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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나이도 올라간다

빠꼼임 2023. 2. 18. 08:14

[만물상] 청년의 나이도 올라간다

입력 2023.02.18 03:18
 
흰머리가 많아지면서 곳곳에서 “아버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늙었나’ 하는 느낌에 마음이 상했다. 그 무렵 지하철에서 누군가 난데없이 “이봐, 청년”이라고 해 놀랐다. 쳐다보니 자리를 비켜 달라는 어르신이었다. 그게 마지막 들어본 “청년” 소리였다.
/일러스트=박상훈

▶몇 년 전부터 시골 마을 청년회가 회원 자격을 65세로 올리기 시작했다. 원래 59세였다. 60세에 청년회에서 밀려나면 65세 노인회 가입까지 5년을 겉돌아야 한다. 60~65세들이 다시 ‘청년’ 자격을 얻게 됐다. 그들 처지를 배려해서가 아니다. 웬만한 시골은 상당수가 65세를 넘긴 주민이다. 마을의 궂은일을 하는 청년회는 회원이 없어 고사 직전이다. 조직 존속을 위해 불가피한 기준 상향이다.

▶청년의 사전적 의미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이다. 청년기본법은 청년의 기준을 ‘19세 이상 34세 이하인 사람’으로 정했다. 신체적 성장은 20대 초반에 끝난다. 하지만 의학 발전으로 ‘무르익은’ 상태가 오래간다. 정신적 성장은 끝이 없다. 기준은 정하기 나름이란 얘기다. 최근 지방자치단체에서 청년의 기준을 40대 중후반으로 올리고 있다고 한다. 49세까지 청년인 곳도 있다. 지역에서 청년이 줄어드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요즘 49세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청년이다.

▶한국보다 20년 앞서 고령화가 시작된 일본은 청년 기준을 올리는 대신 45~65세에게 ‘주쿠넨(熟年·숙년)’이란 새 이름을 붙였다. 청년의 후반기에 해당하는 ‘무르익은 시기’란 뜻이다. 40년 전에 지은 이름인데 이제 일상화됐다. 이 말을 만든 건 일본 광고회사였다. 고령화로 돈 쓰는 연령대가 20~30대에서 40~60대로 이동하자 ‘숙년’이란 이름으로 타깃층을 만들어 광고를 집중한 것이다. 이들이 지금 일본 최대 소비층이다.

▶한국 광고회사는 25~49세 시청률을 따로 집계한다. 광고 효과가 좋은 연령층이라는 것이다. 한국 역시 고령화로 이 연령층을 올린다고 한다. 실제 5060세대가 가진 돈이 더 많다. 일본의 숙년(45~65세) 경제에선 뷰티, 건강, 여행, 의료, 주택, 금융 등 대부분 산업 분야에서 새 부가가치가 생겼다. TV 화장품 광고에 60대 모델이 나오고, 40년 전 아이돌 스타가 지금도 스타다. 나라 분위기가 칙칙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노화는 불가피한 자연 현상 아닌 치료 가능한 질병이라고 하는 세상이다. 지금 속도로 건강 수명이 늘어나면 청년 기준을 또 올리는 시기가 곧 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