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길 떠나는 가족’ 그리고 ‘까마귀가 있는 밀밭’
[김황식의 풍경이 있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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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중섭을 안 것은 1986년입니다. 당시 법원이 서울 서소문에 있을 때 우연히 근처 호암갤러리에서 열리는 이중섭 특별전을 관람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독특한 작품 세계, 한국과 일본으로 헤어진 가족, 가난·병고와 요절 등 불우한 인생 역정을 알게 되어 이중섭을 안타까워하며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새, 닭, 소, 게, 벌거벗은 아이들과 가족, 별로 서양화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대상을 소재로 삼아 자유롭게 그려낸 순진무구한 작품은 우리 마음을 참 따뜻하게 합니다. 특히 궁핍함 속에서 엽서, 담배 포장용 은종이에 참을 수 없는 듯 그려낸 것은 단순한 작품 활동이 아니라 아내와 두 아들에 대한 사랑 표현으로 그가 살아 있음의 근거이자 이유로 보였습니다.
2011년 5월에는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한 길에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신설 미술관으로, 이름에 걸맞게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근처에 있는 이중섭 가족이 살았던 집을 만날 수 있어 좋았습니다. 6·25 동란 중 피란하여 1.5평 남짓한 방 한 칸을 얻어 네 식구가 살았다는 집입니다. 참으로 옹색한 방 한 칸이었지만 그래도 온 가족이 살을 부대끼고 살았기 때문에 이중섭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을 성싶었습니다.
그 후 경제적 곤궁 때문에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그들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으로 그림을 그려내다 수년 후 40세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떴습니다. 그의 작품 ‘길 떠나는 가족’이 그의 마음을 잘 표현한 것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남편은 소달구지를 끌며 행복에 겨워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보고, 아내와 두 아이는 소달구지 위에서 꽃을 뿌리고 비둘기를 날리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중섭 가족을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그에겐 가족이 함께하는 삶이라면 고단한 삶조차도 축제의 즐거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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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다른 화가가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불우한 생애 등 많은 점에서 이중섭과 닮았습니다. 그도 생전에는 작품 한 점도 변변히 팔 수 없었지만 세상을 뜬 후에 대중의 사랑을 받는 유명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저는 2013년 독일 체재 후 귀국을 앞두고 암스테르담의 고흐 미술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그리고 그가 죽기 전 70일 동안 살았던 파리 근처 오베르 쉬르 우와즈 마을을 둘러보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그에 대한 관심과 연민의 마음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 마을에서 사주는 사람도 없는 그림을 하루에 한 점 이상 그려낸 열정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였습니다.
이해할 듯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살 직전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 그렸다는 ‘까마귀가 있는 밀밭’ 현장인 마을 뒤편 언덕의 들판에서, 많은 사람이 그림과 현장을 비교해보며 서성거리다가 근처에 있는 고흐의 묘소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사이가 좋았던 동생 테오와 함께 나란히 누웠기에 덜 외로워 보이는 고흐의 묘소에서, 사람들은 안타까움을 조금은 덜어냅니다.
두 천재 화가가 사후에 누린 영광을 생전에 조금이라도 나누어 누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세속적 상상을 해보지만, 예술은 세속 저편의 일이기에 다 부질없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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