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정조의 꿈’이 현실로 된 화성
경기도 화성(華城)의 이름은 조선 정조가 작명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으로 옮겨 현륭원을 조성했다. 정조는 능을 보호할 성곽 터를 둘러보면서 장자의 화인축성(華人祝聖) 고사를 떠올렸다. 화(華) 지방 제후가 요 임금에게 부귀, 장수, 다산을 기원했다는 내용이다. 정조는 ‘백성은 왕실의 안녕을, 임금은 백성의 번영을 기원하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의미로 ‘화성’이라 이름 지었다. 풍요의 고을이 되라는 염원을 담은 셈이다.
▶정조의 바람과 달리 현대사에서 화성은 ‘오욕’에 시달렸다. 1986~1991년 사이 화성군 태안읍 일대에서 10건의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잔혹하게 살해된 여인들 사체가 농수로, 논바닥 등에서 잇따라 발견돼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2003년 ‘살인의 추억’이란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화성 매향리 일대는 1951년부터 54년간 주한 미군 사격장으로 쓰였다. 운동권 학생들이 몰려와 “미군 철수”를 외쳤다.
▶2000년대 들어 환골탈태의 싹이 텄다. 삼성전자가 화성에 반도체 공장을 지었다. 반도체 초호황으로 기흥 공장(용인) 생산 능력이 한계에 이르자, 기흥 공장 인근의 화성 땅 17만 평을 매입, 반도체 공장을 지은 것이다. 2002년부터 화성공장에서 300㎜ 웨이퍼를 양산, 생산 원가를 획기적으로 낮췄다. 현재 삼성전자 본사는 수원에 있지만 반도체 사업 본진은 화성이다. 작년 6월 EUV(극자외선) 공정으로 3나노 파운드리 제품을 세계 최초로 출시한 곳도 화성 공장이다.
▶2003년 화성 남양만 매립지 106만 평에 현대차의 연구개발(R&D)센터인 남양연구소가 들어섰다. 현대차가 세계 5대 자동차 메이커로 거듭난 힘은 8000명의 연구원들이 불철주야 연구하는 남양연구소에서 나왔다. 현대차는 최근 24조원을 투자하는 전기차 공장 신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화성시를 생산 기지로 낙점했다. 화성시는 반도체와 자동차, 우리나라 양대 산업을 모두 가진 유일한 도시다. 화성시의 역사는 산업화 시대 최대 공업 도시로 부상한 울산의 진화 과정과 비슷하다.
▶2001년 시 승격 당시 21만 명에 불과했던 화성시 인구는 올해 100만 명을 돌파한다. 양만이 아니라 질도 특A급 도시다. 재정자립도 전국 1위(61%), 지역내총생산(GRDP) 전국 1위(82조원), 아동 인구 비중 전국 1위(20%). 화성 시민의 평균연령은 38.8세로 전국에서 가장 젊다. 정조의 작명이 230년 만에 현실이 됐다. 풍요의 꿈을 실현한 힘은 결국 기업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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