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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 “뒤늦은 1위, 1위, 1위

빠꼼임 2023. 1. 25. 07:39

윤하 “뒤늦은 1위, 1위, 1위... 몰카인 줄 알았어요”

‘사건의 지평선’으로 인기 모은 가수 윤하

입력 2023.01.24 21:37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윤하는 “대중적인 코드와 제 취향이 서로 좀 먼 것 같다. '사건의 지평선' 이전에도 '기다리다' 등 뒤늦게서야 빛을 본 자작곡이 많은 편이었다"며 웃었다. /오종찬 기자

“처음엔 몰래카메라인 줄 알았어요.”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가수 윤하(본명 고윤하·35)는 여전히 잘 믿기지 않는단 표정이었다. 자작곡 ‘사건의 지평선’이 지난해 ‘역주행 흥행’의 대명사가 된 소감이다. 2021년 냈던 정규 6집을 작년 3월에 재발매하면서 새로 추가 수록한 이 곡은 당시에도 평론가들 사이에서 ‘명작’으로 극찬받았다. 하지만 짧으면 2분대의 아이돌 댄스곡이 상위권을 다수 차지한 요즘 음원 사이트에서 밴드 사운드가 중심인 5분 길이 이 노래는 처음에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멜론 차트 첫 진입도 140위에 그쳤다.

변화의 시작은 지난해 6월쯤부터. 각종 야외 음악축제와 대학 축제에서 이 곡의 고음을 시원하게 내지르는 무대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였다. “속이 뻥 뚫린다” “요즘 보기 드문 완벽한 라이브” 등 감탄이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지니·멜론·벅스·바이브 등 국내 음원 차트 1위로 껑충 뛰어올랐고, 윤하에게 15년 만의 지상파 음악방송 1위를 안겨줬다. “어느 날부터 자꾸 대학 축제들이 이 곡을 불러달래요. 라이브로 부르기에는 어렵게 쓴 곡이라 큰일 났다 싶었죠.(웃음)”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윤하는 “대중적인 코드와 제 취향이 서로 좀 먼 것 같다. 발매 후 뒤늦게서야 빛을 본 자작곡이 많은 편”이라며 웃었다. /오종찬 기자

‘수상할 정도로 천문학을 사랑하는 가수’란 별명도 생겼다. 관찰자와 소통할 수 없는 블랙홀의 시공간 경계면을 일컫는 사건의 지평선을 비롯해 6집 대다수 곡이 제목과 가사를 천문과학 용어에서 따와서다. “본래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걸 좋아한다. 유튜브 시청 기록 사진도 전부 새까맣다. 다 우주라서.” 윤하는 웃으며 “사건의 지평선은 어느 순간 내 곁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져 있지만, 또 막 찾아보고 싶지 않던 모순적인 마음, 동시에 그런 과정이 나의 성장에 필요했구나 깨달은 바를 담은 곡”이라 했다.

그는 이 곡을 “팬데믹 완화의 최대 수혜곡”이라고도 불렀다. “마스크 쓰고 일어나지도, 대답도 못 하며 박수만 치던 참 이상한 시절”을 지나 “마침 무대 흥이 오르기 시작한 때 곡을 선보였다”는 것. “지난해 4년제 대학 축제는 1·2학년이, 2년제는 아예 전교생이 대학에 와서 경험한 첫 축제였죠. 가사도 다 외우고 있더라고요. 그 에너지 덕을 본 거죠.”

“돈·대중성 생각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만든 곡이라 더 뜻깊다”고도 했다. “보통 아름다운 일은 돈을 쓸 때 나오고, 돈 벌 때는 다른 이야기잖은가. 그런데 회사 대표님부터 프로듀서까지 ‘윤하다운 앨범을 만들자’며 전폭적으로 지원해 줬다. 전 과정이 마치 동화 같았다. 비현실적이어서”라며 웃었다.
싱어송라이터 윤하. /오종찬 기자

그렇게 택한 ‘윤하다움’은 이렇게 압축된다. 밴드 사운드가 기반인 팝록. 데뷔 초 ‘오디션’부터 ‘혜성’ ‘비밀번호 486′ 등에서 직접 피아노를 치며 선보여왔다. 기타는 기타의, 베이스는 베이스의 할 일을 하는 밴드의 조화로운 소리에 대한 숭배가 윤하에게 있다. 물론 “수십년 전 유행한, 촌스럽고 도태된 장르로 느끼면 어쩌나 걱정도 있었다”고 했다. 한 번은 가요계 선배에게 “록의 시대가 올 거 같다” 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단다. “록은 올 듯 올 듯 한 번도 온 적이 없어. 대한민국에선.” 그만큼 이 곡의 인기가 “친구, 가족들이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나를 예쁘다며 사랑해주는 느낌이어서 감동이었다”고 했다.

2004년 일본에서 먼저 데뷔한 윤하는 내년 데뷔 20주년을 맞는다. 2001년부터 일본 활동을 시작한 보아와 함께 한류 1세대로도 주목받았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부담을 좀 덜자고 말해 주고 싶다”고 했다. “참 예민했어요. 연습 시간이 적으면 라이브 방송 나가는 것도 싫어했죠. 타협하고, 자아를 잃는 것 같아서요. 사실은 겁이 많았던 거죠.”

그는 최근 알게 된 과학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진화는 사실 특별한 게 없답니다. 만화 포켓몬스터 캐릭터들은 진화하면 강력해지지만, 우린 그냥 환경에 잘 적응해 살아남은 자들이 진화를 이루는 거래요. 과거에는 막 열심히 해서 이뤄낸 결과에 뿌듯해하는 게 자존감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이젠 그 과정을 즐기는 것 자체가 중요하단 걸 깨달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