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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도 원양어선 태우는 '참치왕'

빠꼼임 2025. 5. 16. 10:41

[만물상] 손자도 원양어선 태우는 '참치왕'

 
1957년 이승만 당시 대통령(왼쪽 두번째)이 지남호가 처음 잡은 참치 앞에서 기념촬영하는 모습.

1957년 6월 최초의 원양어선 ‘지남호(指南號)’가 부산항을 출항했다. “남쪽으로 배를 몰아 부(富)를 건져 올려라”라는 뜻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작명했다. 원래 미국산 중고 시험조사선이었다. 대만·필리핀·싱가포르 해역에서 참치 조업을 시도했지만 허탕을 쳤다. 동승한 미국인 기술 고문이 허리를 다쳐 대만에서 하선한 탓에 선원들은 외국 책을 보면서 낚싯줄을 던져야 했다. 싱가포르의 한국인 무역상에게 돈을 빌려 기름을 채운 뒤 인도양까지 가서야 첫 조업에 성공했다.

일러스트=이철원

▶지남호가 출항 108일 만에 참치 10t을 싣고 부산항에 귀환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참치(실제는 새치)를 비행기로 공수해 경무대 뜰에 걸어놓고 기념 촬영을 할 정도로 국가적 경사가 됐다. 1970년대 들어 원양어선이 850척, 선원이 2만3000명에 이를 정도로 원양어업은 주요 수출 산업이 됐다. 원양 수산물이 총수출의 5%를 차지했다. 원양어선을 3년만 타면 집을 산다고 할 정도로 선원들 수입도 좋았다.

▶1959년 남태평양으로 출항한 제2지남호의 항해사는 훗날 세계 최대 참치 선단을 거느린 ‘참치왕’이 된다. 김재철(90) 동원그룹 명예회장이다. “고기를 가득 싣고 사모아로 돌아가는 길이다. (중략) 엊그제까지도 성난 파도가 쳤는데 오늘은 만선 귀항을 축하라도 하는 듯 잔잔하구나.” 김 회장이 동생에게 만선의 기쁨을 전한 편지 글이 36년간 중고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 김 회장이 1982년 ‘참치캔’을 만든 덕분에 참치는 국민 음식이 됐다. 명절 때면 참치 선물 세트가 30만개씩 팔렸다.

 

▶김 회장은 장남이 대학생일 때 4개월간 원양어선을 태웠다. “좋은 경영자 되려면 노동의 가치를 알고, 말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충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아들에 이어 김 회장의 손자 김동찬(25)씨도 이달 말 원양어선을 타고 참치 조업에 나선다고 한다. “인생의 짐은 무거울수록 좋다. 그럴수록 인간은 성장한다”는 김 회장의 말에 그 이유가 담겨 있을 것이다.

▶한국은 한때 미국, 일본과 더불어 3대 어업 강국이었다. 1990년대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태국 등 후발 주자들이 대거 등장한 데다, 각국이 어업 자원을 보호하려고 원양어선 조업료를 대폭 올리고, 쿼터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원양 업계는 고부가가치의 횟감용 참치 ‘수퍼 튜나’를 개발하고, 2㎏에 100만원씩 받는 북대서양 참다랑어 조업에 나서는 등 활로를 찾으려 애쓰고 있다. “역사를 만드는 건 도전뿐”이라는 김 회장의 말에 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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