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세 터미네이터의 철학 "고통을 연료 삼아 아일비백"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오른
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저서
나는 포기를 모른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지음|현대지성|244쪽|1만8000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불완전한 인간이 자신의 흠결을 인정하면서 완벽을 향해 분투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77).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보디빌더로 활동하다 배우가 되었고, 영화 ‘터미네이터’(1984)의 주연을 맡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2003년 11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제 38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역임하며 정치인으로도 활동했다.
2023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슈워제네거의 인생 철학을 담은 일종의 자기 계발서. 그런데 서문은 인생의 정점이 아니라 오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내 세상을 무너뜨린 건 경기 침체가 아니었다. 내가 저지른 일 때문이었다. 내가 우리 가족에게 폭탄을 떨어뜨린 것이다. 그보다 더한 실패가 어디 있겠는가.” 이는 2011년 가정부와의 사이에 혼외자를 두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그의 불륜 스캔들을 가리킨다.
불륜이 들통나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한 인물이 그 시기를 극복하며 힘을 얻었던 인생 모토를 소개한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의아하지만 이 책의 아마존 평점은 5점 만점에 4.7. 4500개 가까운 리뷰는 칭찬 일색이다. 이는 “아놀드는 자신의 삶에서 길어낸 메시지에 진실과 독자에 대한 존중을 담아내고 있다”라는 한 독자의 평처럼 비록 잘못을 저질렀을지언정 그가 인생을 마주하는 태도의 진실성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책의 원제는 ‘Be Useful(쓸모 있는 사람이 돼라)’. 슈워제네거의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라고 한다. ‘고통’이 책의 큰 주제다. 저자는 “고통은 성장의 기회”라며 세네카의 이 말을 인용한다. “내가 보기에 역경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다. 그들은 시련을 통과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가 다 아는 스타가 되었지만 결코 쉬운 인생은 아니었다. 더운 물도 나오지 않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면 가족을 때렸고, “보디빌더가 되고 싶다”는 슈워제네거에게 “장작이나 패라”고 했다. 그렇지만 슈워제네거는 말한다. “지금의 내가 된 건 그 시간 덕분이고, 그 시간에 의해 나라는 인생이 만들어졌다.” ‘상황을 개선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불평하기보다는 삶의 기어를 바꾼다’는 것이 슈워제네거의 인생 철학. ‘아버지가 좋은 분일 때도 많고, 어머니는 세상에서 최고’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힘든 유년기를 버텼다고 한다.
미국으로 건너와 보디빌더 활동을 하다가 배우가 되겠다 선언했을 때, 액션물을 주로 하다 코미디 영화에 도전했을 때, 배우에서 정치인이 되겠다고 했을 때….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려 할 때마다 ‘네가 과연 할 수 있겠냐’는 회의적인 반응에 부딪혔다. 그렇지만 그는 “비웃음이야말로 나를 자극하는 원동력이었다”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부정적인 말을 들을수록 오히려 도전 의식이 불타올라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주변의 의심과 과소평가를 이용해 전략을 짰다. “공직 경험이 전혀 없는데 미국 최대의 주(州)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일단 수긍한 후 ‘질문의 틀’을 바꿨다.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더 좋은 질문은 미국 최대 주가 어떻게 이 주를 엉망으로 만든 바로 그런 부류의 정치인들과 계속 함께할 수 있느냐는 거죠.”
과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과거 마리화나를 흡입한 데 대해 기자들의 추궁을 받았지만 “맞습니다. 깊이 들어마셨죠”라고 대답했다. 1980년대 ‘플레이보이’에서 찍은 환락을 즐기는 영상이 문제가 됐을 때도 변명하거나 부인하지 않고 말했다. “그땐 정말 재미있었죠.” 주지사 선거에 두 번 당선될 수 있었던 건 솔직함의 힘이라며 그는 말한다. “진실한 사람이 들려주는 진실된 이야기보다 더 잘 팔리는 건 없다.”
롤러코스터처럼 성공과 실패를 오가며 과오를 거듭하다가, 반성하고 다시 일어나 인생의 키를 잡는 투지로 뭉친 사내의 이야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절로 ‘터미네이터’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I’ll b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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