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死後) 이혼
가수 자두가 부른 ‘김밥’에 사별하는 순간까지 사랑하겠다고 맹세하는 대목이 있다. ‘밥알이 김에 달라붙는 것처럼/ 너에게 붙어 있을래/(중략)/ 세상이 우릴 갈라 놓을 때까지/ 영원히 사랑할 거야.’ 하지만 사별조차 부부의 연을 끊지 못한다고 믿는 커플도 많다. 그런 이들은 ‘세상이 우릴 갈라 놓아도 저승에서 다시 만나면 된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르페우스가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으러 가고, ‘신곡’에서 단테가 연인 베아트리체와 재회하는 곳은 모두 사후 세계다.
▶그런데 일본에선 사별한 배우자와 이혼하는 사후(死後) 이혼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2012년 2213건이었는데 해마다 늘어 2022년엔 3000건을 넘었다. 남편이 아내보다 평균수명이 짧고 나이는 많다 보니 대개 아내가 사후 이혼을 신청한다. 사별한 배우자와 굳이 이혼까지 하는 이유는 혼인으로 맺어진 인척 관계 때문이다. 특히 시부모 간병이나 부양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이 크다고 한다.
▶한국에선 사후 이혼 신청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남의 나라 일로만 볼 것도 아니다. 일본의 사회 현상은 대개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에서도 반복되곤 한다. 혼인도 마찬가지다. 20년 전 일본에서 ‘졸혼(卒婚)을 권함’이란 책이 나왔을 때만 해도 졸혼은 우리에게 낯선 단어였다. 그런데 이젠 해혼(解婚)·휴혼(休婚)·황혼 이혼도 낯설지 않게 됐다. 우리나라 전체 이혼에서 황혼 이혼 비율이 2011년을 기점으로 신혼 이혼을 앞질렀다는 통계도 있다.
▶여기엔 결혼을 보는 가치관 변화가 깔려 있다. 집안 간 인연 맺기의 의미는 축소되는 반면 남녀의 결합이 중요해지고 있다. 사후 이혼을 뜻하는 일본의 법률 용어 ‘인족(姻族)관계 종료’에도 시댁이나 처가와의 인연을 끝낸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수명이 늘어나며 노년의 행복을 포기할 수 없게 된 것도 큰 이유다.
▶젊은 시절 서로를 묶었던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나이 먹어 지속하는 부부는 많지 않다. 문정희 시인도 시 ‘부부’에서 ‘결혼은 사랑을 무화(無化)시키는 긴 과정’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많은 부부가 죽음으로 헤어질 때 “먼저 가 있겠다”거나 “나중에 보자”고 한다. 살아서 이별한다면 몰라도 죽음은 부부의 연을 끊지 못한다. 부부가 평생을 함께하는 것은 부성애와 모성애도 남녀의 사랑 못지않게 간절하기 때문이고, 온갖 일을 함께 겪은 인생 동지라는 유대 의식도 크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지만, 그 모든 사연과 감정이 사후 이혼으로 지워진다면 몹시 아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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