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김형석 명예교수의 '100세 일기' 이번 원고를 받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방년(芳年)'이라는 표현 때문인데요. 정년 한참 지난 여 교수님이 몇십 년 만에 해후한 김형석 선생께 자신
/어수웅 기자
을 그렇게 소개했죠. 그분 나이 86세, 김 교수 나이 99세. 주지하다시피 방년은 20세 전후의 꽃다운 나이입니다. 노년의 애교랄까 활력이랄까. 문득 뒤늦게 봉오리를 맺은 신문사 뒤뜰의 목련이 떠오릅니다.
노장의 활약이 눈부십니다. 이번 주 극장가에는 동시에 두 편의 작품을 스크린에 건 영화감독이 있죠. 스티븐 스필버그. 1946년생이니 그의 나이도 72세입니다. 각각 1971년을 배경으로 한 '더 포스트'와 2045년을 무대로 한 '레디 플레이어 원'.
영화를 본 관객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이렇게 읽을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기품 있는 해석과 미래에 대한 패기 넘치는 도전. 기품이야 스필버그 연배에 어울리는 명사겠지만, 패기는 방년에나 어울리는 굳센 기상 아닙니까.
톰 행크스와 메릴 스트리프가 각각 워싱턴 포스트 편집국장과 사주(社主)를 맡은 이 영화에서 스필버그의 숙련에 감탄했지만, 정작 나를 놀라게 한 건 '레디 플레이어 원'이었습니다. Ready Player one. 끝없이 팽창하는 가상현실 게임 '오아시스'의 퍼즐을 푼 플레이어는 5000억달러의 상금과 이 게임회사 소유권을 물려받습니다.
퍼즐의 힌트는 1980년대의 대중문화. '거인의 어깨'를 말하기 민망해진 최근의 세상에서, 스필버그는 선배들이 쌓은 아날로그 벽돌 없이 결코 이 자리에 도달할 수
없었음을 윽박지르지 않고 설득합니다. 사막의 샘 오아시스는 어쩌면 게임 이름이 아니라 스필버그 그 자체겠더군요.
지난해 일본 고향 산골에서 인터뷰한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육체는 비록 늙었어도 정신의 젊음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자 특질이라고. 봄의 정중앙을 벚꽃과 목련이 관통합니다. 당신의 젊음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