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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원조’ 일본도 놀라는 “천하제일 한국 도시락”

빠꼼임 2023. 4. 23. 08:24

‘편의점 원조’ 일본도 놀라는 “천하제일 한국 도시락”

[아무튼, 주말] [봉달호의 오늘도, 편의점]

봉달호 편의점주·에세이스트
입력 2023.04.22. 03:00업데이트 2023.04.22. 03:14
 
 
일러스트=김영석

“현미밥에 계란 프라이, 참나물, 볶음김치, 오징어볶음, 감자볶음. 카, 이 ‘혜자로운’ 구성 좀 봐.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니?” 내가 우리 편의점 도시락을 자랑하면 다른 브랜드 편의점을 운영하는 친구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하곤 했다. “음식 하면 역시 우리 ‘백 대표’ 아니겠어? 백 대표가 레시피까지 조율하며 자기 명예를 걸고 내놓은 도시락이야. 편의점에 들여오기 바쁘게 팔려나간다니까.”

그럴 때마다 늘 조용하던 3위 브랜드 편의점 점주가 요즘엔 목에 힘을 주며 대들기 시작한다. “편의점 도시락을 이용하는 주요 고객은 MZ 세대잖아. SNL의 주 기자 알지? 그 주현영을 모델로 기용했다니까. MZ 하면 주현영, 주현영 하면 MZ 아니겠어?” 가히 도시락 전쟁이라 할 만하다. 김혜자의 정성과 푸짐함이냐, 백종원의 맛과 구성이냐, 주현영을 앞세운 청년 세대 공략법이냐. 우리는 이것을 ‘김·백‧주 대전(大戰)’이라 부른다.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도시락 매출이 껑충 뛰었다. 우리 편의점은 어느 기업의 구내식당 옆에 있어 원래 도시락 판매가 신통치 않았다. 그런데 몇 개월 사이 도시락 매출이 곱절은 늘어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1만 원짜리 한 장으로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크게 줄었다. 오죽하면 ‘런치플레이션’이라 부를까. 그런 가운데 편의점만 어화둥둥, 썩 달갑지만은 않은 도시락 특수를 누리는 중이다. 이거, 표정 관리하기 힘드네.

1라운드는 모델 경쟁, 2라운드는 메뉴 경쟁이었다. 곧 3라운드 종이 울렸다. 이번엔 가격 경쟁. 현미밥에 반찬을 여섯 가지나 품고 있는 ‘혜자로운 집밥’의 정상 판매가는 5500원. 메뉴도 착한데 가격까지 착하다고 놀라지 마시라. 그 값을 다 주고 사면 진정한 편의점 마니아라고 말할 수 없지. 출시 기념으로 한동안 3900원에 팔았고, 각종 쿠폰에 통신사 할인, 결제 수단 할인까지 받으면 최대 2500원까지 깎을 수 있다. 옆집 백종원 도시락도 이에 질세라 4500원짜리 도시락을 2000원에 구입할 수 있도록 했고, 주현영도 질 수 없다며 할인 경쟁에 가세했다. 그러다 급기야 특정한 날짜에 90% 할인하는 이벤트까지 등장했으니 5500원 도시락을 550원에 살 수 있다네! ‘이게 뭐지?’ 싶을 정도다.

아내가 걱정스레 묻는다. “여보, 이렇게 깎아줘서 남는 게 있어?” 편의점 안주인 3년이면 풍월을 읊어야 할 텐데, 역시 아내는 순진하다. 장사꾼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할 리 있겠나. 할인되는 몫은 편의점 본사와 통신회사가 부담한다. 점주로서는 하나도 손해 볼 게 없다. 손님의 행복과 만족이야 말할 것도 없고. 고래 싸움에 새우들이 편안한 격이랄까.

말이 나왔으니 소개하자면, 30여 년 전 우리나라 편의점에 삼각김밥이 처음 등장했을 때 가격이 1000원 정도였다. 지금 삼각김밥 하나의 가격은? 강산이 세 번 바뀌고, 물가가 몇 배 뛰었어도, 삼각김밥 가격은 1000원 그대로다. 이유는 쉬이 짐작할 수 있을 터. 규모의 경제가 생겨나고,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 혜택은 소비자가 누리게 된다. 도시락 또한 그렇다. 우리나라 편의점은 많은 것을 일본에서 배워왔는데, 숱한 편의점 상품 가운데 우리가 일본보다 월등한 분야가 하나 있으니 바로 도시락이다.

일본 편의점 점주들에게 우리나라 편의점 도시락 사진을 보여주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감탄사를 연발한다. “스고이, 스고이!” 예의상 표시하는 칭찬이 아니라 진정으로 놀란 눈빛이다. 기껏해야 반찬 서너 가지뿐인 일본 편의점 도시락에 비해 우리나라 도시락은 그야말로 ‘넘사벽’의 경지. 식습관이 달라 그렇기도 하지만 일본은 반찬이 아예 없는 덮밥류 도시락이나 그라탱, 리소토 같은 간편식이 주를 이룬다. 화려함, 푸짐함, 다양성에 있어 한국 편의점 도시락은 세계 모든 나라 편의점을 압도한다. 대한민국 만세!

2008년에 일본 세븐일레븐이 한국 도시락을 팔았던 적이 있다. 배우 배용준씨가 일본에서 운영하던 한정식집과 협업해 ‘욘사마 도시락’을 출시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맛과 정성”이라고 자랑하려는 듯 8각 용기에 16가지 밥과 반찬을 가지런히 담아 예약 방식으로만 판매했는데, 당시 가격이 자그마치 2500엔이었다. 그럼에도 완판 행진을 이어갔다니, 역시 욘사마! 지금 우리는 그와 비슷한 도시락을 단돈 2500원에 즐기고 있는 셈이다. 규모의 경제는 이토록 혜자롭다.

오늘은 편의점 도시락학(學) 강의를 했으니 계속 도시락으로 이어가 보자. “사장님. 왜 제가 편의점에 올 때마다 도시락이 없는 거예요.” 울상 짓는 손님이 있다. 해법은 간단하다. 편의점마다 스마트폰 앱이 있습니다. 앱을 깔고 ‘도시락 예약’ 주문을 하면, 당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도시락을 원하는 편의점에서 받아보실 수 있답니다. 지금 바로 주문하세요.

사위가 환하게 밝아오는 새벽녘. 편의점 계산대 구석에 앉아 김혜자 에세이 ‘생에 감사해’를 읽으며 밑줄 긋는다. “누구나 날개를 갖기를 희망합니다. 날개는 누가 달아 주지 않습니다. 내 살을 뚫고 나올 뿐입니다.” 마침 도착한 혜자로운 도시락을 진열대 선반 위에 차곡차곡 쌓으며 세상 또한 혜자로워지기를 소원한다. 이 도시락을 드시는 당신의 옆구리에도, 살을 뚫고, 날개가 돋을 날이 있을 거예요. 응원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고물가와 불황의 추운 겨울도 언젠가는 다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