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唐 제국’ 부활 꿈꾸는 시진핑
8년전 인도 총리에 ‘당 비자’ 발급
G7 땐 ‘당 수도’서 중앙아 회의
실크로드·만방래조 뿌리도 당
‘중화 제국’의 본질 기억해야
2015년 인도 모디 총리가 중국 시안(西安·과거 장안)에 도착했을 때다. 양국 국기가 아니라 ‘당(唐)’이라고 적힌 깃발과 황금색 갑옷을 입은 의장대가 그를 맞았다. 중국 책임자가 ‘통관문첩’이라는 문서를 모디에게 건넸다. 통관문첩은 당나라 때 사용하던 일종의 비자다. 삼장법사도 통관문첩을 들고 서역으로 갔다. 시진핑의 중국이 인도 총리에게 ‘당나라 비자’를 발급한 것이다.
시진핑은 모디를 위한 공연을 준비했다. 제목은 ‘꿈의 장안’이다. 붉은 조명 아래 황금색 비단이 물결치는 ‘당 무희’들의 춤을 배경으로 중국~인도를 넘나들던 실크로드 장면이 펼쳐졌다. 산시(陝西)성 시안은 시진핑 집안의 고향이다.
얼마 전 일본에서 G7 정상회의가 열릴 때 시진핑은 시안에서 중앙아시아 5국 정상회의를 마련했다. 2015년처럼 붉은색 ‘당’ 깃발이 나부꼈고 당나라 복장의 관리와 무희들이 ‘황제’를 위한 공연을 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있는 시안을 1300년전 장안으로 또 되돌려놓았다.
시진핑은 유달리 ‘당’을 좋아한다. 2014년 서울대에선 당에서 유학했던 신라 최치원을 꺼냈다. 일본 대표단에겐 당 관리를 지낸 일본인을, 인도 총리에겐 당 고승 현장법사의 인도행을 화제로 삼았다. 2014년 베이징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개최됐을 때 공산당 기관지는 “만방래조(萬邦來朝)”라는 표현을 썼다. 주변국(만방)이 조공(朝貢)을 바치러 중국에 온다는 뜻이다. 당나라 때 많이 쓰던 말이다. 육·해상 실크로드 전략의 뿌리도 당나라다. 시진핑의 ‘중국몽’은 당 제국의 부활로 보인다.
중국은 평등이란 기반 위에서 다른 나라와 교류했던 역사가 없다. 중국이 외교 전담 부서를 만든 건 1861년에서다. 두 차례 아편전쟁에서 대패한 뒤 ‘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이란 교섭 기구를 만들었다. 주변국에 대해선 ‘조공 외교’만 있었다. 청나라 황준셴이 19세기 말 조선 김홍집에게 준 ‘조선책략’에는 “조선은 중국의 군현과 다름없는 관계”라는 말이 나온다. 쑨원도 한국·베트남·티베트 등을 “중국 속지였다”고 언급했다. 시진핑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한 것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최근 한·미·일이 협력을 강화하자 국내 일부에선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요지는 바이든 대통령도, EU 집행위원장도 중국과 ‘디커플링(관계 단절)’이 아니라 ‘디리스킹(위험 감소)’을 언급하는데 한국만 미·일 등 자유 진영과 밀착하다가 경제·외교적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익 아닌 이념을 따지는 외교는 위험하다는 비난도 한다. 맞는 말이다. 한·중 교역 규모는 한미, 한일 교역을 합친 것보다 크고 강대국 정치는 변덕스럽다.
당첨 확률이 1%인 로또가 있다면 다수가 베팅할 것이다. 그런데 추락 확률이 1%인 비행기가 있다면 반대다. 대부분이 탑승을 주저할 것이다. 당첨은 먹고사는 문제이고 추락은 죽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먹고사는 문제가 아무리 중요해도 핵 무장한 전체주의 국가들이 코앞에 있는 ‘안보 현실’을 뒷전으로 미룰 수는 없다.
미·중 충돌의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고 중국은 뗄 수 없는 이웃이다. 그러나 중화 제국이 힘을 키울 때 한반도는 숱한 고초를 겪었다. 한나라 때 고조선이, 당나라 때 고구려가, 원나라 때 고려가 사실상 망하지 않았나. 지금 시진핑은 ‘당 제국의 부활’을 꿈꾼다. ‘혼밥’ 홀대를 당하고도 ‘중국 인민과 식사했다’는 정신 승리로는 중화 제국을 상대할 수 없다. 중국을 ‘높은 봉우리’로 칭송하더라도 ‘중화 제국’에 대한 환상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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