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39] 조선 망국의 교훈
입력 2023.03.24. 03:00
한국인들이 을미사변·아관파천·대한제국 선포의 시기로 기억하는 1895~1897년은 영국과 러시아가 ‘파미르 국경 위원회’를 구성하여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획정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는 남하하려는 러시아와 그를 저지하려는 영국 간의 ‘그레이트 게임’이 발칸반도, 중앙아 전역(戰域)을 거쳐 극동에서 최후의 결전을 남겨두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청일전쟁으로 한반도에 세력 공백이 발생하자 세력 균형 외교의 달인 영국은 러·일 어느 쪽도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균형자 역할을 자임하였다. 조선의 독립 유지에 영국만큼 유효한 우군이 될 수 있는 열강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영국의 역할을 발로 차버린 것은 고종 자신이었다.
1897년 이후 유럽에서의 입지 약화를 극동 진출로 만회하려는 러시아와 권력 유지를 의탁할 열강을 찾고 있던 고종의 의중이 일치하면서 한·러가 급속히 밀착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고종의 다급함을 간파한 러시아가 노골적으로 영국의 이익을 정면으로 조준하였다는 것이다. 총세무사 겸 재정 고문 영국인 존 맥리비 브라운을 느닷없이 러시아인으로 교체하려 하거나, 절영도를 대놓고 해군기지로 조차(租借)하려는 시도는 영국의 경계심을 자극하였고, 이를 둘러싼 조정(朝廷)의 친러적 행보와 영국과의 거리 두기는 조선을 바라보는 영국의 시각에 근본적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뒤이은 ‘영일동맹-러일전쟁-한일병합’ 등 한반도의 운명을 가른 일련의 사건들은 그레이트 게임의 맥락 속에서 그 인과관계를 음미할 수 있고, 또 음미해야만 한다. 돌이켜보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사이의 10년이 조선에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내부적으로는 자강(自彊)에 힘쓰고 외부적으로는 ‘팍스 브리태니카’의 시세(時勢)에 국익을 조율하는 외교적 지혜가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거대한 세계 정세의 흐름을 도외시한 채 권력 놀음과 정신 승리로 지리멸렬하다가 국운을 그르친 못난 실책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현대에 되새겨야 할 조선 망국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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