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 12

무박2일 걷기

일몰부터 일출까지… 무박2일 걷기, 무념무상 극기테스형(히포크라테스)은 말씀하셨다. “우울하면 걸어라.” 그래도 우울하면? “더 걸어라.”해 질 녘, 부산 다대포해수욕장에 1300여 명의 남녀가 모여들었다. 밤새 걸을 요량으로. 무박 2일, 풀코스 56㎞ 걷기 행사 ‘오륙도(56道) 투나잇’이 열렸던 것이다. 낙동강을 따라 대저생태공원을 지나 수영강 등등을 넘고 넘어 해운대해수욕장까지 도달하는 여정. 강원도 춘천부터 제주도에서까지 인파가 몰려왔다. 연령 폭도 넓었다. 심지어 중학생까지. 일몰과 함께 일제히 걸음을 뗐다. 역사는 밤에 이뤄진다던가.해넘이를 바라보며 장거리 걷기 체험에 나선 참가자들. /정상혁 기자무박 2일 걷기, 이름하여 ‘나이트 워크’는 전국에서 궐기하고 있다. 걷기 열풍에 더해 야경까지..

자 료 2025.04.12

짝사랑도 직업병?

짝사랑도 직업병?식물분류학자 허태임씨의 일터는 주로 정식 등산로가 아닌 곳에 있다. /마음산책혼잣말로 식물 이름을 정확하게 고쳐 부르는 사람이 있다. 식당에서 일행이 “고들빼기 무침이 맛있다”고 하면 한 점 집으며 ‘고들빼기보다 벌씀바귀랑 벋음씀바귀가 더 많네’ 하고 속으로 말한다. 세 식물은 아주 비슷하게 생겼고 같은 장소에서 어울려 살며 뿌리가 길고 쓴맛이 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구별하지 않고 나물로 쓴다.“나물 중에서 취나물을 제일 좋아한다”고 누가 말하면 ‘다 같은 취나물이 아닙니다. 참취와 분취와 서덜취가 섞여 있어요’라고 중얼거린다. 목련이 꽃을 활짝 피웠다며 봄꽃 개화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보고는 ‘저건 백목련이지’ 하고, 유채밭인 줄 알고 들어간 상춘객 무리를 건너다보며 ‘아이고, 그건 배추..

자 료 2025.04.12

실버타운 일기 (7)

90에 나는, 일탈을 꿈꾼다오늘은 내 주변 노인들의 이야기. A는 암 병동에 입원 중인 암 투병 환자다. 그는 외출할 때마다 명품을 사서 암 병동으로 배달시킨다(그는 부자다). 그때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점원에게 “한 방 먹이는 기분”이라고 했다.일러스트=유현호실버타운에서 만난 B는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밥 먹는 것 외에는 낙이 없다고 푸념한다. C는 하루 종일 트레이닝복 바람으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뛰고 달린다. D는 눈에 띌 때마다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아무와도 말을 섞지 않는 사람도 있다. E는 자식들이 억지로 데려다 놓았다고 매일 원망과 분노를 터뜨린다. 같이 맞장구를 쳐줘야 대화가 이루어지는데, 나는 그럴 만한 변죽이 없어 침묵이 흐른다.하지만 이 안에서도 매일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

자 료 2025.04.12

실버타운 일기 (6)

최근에 쓴 나의 유서일러스트=유현호아침에 식당에서 누군가가 뜬금없이 ‘상속과 유언 상담 희망자를 모집한다’는 전단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유언, 상속 이야기는 노인들 사이에 상식이 되어 있어,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20년 전 집안 어른이 자녀들에게 이런 유언을 했습니다. “물려줄 재산은 없지만 형제들끼리 우애 있게 살아라.” 그 얘기를 전해 들은 사람들의 말이, 가장 무의미한 최악의 유언이라는 거예요.그즈음에 나도 유서를 써보았습니다. 그리고 몇 해 후, 우연히 그 유서를 펼쳐보니 유치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가족들에게 몇 마디 당부의 말과 함께 적금 통장, 보험 증서, 내가 쓰던 만년필이랑 하찮은 장식품들을 동생과 친구에게 전해주라는 내용이었는데, 적금은 만기가 되어 찾아 썼고, 보험은 보험 회사에 기재..

자 료 2025.04.12

실버타운 일기 (5)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일러스트=유현호“사는 것이 지루하다. 오래 산 게 죄다, 빨리 죽어야 할 텐데. 언제 죽을는지 점이라도 보고 싶다.” 만날 때마다 버릇처럼 푸념하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어제는 내가 농담 삼아 “점 보시나 마나, 오래 사실 거예요” 한마디 하고는 내가 점 본 이야기를 해준 겁니다.내가 기억하고 있는 두 사람의 사주 풀이, 그중 한 사람은 동대문의 남루한 여관방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던 젊은 도사. 내 사주를 살펴보더니 “나무로군요” 했다. 내가 대뜸 “나무라면 속리산의 정1품 소나무인가요?” 물었더니 “뼈만 앙상한 겨울나무라 긴 겨울이 지나 봄이 돼 봐야 꽃이 필지 말지를 알 수 있겠다”는 겁니다.나는 성급했던 나의 반응이 무안해서 어색한 감정을 수습하고 있었는데, 그 젊은 ..

카테고리 없음 2025.04.12

실버타운 일기 (4)

희망은 모두를 설레게 합니다게티이미지뱅크챗GPT에서 점도 본다? 젊은이들이 인터넷이나 타로점을 즐겨 보고 점집을 찾아 직업·연애·재산 상담을 한다는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지만, 챗GPT까지 등장하다니 점을 보는 마음은 영원한가 봅니다. 점 보는 이야기에는 저마다 약간의 추억담이 있었습니다.우리가 어렸을 때는 새해를 맞으면 온 가족이 토정비결을 보았죠. 호기심과 기대로 긴장했던 설 이벤트였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거의 매일 아침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를 찾아보았습니다. 한결같이 애매모호한 내용이지만 그래도 그걸 꼬박꼬박 챙겨보았어요. 그리고 돌아보니 평생 여섯 번이나 점집을 찾았던 경험도 있습니다.여섯 곳 모두 “아주 잘 맞힌다”는 경험자의 추천으로 찾아간 유명한 점집이었습니다. 방 하나에 여러 명이 ..

자 료 2025.04.12

실버타운 일기 (3)

아침에 일기를 쓴다 일러스트=유현호일기는 저녁에 쓰는 게 상식인데, 나는 아침에 머릿속으로 씁니다.저녁에 기록하는 일기는 초등학생 때 방학 숙제를 떠오르게 해서 압박감이 먼저 듭니다. 방학 내내 미루고 미루다가 개학 2, 3일 전에야 몰아서 꾸며대던 일기. 그건 일종의 강요된 반성문이었어요. 어디 그뿐인가요? 지난 한 달 동안의 날씨를 기억해낸다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궁리 끝에 거짓 날씨를 하루는 흐림, 하루는 맑음으로 바꿔가며 메워버렸습니다. 거짓말이 탈 없이 통과된 데 대한 짜릿함과 죄의식이 그때 처음으로 생긴 것 같아요.어른이 되어서도 저녁에 써야 하는 일기나 가계부는 의무의 독촉장 같아서, 나는 저녁 일기는 평생 쓰지 않았습니다. 저녁은 항상 쫓기듯이 살아온 일과에 지치고 피곤해서 쓸 시간도 ..

자 료 2025.04.12

실버타운 일기 (3)

아침에 일기를 쓴다 일러스트=유현호일기는 저녁에 쓰는 게 상식인데, 나는 아침에 머릿속으로 씁니다.저녁에 기록하는 일기는 초등학생 때 방학 숙제를 떠오르게 해서 압박감이 먼저 듭니다. 방학 내내 미루고 미루다가 개학 2, 3일 전에야 몰아서 꾸며대던 일기. 그건 일종의 강요된 반성문이었어요. 어디 그뿐인가요? 지난 한 달 동안의 날씨를 기억해낸다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궁리 끝에 거짓 날씨를 하루는 흐림, 하루는 맑음으로 바꿔가며 메워버렸습니다. 거짓말이 탈 없이 통과된 데 대한 짜릿함과 죄의식이 그때 처음으로 생긴 것 같아요.어른이 되어서도 저녁에 써야 하는 일기나 가계부는 의무의 독촉장 같아서, 나는 저녁 일기는 평생 쓰지 않았습니다. 저녁은 항상 쫓기듯이 살아온 일과에 지치고 피곤해서 쓸 시간도 ..

자 료 2025.04.12

실버타운 일기

오늘은 뭘 하지?일러스트=유현호①규칙적인 식사 ②적당한 운동 ③다양한 정신 건강 프로그램.남편이 오랜 기간 동안 치매를 앓다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나는 이미 여러 곳의 요양원과 노치원(낮에 노인들을 돌봐주는 복지 기관)을 살펴본 경험이 있어 프로그램 내용은 대충 알고 있었습니다.실버타운은 스스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노인들이 모인 곳이라 지도 강사 없는 취미 활동들도 눈에 띕니다. 탁구, 영화, 바둑, 고스톱.... 대부분의 실버타운들에는 입주 요건이 있습니다. 대개는 80세 이하의 나이 제한과 인지 능력, 신체 활동 기능 등의 기준에 맞아야만 합니다.이곳은 나이 제한이 없었습니다. 다만 입소 전 지정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요구했습니다. 나는 합격되지 못할까 봐 마치 수험생처럼 마음을 졸이다가 합격된 ..

자 료 2025.04.12

실버타운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실버타운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일러스트=유현호내 나이 90. 몇 군데 노인 시설을 탐방한 끝에 지난해부터 이 실버타운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올 때 나는 90년의 인생을 대충 마감하기 위해 몇 달에 걸쳐 주변 정리를 했습니다. 과감하게 버릴 것은 버리고, 쓸 만한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었습니다.마지막 정리까지 가장 어려웠던 건 사진, 편지, 이런저런 기록들, 여행 기념품, 아까워서 못 썼던 그릇 등 수십 년의 추억이 깃든 귀중품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었습니다. 긴 세월 서랍 속에서 잠들고 있던 옛날 편지와 노트들은 잉크 글씨들이 거의 다 날아가버렸고, 종이는 삭아서 부서지기 직전이었습니다. 눈 딱 감고 그 모든 추억들을 장사 지냈습니다.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자..

자 료 2025.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