다. “저 사과문은 챗GPT가 작성했습니다. 기계도 작성할 수 있는 사과문, 못 읽겠습니까?” 이진숙이 답변하려 하자 이해민은 “예, 아니요로 답변하라”고 소리치더니, 마이크 앞에서 대기 중이던 유가족에게 발언권을 준다. 유가족이 입을 연다. “그런 사과는 다른 분들한테 하십시오. 저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말을 마치자 이해민은 유족에게 들어가라고 한다.

그 광경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우리 사회가 세월호 유족들을 배려하기는커녕, 이렇게 정치질에 이용하는 게 맞을까? 이진숙이 방통위원장으로 임명된 7월 31일에도 그랬다. 정의연과 민언련 등 좌파 시민 단체들이 이진숙 사퇴를 외칠 때, 세월호 유족도 그 안에 있었으니까. 더 안타까운 점은, 세월호 유족들이 분노하는 대상이 잘못됐다는 데 있다. 사고 직후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알고 싶었던 것은 왜 이런 사고가 발생했는지였다. 이를 위해 검경합동수사본부 조사와 감사원 감사, 국회의 국정조사가 있었고, 2015년부터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조사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박근혜 정부에서 한 조사를 믿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끈질기게 외쳤다. “진실을 인양하라!”

그들의 노력 덕분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세월호 진실을 낱낱이 규명하겠다”고 수십 차례 천명한 문재인이 대통령이 됐다. 이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가 조사를 했고, 2018년부터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조사 활동을 이어갔다. 여기에 더해 검찰의 세월호 특별수사단의 조사가 있었고, 세월호 영상녹화장치(DVR)가 조작된 흔적이 있다면서 특별검사가 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조사에도 불구하고 세월호의 진실은 여전히 미완이다. 세월호 때 숨진 단원고 교사 아버지의 말이다. “세월호 참사 10년째를 맞는 동안 공식 조사가 세 차례 있었지만 방해 공작과 제한된 정보 속에서 진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이 경우 누구한테 분노하는 게 맞을까? 숨겨진 진실이 있는 것처럼 유족들을 가스라이팅한 문재인일까, 아니면 전원 구조 오보 당시 본부장이던 이진숙일까. 너무 쉬우니 다음 질문으로 글을 마친다. 진실 규명 하겠다더니 나 몰라라 한 문재인과, 유족을 자신의 정치 쇼에 이용한 이해민 중 누가 더 나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