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부장이었는데” 은퇴 후 이런 생각하니, 비참해지더라 [행복한 노후 탐구]
퇴직해도 현역 때처럼 활기차게 사는 사람의 비법 3가지
인생 후반기, 사회 고립과 단절을 이겨내려면
나의 은퇴 고독지수, 자가진단 해보세요
노년학 전문가 사토신이치 교수 인터뷰 1편
[행복한 노후 탐구]
‘은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반백살이 넘어 은퇴가 코앞으로 다가오면, 막연한 불안과 이유 모를 두려움에 떨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를 꿈꾸고 기다리는 대상이 아니라, 두렵고 피하고 싶은 대상으로 여긴다는 사실은 데이터로도 확인할 수 있다. 10일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에 따르면, 50대 중산층이 생각하는 ‘은퇴 이미지’는 ‘재정 불안, 건강 쇠퇴, 외로움, 타인 의존, 지루, 하찮음’ 등과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 많았다<아래표 참고>.
사토신이치(佐藤眞一·67) 전 오사카대학교 대학원 노년행동학 교수는 11일 조선일보 [행복한 노후 탐구]와의 인터뷰에서 “인생 후반기에는 퇴직으로 인한 사회 단절과 경제 불안, 부모와 배우자 사망, 질병과 노화 등 부정적인 사건들이 많이 벌어진다”면서 “내게 어떤 일이 닥칠 것인지 미리 알아두고,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미리 생각해놔야 한다”고 말했다.
사토 교수는 일본 사이타마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메이지대, 오사카대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일본 노년행동과학회장을 지낸 노년학 전문가인 그는 노후 관련 서적도 다수 펴냈다. 국내엔 <우리 가족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나이 든 나와 살아 가는 법> 등이 번역 출간돼 있다.
1️⃣돈보다 사회적 가치를 우선하라
–노년에 대한 이미지는 왜 부정적인가.
“정년 퇴직, 궁핍한 가계, 노부모 수발, 부모 사망, 배우자 질병·죽음... 60대 이후 인생 후반기에는 이런 부정적인 생애 사건(life event)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고 누구나 언젠가 마주해야 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아직 경험해 보지 않은 미지의 사건들이라서 사람들은 애써 외면한다. 그런데 늙는다는 것이 ‘상실’만 존재하는 부정적인 현상은 아니다. 어떻게 준비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채움’으로 바꿀 수 있다. 돈보다 마음의 준비가 더 필요한 이유다.”
–마음의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퇴직 후엔 사회와의 관계가 크게 달라진다. 이 시기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노년 행복감이 크게 달라진다. 퇴직을 앞두고 ‘이제 내 인생은 9회말 2아웃’이라며 절망하던 선배가 있었는데, 정년퇴직 축하연에는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급여는 없지만 새로 생긴 모 연구센터에서 ‘특별초빙교수’란 직함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며 의욕이 충만해 있었다. 잃어버릴 뻔했던 미래 비전이 생기면서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것이다.”
–평범한 직장인도 미래 비전을 찾을 수 있나.
“퇴직 이후 일에서는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야’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 돈으로 성과를 추구하기 보다는 시간을 즐기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 ‘돈은 못 벌어도 꼭 해보고 싶다’거나 ‘돈을 들여서라도 해보고 싶다’고 느끼는 일이야말로 퇴직 이후 내가 꿈꿀 수 있는 진정한 미래 비전이다. ‘대기업 부장 출신인데... 은행 지점장이었는데...’ 이렇게 퇴직 후에도 본인 체면만 먼저 생각하고 그에 맞는 일자리에서 대접 받길 원한다면, 비참한 인생 말로만 기다리고 있을뿐이다.”
2️⃣명함 없다고 ‘방구석 여포’로 살지 마라
–정년퇴직 고독감은 어떻게 해소해야 하나.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라서 ‘사회에 받아 들여지고 싶다’는 근본적 욕구가 강하다. 그런데 정년퇴직은 그야말로 사회적 정체성을 잃는 일이다. 마치 자기 자신을 잃는 것과 같은 의미이므로, 일터를 떠나 관계가 단절되면 고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회사원이라는 정체성에 집착하고 명함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다. ‘나를 헌신짝처럼 버리다니...’ 하면서 회사를 원망하고 신세를 비관해봤자 소용없다.”
–은퇴 충격을 치유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
“일본에선 한때 화를 내거나 욕설을 퍼붓는 일명 ‘폭주노인’이 화제였다. 평소엔 온화한 사람이 갑자기 욱해서 화부터 낸다거나 학력과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고령자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며 버럭 소리부터 지르는 식이다. 폭주노인이라는 사회 현상은 말 그대로 정년 퇴직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본다. ‘ΟΟ회사의 부장’이라는 사회적 신분을 잃고 ‘그냥 사람’이 되어 버린 자신에 대한 분노를 엉뚱한 곳에 폭력이라는 형태로 표출한 것이다.”
–퇴직 스트레스가 ‘폭주노인’을 일으킨다니 놀랍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온화해지고 성숙해진다는 통념이 있지만 폭주노인은 전혀 다른 양상이다. 퇴직 후 부하가 해주던 일을 스스로 하게 되면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폭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혹시 내가 그런 폭주노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간단한 고독지수 테스트가 있어서 소개한다<아래 표 참고>.
내가 직접 조사해보니 50세 이상 남성의 평균 점수는 11.8점, 여성의 평균 점수는 11.2점이었다. 평균 점수와 표준편차를 근거로 고독지수를 산출해 보면, 18점 이상이면 위험한 상태고, 15~17점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내 고독지수가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면, 타인과 관계 맺기가 어려워 괴로운 상황이다. 사람을 만날 기회부터 많이 만들어라.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어서는 고독감을 해소할 수 없다. 부지런히 밖에 다녀야 사람들에게 호감도 사고, 나도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낄 수 있다.”
3️⃣은퇴 여행도 질린다... 일상을 만들어라
–퇴직하면 억지로 일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을 것 같다.
“회사 다닐 때의 ‘일하는 시간’은 답답하기도 하지만 기쁨과 보람,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런 일상이 있어야 비일상도 즐거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퇴직 후에는 평일과 주말, 일하는 날과 쉬는 날 구별이 없어진다. 평일 아침에도 휴대폰 알람은 울리지 않고, 나를 찾는 전화도 거의 걸려오지 않는다. 현역 시절 일할 때처럼 충실한 일상을 보내기가 어려워진다.”
–퇴직해도 일상은 꼭 확보하라는 의미인가.
“일본에서 ‘퇴직하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냐’는 질문을 하면 1위 대답은 늘 ‘여행’이다(한국도 아마 비슷할 것 같다). 제약회사 임원이던 지인 얘기다. 회사 다닐 땐 바빠서 못 가지만 퇴직하면 한 달에 한 번씩 꼭 호화로운 여행을 떠나자고 아내와 약속했다. 실제로 처음 한두 번은 무척 즐거웠다고 한다. 그런데 반년도 지나지 않아 시큰둥해지고 질려버렸다. 여행은 일상 생활권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그는 이렇다 할 ‘일상’이 없는 퇴직자였기에 여행에서 큰 의미를 찾지 못한 것이다. 매일 한가롭다며 괴로워했던 그 지인은 제약회사와 관련된 병원을 소개받아 봉사 활동을 시작했고, 어느새 본업인 양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활력을 되찾았고 부부 여행도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퇴직 후 일상은 어떻게 찾아야 하나.
“회사원 시절에 주말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이나 신문을 읽으면 재미있다. 바쁜 일상이 있는 와중에 경험하는 비일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갈 곳이 없어 의무적으로 도서관에 가야 한다면, 그리고 그게 일상이라면 과연 즐거울 수 있겠는가. 일상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미래 비전을 가져다 줄 알찬 일상이어야 한다. 가령 도서관을 다니는 것이 일상이라면 본인 스스로 관심 있는 주제를 찾고 ‘블로그에 공유하기, 유튜브로 알리기, 지역 대회에 참가하기’ 등 구체적인 세부 목표를 세우고 실천해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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