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15구간 (황장재-울치재)
♣♣이번 구간은 황장재에서 울치재 까지 긴 코스이다. 거리는 약 31km정도이며, 산행예정시간은 12시간20분 정도이다. 어제 까지만 하더라도 일기예보상 경남,북 지방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어서 조금은 걱정도 되었지만, 구간 종주 내내 잔뜩 흐린 날씨에 오후 들어서는 바람이 오전보다 더 강하게 불었다. 이 구간은 중간에 마땅한 탈출로가 없어서, 좀 일찍 산행을 시작하여, 해가 떨어지기 전에 울치재 까지 구간 종주를 완료하는 것이다.
오늘 구간에는 명동산, 봉화산, 맹동산등 이름 있는 산이 3개나 되며, 이름 없는 600~800m대의 봉오리들도 많다. ♣♣
오늘 산행시작은 6시 30분이다. 황장재는 未明이다.. 헤드 랜튼을 할까 말까 하다가
그냥 헤드 랜튼 없이 오르기로 했다. 황장재는 청송군과 영덕군의 경계로서 34번 국도가 지난다. 황장재는 청송군 농산물 특판장이 있으며, 오늘 산행시작 시점은 휴게소 맞은편 국도를 확장하면서 절개지 낙석 방지용 팬스를 설치해 놓은 중간지점에 개구멍이 뚫려 있다. 여기를 기어서 올라야하나, 청송 쪽 50m아래에 있는 팬스와 팬스사이에 공간이 있어서 여기서부터 올랐다.
산행시작한지 5분이 채 안되어서 묘지 2기가 있는 능선마루이다. 잡목이 군락을 이루고 소나무 숲으로 이어지며, 오르락 내리락을 거듭하니 큰 묘지 2기가 나타난다. 큰 묘지 직전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태풍에 쓰러졌는지 길을 가로 막는다. 힘겹게 오르니 532봉이다.
(06:58),,오늘 해가 뜨는 시각이지만, 구름이 짙어서 일출 장면은 볼 수가 없다.
532봉 부터는 화매재까지는 내리막이다. 우측 과수원 철조망을 오른쪽으로 바짝 끼고 내리막을 가니 벌목 현장이 나타나고 지방도 911번 2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여기가 화매재이다. 화매재는 영양군 석보면과, 영덕군 영해면 경계이다. 경계에는 영양군에서 세운 영양군의 상징인 영양고추를 크게 그려놓은 선전탑이 세워져 있으며, (07;48), 화매재를 알리는 비닐 표지판이 나무에 걸려있다.
화매재에서 영덕방향의 포장도로 바로 옆 첫 번째 과수원 주인이 밭 입구에 합판 쪼가리에다가 경고문을 써 놓았다. 하도 무시무시해서, 여기에 그대로 옮겨 적는다.
==경 고== 과실 도적이 심하여 이를 방지책으로 과수 나무 밑에 디딜포를 설치하였으니 발목을 절단하지 않도록 경고 함, 그 책임은 주인은 지지 않으며 이제 까지 잃은 과실 대금을 변상 조치하도록 고발합니다.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바랍니다. 과수원 주인 백====
이제까지 산행하면서, 인삼밭, 송이밭 식물원, 묘목원 옆을 지나가 봤지만, 이 정도의 겁나는 경고문은 처음 봤다. 차라리 지뢰를 묻어 두는 게 더 낫지 않을는지~~~~
화매재에서 10여분 올라가면 능선봉오리이다. 이어서 능선 봉오리를 지나 오르막이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틀어서 진행하면 고압 철탑이 나온다(08;29). 여기서부터 계속 오르막이다. 힘들게 올라와 왼쪽 편 봉을 두고 우회한다. 계속 오르막이다.
고압 철탑을 20여분 지나니 시멘트 포장이 된 임도가 나타난다. (08;48)..임도를 버리고 정맥길로 들어서니 애국지사 묘가 나타난다. (묘 상석에는 “”愛國志士南坪文公永和之墓“”“
라고 씌여 있다.) 상석 좌우편으로는 시조부터 현재까지 가족 명단과, 명치대학을 졸업하고 항일투쟁기록과 영양 석보면 포산리에서 순국했다는 기록도 있다//(09;10)
특이한 것은 애국지사 묘 옆에 같은 남편 문씨 묘가 있는데 여기에는 남편보다 먼저 간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헌사와 헌비 반대편에는 사모와 회한이라는 글귀가 씌어져 있다.
여기 그대로 옮겨 적는다.
“”“思慕와 悔恨
아내 吳貴任 에게
여보!
당신이 먼저간 자리가 이렇게도 클줄은 미쳐 몰랐소 병원서 투병하시던 당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통절합니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기에 이못난 사람을 만났소 결혼초 나는
열등감에서 오는 갈등과 청장년시절 한때 당신의 속은 얼마나 썩혔소 지금와서 통회 한들
무슨 소용이 겠소 여보 진정미안하오 용서 해주오 남은 여생 당신에게 부끄럼 없게 살아
가겠소
여보!
당신이 늦게나마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기에 소천하셨소 이못난 사람도 하나님께 더욱 충성하며 죽어 당신과 만남을 하늘 나라에서 당신과 함께 이생에서 못다한 정나무며 용서받지 못한 죄 사함받고 당신과 함께 영원하고 싶소 여보! 임아! 당신!
만날때까지 안녕하소서
2001년 청명 한식날에 못난 지아비 덕채가 드립니다.
(비문 그대로 옮겨서 띄어쓰기 등이 좀 맞지 않음)
(통회((痛悔))란 말은 가톨릭에서 이르는 고백 성사의 하나로서 지은 죄를 진심으로 늬우치는 일) (청명한식은 유교 사상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신교에서 청명 한식을 찾는다는 것은 어딘가 앞뒤가 좀 ~~~~)
((===이 비문은 사진을 찍어 와서 여기서 풀어서 쓴것임))
애국열사 묘를 지나서 10여분 오르니 당집이 나타난다 (09;16).. 이어서 오르막 능선을 계속 오르면 산불로 시커멓게 타 죽은 소나무들이 보기 싫도록 이어진다. 산불에 타 죽은 소나무들 사이를 지나서 630.5봉에 오르니 09시 53분이다. 오늘 산행 시작한지 3시간 20여분 만이다. 정상 표지석은 없고, 국립지리원에서 안내문 표지판이 설치되어있다.
630.5봉을 5분여 지나면 평산 신씨 무덤이 나타난다. 3분 정도 더 나아가서 봉오리에서 우측 8부 능선을 끼고 가면 또 고압 철탑이 나타난다(10;05). 계속 오르막이 이어진다. 멀리 고압철탑이 3개나 바라보인다. 좀 지나니 좌측 편은 송이 밭인지 소나무에다가 양철 조각으로 쓴 입산금지 표지판이 나온다. ((이 지역은 송이산 관리인 외는 타인 입산금지“”“라고 되어 있슴))
송이 밭을 10여분 지나서 임도와 만난다. 임도는 비포장 임도이다(11;06),, 여기서 부터는 명동산 정상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명동산 정상에는 무인 산불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있다(12;18). 무인 산불 감시카메라 설치 공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합판 쪼가리가 어지럽게 널려져 있다. 모처럼 합판을 깔고 앉아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산행하면서 이렇게 편한 자리에서 점심을 먹기는 처음이다. 점심은 15분 만에 끝이 났다. 오후가 되면서 바람은 더 세차다, 완전히 강풍이다.
명동산 정상에서 내리막길로 내려오니 봉화대가 나온다. 봉화대는 석축으로 쌓아올렸으며, 여기 저기 기왓장도 돌아다닌다. 몇 년 전 까지 제사를 지냈는지 새끼로 금계를 친 흔적이 나타난다(13;39).. 이어서 6분 정도 오르니 봉화산 정상을 알리는 비닐 표지판이 나무에 걸려있다(13;47)..
이어서 30여분을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임도와 만난다(14;07)..시멘트 포장도로 옆에 낙동정맥 영양구간 전체보기“”“라는 큰 안내 표지판이 길 옆에 쓰러져 있다. 살펴보니 기둥이 양쪽 다 부러져서 눠 버린 것이다. 돈 들여서 설치했으면, 관리도 제대로 하는 게 맞을 것인데 영양군청에서는 뭘 하는지 모르겠다. (산행 끝나면, 영양군 홈피에 건의를 해야겠다고 생각 함).표지판 옆에는 영덕국유림사무소에서 설치한, 삼의3.4km, 대리6.5km, 마당두들9.3km라는 이정표도 세워져있다. 오늘 산행 중에 첫 이정표를 보니 반갑기도 하다
포장 임도는 버리고 비포장 임도로 접어 들었다. (비포장 임도 옆에는 200국유임도라는 표석이 나타난다) . 임도를 따라가다가 갈대 밭 사잇길로 접어들어서 30여분을 가니 맹동산 정상에 있는 산불 감시초소가 나타나고, 임도 옆에는 태양열 발전 시설물??과 맹동산 상봉
(807.5m)라는 비닐 표지판이 걸려있다(14;44),,
오늘 산행 시작한지도 8시간이 지나서 다리도 좀 무겁다. 여기서 간식도 먹고 쉬어 가기로 했다. 10여 분 간 휴식이다. 산행하면서 점심 먹는 것 외에 10분 정도 쉬기는 처음이다.
맹동산 정상에서 내려오니. 이제부터는 초원지대이다. 목장이다. 쇠파이프로 만든 문이 있으나 열려 있어서 그냥 들어갔다. 계속 철조망이 사방으로 쳐져 있다. 길이 헷갈린다. 아마 선행자들도 헷갈리는지 시그널을 달아 놓지 않았다. 외곽 철조망 안쪽으로 폭 10m되는 철조망이 또 설치되어있다 . 철조망이 쇠 파이프 문으로 잠겨서 있어서 타고 넘어서 철조망과 철조망 가운데 길로 들어갔다. 한 참을 내려가니. 이제는 폭 10m되던 철조망이 확 넓어 졌다. 아마 이 철조망은 소를 몰아넣을 때 사용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15;45)
길이 더 헷갈린다. 낙동정맥 종주 중에 두 번째 크게 헷갈리는 지점이다. 지도 정치를 하고 앞으로 갈 길을 확인했다. 목장지대를 벗어나서 멀리 회색 큰 물통이 보이는 고랭지 채소밭 우측으로 가는게 정확하다. 고랭지 채소밭에 이르니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그냥 먼지 천지이다. 고랭지 채소밭에 올라서 왼쪽편(서쪽)을 바라 보니 K2 목장 관리사가 보인다(16;01)이어서 오르내림을 반복하니 멀리 울치재가 부연 먼지 속에 바라보인다(16;33). 이어서 고랭지 채소밭은 지나 40여분 만에 당집이 나타난다. 오늘 두 번째 당집이다. 이 당집은 올해 보름에도 제를 올렸는지 새끼줄과 새끼 줄 사이사이에 박아 넣은 흰 종이도 그대로이다(16:44)..당집을 지나서 10여분 만에 울치재와 만났다.
오늘 산행 끝점이다. 산행시작한지 10시간30여분 만이다. 당초 산행예정은 12시간 정도 잡았으나, 1시간 30여분 당겼다.
다음 구간은 울치재에서 아래허리재 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