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11.16 03:00
[아무튼, 주말- 김형석·태영호 토크 콘서트]
예매 1시간 만에 매진
전화로 사진 찍는 대신 청중들 공책에 필기, 사인 받으려고 줄서
"교수님, 잠깐만요. 이것 좀 봐주세요!"
베레모를 쓴 노년 신사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돌아보자 그는 가보 다루듯 얇은 종이봉투에서 누렇게 바랜 편지지를 조심스레 꺼냈다. "60년간 간직해온 편지입니다. 스무 살 때 친구에게 교수님 책을 빌려 봤어요. 감동해 편지를 썼는데 교수님이 답장을 주셨어요." 이성호(79)씨가 말했다. 환갑이 된 편지는 여전히 빳빳했다. 세로로 적어 내려간 원고지만이 세월의 흔적을 보여줬다. 김 교수가 편지를 기억하자 이씨는 스무 살 청년처럼 웃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중구 조선일보 미술관 1층 '조이'에서 '아무튼, 주말' 창간 1주년 기념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연사는 '아무튼, 주말' 인기 칼럼니스트인 김형석 교수('백세일기')와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평양남자의 서울탐구생활'). 지난달 18일 온라인 접수를 시작한 지 1시간 만에 표 200장과 예비석 40장까지 매진될 만큼 인기였다.
"친구들이 '너만 가느냐'며 부러워했어요. 신랑이 발 빠르게 예매해줬어요. 최고 선물을 받았죠." '예매 전쟁'을 뚫고 표를 구하는 데 성공해 이날 강연장에서 만난 이윤상(66)씨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쌀쌀한 날씨에 가을비까지 부슬부슬 내렸지만, 강연장엔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표 구입에 실패한 이들 중 몇몇은 현장에서 자리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강연장으로 달려왔다.
베레모를 쓴 노년 신사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돌아보자 그는 가보 다루듯 얇은 종이봉투에서 누렇게 바랜 편지지를 조심스레 꺼냈다. "60년간 간직해온 편지입니다. 스무 살 때 친구에게 교수님 책을 빌려 봤어요. 감동해 편지를 썼는데 교수님이 답장을 주셨어요." 이성호(79)씨가 말했다. 환갑이 된 편지는 여전히 빳빳했다. 세로로 적어 내려간 원고지만이 세월의 흔적을 보여줬다. 김 교수가 편지를 기억하자 이씨는 스무 살 청년처럼 웃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중구 조선일보 미술관 1층 '조이'에서 '아무튼, 주말' 창간 1주년 기념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연사는 '아무튼, 주말' 인기 칼럼니스트인 김형석 교수('백세일기')와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평양남자의 서울탐구생활'). 지난달 18일 온라인 접수를 시작한 지 1시간 만에 표 200장과 예비석 40장까지 매진될 만큼 인기였다.
"친구들이 '너만 가느냐'며 부러워했어요. 신랑이 발 빠르게 예매해줬어요. 최고 선물을 받았죠." '예매 전쟁'을 뚫고 표를 구하는 데 성공해 이날 강연장에서 만난 이윤상(66)씨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쌀쌀한 날씨에 가을비까지 부슬부슬 내렸지만, 강연장엔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표 구입에 실패한 이들 중 몇몇은 현장에서 자리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강연장으로 달려왔다.
100세 아이돌
김형석 교수는 할아버지가 손자의 머리맡에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강연을 시작했다. 김형석 교수는 1920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올해 100세. 강연장에 있는 어떤 사람보다 오래 산 '인생 선배'였다.
"로마에 한번 가보세요. 로마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안내원이 로마 역사를 이야기해줍니다." 김 교수의 로마 여행기로 시작된 이야기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죽음까지 흘러갔다. "정권을 목표로 사는 정치가의 최후를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정확히 보여줬습니다. 정권이 아니라 자유와 인간애를 높이겠다는 목표를 가질 때 올바른 역사의 길을 찾게 되는 겁니다."
참가자들은 공책을 꺼내 한 자, 한 자 꼼꼼하게 받아 적었다.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과 영상을 찍는 사람들보다 김 교수의 말을 손 글씨로 새겨 적는 이가 많았다.
"100세에도 건강하신 비결이 뭔가요?" 질의응답 시간에 첫 번째로 손을 든 참가자가 물었다. "90세까지는 늙었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요. 물을 주는 것처럼 항상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사회에 작은 도움이라도 주겠다고 생각하면 정신은 늙지 않아요." 김 교수는 답했다. 살짝 올라간 양복 바짓단 아래로 검은색과 흰색 줄무늬 양말이 눈에 들어왔다. "일할 수 있고 우리 사회에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 때까지 살고 싶어요."
강연이 끝난 이후에는 즉석 팬 사인회가 열렸다. 김 교수와 한마디라도 나누려는 이들이 길게 늘어섰다. 아이돌 가수 팬덤 못지않았다. 류진창(60)씨는 1년 넘게 연재한 김 교수의 칼럼을 모두 인쇄해 만든 정리본에 사인을 받았다. "강연 들으러 오기 전 교수님 칼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뽑아 읽으며 예습했어요. 자서전을 쓰는 게 꿈인데, 오늘 교수님 강연도 제 자서전에 들어갈 것 같네요."
에어컨으로 식힐 만큼 뜨거운 강연
태영호 전 외교관이 두 번째 강연자로 나서자 참가자들이 환호했다.
"지금 보는 제 모습이 실제 제 모습 아닙니다. 속지 마세요. 방송에 출연하고 와서 흑채도 치고 얼굴에 화장품 바른 거예요." 그의 유머에 장내에 웃음이 번졌다.
태 전 외교관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칼럼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전 주말에는 푹 쉬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즘은 토요일이라도 '종자'를 잡지 못하면 못 쉽니다." 주제를 북한에서는 '종자'라고 한다며 그가 말했다. "1년 동안 매주 화요일마다 '이번 주에는 뭐 쓰실 거냐'는 메시지를 받아보세요. 화요일 아침만 되면 생리 현상으로 스트레스가 옵니다." 담당 기자의 '독촉 카톡'을 공개하자 또 한 번 좌중에 웃음이 일렁거렸다.
태 전 외교관은 자신만의 칼럼 '종자' 찾는 법을 귀띔했다. 지난달 26일 쓴 '백마 탄 김정은' 기사의 경우, 출장차 간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미국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허황한 백두산 신화설이나 기(氣)를 믿는지 물어봅니다. 세뇌당했는지 궁금한 거예요."
강연이 끝나기 전 한 참가자가 "우리나라에 온 가장 큰 동기가 '자식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가 맞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외교관 아버지를 둬서 외국과 북한을 오가며 자랐어요. 3년 외국 있다 평양 들어가 한 3년 있다가 또 외국으로 나갔죠. 애들이 '친구들이 영국은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면 찰스 디킨스 '올리버 트위스트' 같은 소설을 읽고 영국이 그렇다고 얘기하라. 굴뚝에 연기가 뿌옇다고 하라고 대답했어요. 아이들을 보며 점점 괴롭더라고요. 북한에서 거짓말하며 평생 살려면 얼마나 힘들까. 탈북하지 않으면 말 못 할 원망이 생길 것 같았어요." 태 전 외교관이 답했다. 청중이 숙연해졌다.
태 전 외교관은 해외에서 외신 대상으로 여러 번 행사를 한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능숙하게 농담 섞어 청중에게 질문을 던지며 호응을 이끌어 냈다. 참가자의 열기가 뜨거워 입동(立冬)이 지난 날씨에도 에어컨을 틀어 냉방을 해야 할 정도였다.
김형석 교수는 할아버지가 손자의 머리맡에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강연을 시작했다. 김형석 교수는 1920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올해 100세. 강연장에 있는 어떤 사람보다 오래 산 '인생 선배'였다.
"로마에 한번 가보세요. 로마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안내원이 로마 역사를 이야기해줍니다." 김 교수의 로마 여행기로 시작된 이야기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죽음까지 흘러갔다. "정권을 목표로 사는 정치가의 최후를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정확히 보여줬습니다. 정권이 아니라 자유와 인간애를 높이겠다는 목표를 가질 때 올바른 역사의 길을 찾게 되는 겁니다."
참가자들은 공책을 꺼내 한 자, 한 자 꼼꼼하게 받아 적었다.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과 영상을 찍는 사람들보다 김 교수의 말을 손 글씨로 새겨 적는 이가 많았다.
"100세에도 건강하신 비결이 뭔가요?" 질의응답 시간에 첫 번째로 손을 든 참가자가 물었다. "90세까지는 늙었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요. 물을 주는 것처럼 항상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사회에 작은 도움이라도 주겠다고 생각하면 정신은 늙지 않아요." 김 교수는 답했다. 살짝 올라간 양복 바짓단 아래로 검은색과 흰색 줄무늬 양말이 눈에 들어왔다. "일할 수 있고 우리 사회에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 때까지 살고 싶어요."
강연이 끝난 이후에는 즉석 팬 사인회가 열렸다. 김 교수와 한마디라도 나누려는 이들이 길게 늘어섰다. 아이돌 가수 팬덤 못지않았다. 류진창(60)씨는 1년 넘게 연재한 김 교수의 칼럼을 모두 인쇄해 만든 정리본에 사인을 받았다. "강연 들으러 오기 전 교수님 칼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뽑아 읽으며 예습했어요. 자서전을 쓰는 게 꿈인데, 오늘 교수님 강연도 제 자서전에 들어갈 것 같네요."
에어컨으로 식힐 만큼 뜨거운 강연
태영호 전 외교관이 두 번째 강연자로 나서자 참가자들이 환호했다.
"지금 보는 제 모습이 실제 제 모습 아닙니다. 속지 마세요. 방송에 출연하고 와서 흑채도 치고 얼굴에 화장품 바른 거예요." 그의 유머에 장내에 웃음이 번졌다.
태 전 외교관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칼럼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전 주말에는 푹 쉬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즘은 토요일이라도 '종자'를 잡지 못하면 못 쉽니다." 주제를 북한에서는 '종자'라고 한다며 그가 말했다. "1년 동안 매주 화요일마다 '이번 주에는 뭐 쓰실 거냐'는 메시지를 받아보세요. 화요일 아침만 되면 생리 현상으로 스트레스가 옵니다." 담당 기자의 '독촉 카톡'을 공개하자 또 한 번 좌중에 웃음이 일렁거렸다.
태 전 외교관은 자신만의 칼럼 '종자' 찾는 법을 귀띔했다. 지난달 26일 쓴 '백마 탄 김정은' 기사의 경우, 출장차 간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미국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허황한 백두산 신화설이나 기(氣)를 믿는지 물어봅니다. 세뇌당했는지 궁금한 거예요."
강연이 끝나기 전 한 참가자가 "우리나라에 온 가장 큰 동기가 '자식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가 맞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외교관 아버지를 둬서 외국과 북한을 오가며 자랐어요. 3년 외국 있다 평양 들어가 한 3년 있다가 또 외국으로 나갔죠. 애들이 '친구들이 영국은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면 찰스 디킨스 '올리버 트위스트' 같은 소설을 읽고 영국이 그렇다고 얘기하라. 굴뚝에 연기가 뿌옇다고 하라고 대답했어요. 아이들을 보며 점점 괴롭더라고요. 북한에서 거짓말하며 평생 살려면 얼마나 힘들까. 탈북하지 않으면 말 못 할 원망이 생길 것 같았어요." 태 전 외교관이 답했다. 청중이 숙연해졌다.
태 전 외교관은 해외에서 외신 대상으로 여러 번 행사를 한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능숙하게 농담 섞어 청중에게 질문을 던지며 호응을 이끌어 냈다. 참가자의 열기가 뜨거워 입동(立冬)이 지난 날씨에도 에어컨을 틀어 냉방을 해야 할 정도였다.
백 년 후 한국 궁금해져
이날 토크 콘서트의 제목은 '아무튼, 인생'이었다. 두 필자의 인생 목표는 뭘까. 태 전 외교관은 "'아무튼, 주말' 칼럼은 북한에 대한 이야기만 쓰는 게 아니라 북한 이야기와 서울 이야기를 엮어 풀어내는 것이다. 머리가 돌아가고 손가락이 돌아갈 때까지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해 쓰겠다.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통일되는 날까지 쓰겠다"고 했다.
김 교수가 강연을 마무리하며 웃으며 말했다. "누가 나보고 '선생님 제일 큰 소원이 뭡니까'라고 물어보면 100년 후 에 잠깐 대한민국에 와보고 싶어요. 이렇게 잘 살면 이제 대한민국을 잊어버려도 괜찮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날 두 강연을 들은 공진오(44)씨는 "두 분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에 힘을 얻었다"며 "교수님이 우스갯소리로 한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100년 뒤 한국이 궁금해졌다"고 했다.
이날 토크 콘서트의 제목은 '아무튼, 인생'이었다. 두 필자의 인생 목표는 뭘까. 태 전 외교관은 "'아무튼, 주말' 칼럼은 북한에 대한 이야기만 쓰는 게 아니라 북한 이야기와 서울 이야기를 엮어 풀어내는 것이다. 머리가 돌아가고 손가락이 돌아갈 때까지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해 쓰겠다.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통일되는 날까지 쓰겠다"고 했다.
김 교수가 강연을 마무리하며 웃으며 말했다. "누가 나보고 '선생님 제일 큰 소원이 뭡니까'라고 물어보면 100년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