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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 제국’ 부활 꿈꾸는 시진핑

빠꼼임 2023. 5. 29. 07:54

[태평로] ‘唐 제국’ 부활 꿈꾸는 시진핑

8년전 인도 총리에 ‘당 비자’ 발급
G7 땐 ‘당 수도’서 중앙아 회의
실크로드·만방래조 뿌리도 당
‘중화 제국’의 본질 기억해야

입력 2023.05.29. 03:00
 
 
 
 
 
 

2015년 인도 모디 총리가 중국 시안(西安·과거 장안)에 도착했을 때다. 양국 국기가 아니라 ‘당(唐)’이라고 적힌 깃발과 황금색 갑옷을 입은 의장대가 그를 맞았다. 중국 책임자가 ‘통관문첩’이라는 문서를 모디에게 건넸다. 통관문첩은 당나라 때 사용하던 일종의 비자다. 삼장법사도 통관문첩을 들고 서역으로 갔다. 시진핑의 중국이 인도 총리에게 ‘당나라 비자’를 발급한 것이다.

<YONHAP PHOTO-1903> 中-중앙亞 정상회의 개막날 '다탕푸룽위안'서 열리는 환영 연회 (시안 신화=연합뉴스)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가 개막한 18일 과거 수나라와 당나라 황실 정원 터에 조성한 민속 테마파크인 '다탕푸룽위안(大唐芙蓉園)'에서 성대한 환영 연회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는 중국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과 개별 수교한 뒤 30여년 만에 열린 6국 정상들 간의 첫 대면 회의다. 2023.05.19 yerin4712@yna.co.kr/2023-05-19 16:44:53/ <저작권자 ⓒ 1980-202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시진핑은 모디를 위한 공연을 준비했다. 제목은 ‘꿈의 장안’이다. 붉은 조명 아래 황금색 비단이 물결치는 ‘당 무희’들의 춤을 배경으로 중국~인도를 넘나들던 실크로드 장면이 펼쳐졌다. 산시(陝西)성 시안은 시진핑 집안의 고향이다.

얼마 전 일본에서 G7 정상회의가 열릴 때 시진핑은 시안에서 중앙아시아 5국 정상회의를 마련했다. 2015년처럼 붉은색 ‘당’ 깃발이 나부꼈고 당나라 복장의 관리와 무희들이 ‘황제’를 위한 공연을 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있는 시안을 1300년전 장안으로 또 되돌려놓았다.

시진핑은 유달리 ‘당’을 좋아한다. 2014년 서울대에선 당에서 유학했던 신라 최치원을 꺼냈다. 일본 대표단에겐 당 관리를 지낸 일본인을, 인도 총리에겐 당 고승 현장법사의 인도행을 화제로 삼았다. 2014년 베이징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개최됐을 때 공산당 기관지는 “만방래조(萬邦來朝)”라는 표현을 썼다. 주변국(만방)이 조공(朝貢)을 바치러 중국에 온다는 뜻이다. 당나라 때 많이 쓰던 말이다. 육·해상 실크로드 전략의 뿌리도 당나라다. 시진핑의 ‘중국몽’은 당 제국의 부활로 보인다.

중국은 평등이란 기반 위에서 다른 나라와 교류했던 역사가 없다. 중국이 외교 전담 부서를 만든 건 1861년에서다. 두 차례 아편전쟁에서 대패한 뒤 ‘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이란 교섭 기구를 만들었다. 주변국에 대해선 ‘조공 외교’만 있었다. 청나라 황준셴이 19세기 말 조선 김홍집에게 준 ‘조선책략’에는 “조선은 중국의 군현과 다름없는 관계”라는 말이 나온다. 쑨원도 한국·베트남·티베트 등을 “중국 속지였다”고 언급했다. 시진핑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한 것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최근 한·미·일이 협력을 강화하자 국내 일부에선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요지는 바이든 대통령도, EU 집행위원장도 중국과 ‘디커플링(관계 단절)’이 아니라 ‘디리스킹(위험 감소)’을 언급하는데 한국만 미·일 등 자유 진영과 밀착하다가 경제·외교적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익 아닌 이념을 따지는 외교는 위험하다는 비난도 한다. 맞는 말이다. 한·중 교역 규모는 한미, 한일 교역을 합친 것보다 크고 강대국 정치는 변덕스럽다.

당첨 확률이 1%인 로또가 있다면 다수가 베팅할 것이다. 그런데 추락 확률이 1%인 비행기가 있다면 반대다. 대부분이 탑승을 주저할 것이다. 당첨은 먹고사는 문제이고 추락은 죽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먹고사는 문제가 아무리 중요해도 핵 무장한 전체주의 국가들이 코앞에 있는 ‘안보 현실’을 뒷전으로 미룰 수는 없다.

미·중 충돌의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고 중국은 뗄 수 없는 이웃이다. 그러나 중화 제국이 힘을 키울 때 한반도는 숱한 고초를 겪었다. 한나라 때 고조선이, 당나라 때 고구려가, 원나라 때 고려가 사실상 망하지 않았나. 지금 시진핑은 ‘당 제국의 부활’을 꿈꾼다. ‘혼밥’ 홀대를 당하고도 ‘중국 인민과 식사했다’는 정신 승리로는 중화 제국을 상대할 수 없다. 중국을 ‘높은 봉우리’로 칭송하더라도 ‘중화 제국’에 대한 환상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