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천안함, 같은 슬픔인데 왜 차별하나
[아무튼, 주말]
[서민의 정치 구충제]
좌파가 앞장서온 유족 지원
왜 천안함에는 적용 안되나
“답답한 일이 있어 오랜만에 글을 올려본다. ‘우리 히어로 트라우마 치유 지원 사업’이 종료됐다.”
최원일 전 천안함장의 말이다. 무슨 뜻일까. 2010년 3월 북한의 천안함 폭침으로 46명이 사망했다. 살아남은 이들 중 상당수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건 당연한 일. 고(故) 나현민 상병의 아버지 나재봉(55)씨의 말이다.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가족들 간에 대화가 없어졌다. 지금은 각자 일상으로는 돌아왔지만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어렵다. 숨어 사는 느낌이다.” 고(故) 박정훈 병장 아버지의 말도 들어보자. “1년 365일 정훈이 생각이 너무 많이 나는데 떠나간 아들은 ‘자신을 잊고 열심히 잘 지내라’는 의미인지 아빠·엄마 꿈에 한 번도 안 나온다.”
하지만 국가는 이들에게 무관심했다. 조용근 전 천안함재단 이사장이 “살아남은 58명의 용사들에게도 각별한 애정을 쏟아야 해요. 46명의 순직 용사들 못지않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영웅들입니다”라며 지원을 호소했지만, 국가의 배려는 없었다. 여기에 천안함에 대한 온갖 가짜 뉴스가 유포됐고, 민주당 대변인이던 권칠승은 생존 장병들이 다 구조될 때까지 천안함을 지킨 최원일 함장에게 “자기 부하들을 다 수장시켰다”며 모욕하기까지 했다.
이들에 대한 지원이 시작된 것은 13년이 지난 뒤였다. 2023년 6월, 대한정신건강재단은 우리금융과 손잡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등 감정적 고통을 겪는 현직 군인과 퇴직 군인을 지원하기로 한다. 대상자가 100명에 불과하고, 심리 검사비를 포함해 1인당 최대 200만원을 지원하는 것이니 엄청난 혜택이라 할 수는 없지만, 국가의 무관심 속에 지내온 병사들에게 이런 배려는 큰 힘이 됐을 것이다. 게다가 해당 재단이 자신들을 ‘우리 히어로’라고 불러주니 막힌 속이 뻥 뚫렸을 것도 같다. 최 함장도 여기에 대해 고마움을 표했다. “트라우마에 노출되고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알고도 해결 방법을 몰라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부상 장병들에게 (이 사업은) 한 줄기 빛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사업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재원 문제 등으로 인해 사업 시작 후 1년이 되는 6월 말이면 종료가 된다니 말이다.
최 함장이 답답했던 것은 단지 사업이 종료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자신들이 비교돼서였다. 올해 5월 29일, 세월호 참사 피해자의 의료 지원 기한을 5년 연장하는 세월호피해지원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10년 전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며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는 유가족과 생존자를 비롯해 전 국민에게 큰 슬픔이었다. 그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 박근혜 정부는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단원고 학생들과 희생자의 직계비속과 형제자매 등에게 대입 특별 전형을 시행하는 것과 더불어 의료 지원, 즉 “세월호 참사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질병 및 부상과 그 후유증의 치료, 간병 또는 보조 장구의 사용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급하기로 한다. 원래 의료 지원은 1년, 심리 지원은 5년간 하기로 했지만, 박근혜 정부가 탄핵된 뒤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의료 지원 기한을 ‘사고 후 10년’으로 연장했다.
유족들의 아픔을 생각하면 당연한 조치다. 아쉬운 점은 왜 이런 당연함이 천안함에는 적용되지 않느냐다. 천안함 피해자의 멘털이 세월호 피해자보다 더 강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2018년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대형 재난 사고 재발을 막자는 취지의 4·16재단이 만들어져, 5년간 국가로부터 매년 5억 원씩 지원받기 시작했다. 원래는 2023년 기한이 만료될 예정이었지만, 국가 지원을 10년으로 연장하는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기한이 2028년까지로 연장됐다.
2024년 4월 15일,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의료 지원이 끝났다. 좌파 언론들은 해당 분야 전문가를 내세워 이 기간을 연장하자고 주장했다. 국가적 재난으로 생긴 트라우마 치료에 기한을 두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 안산시 단원구를 지역구로 둔 민주당 고영인 의원은 아예 기한 제한 없이 의료비를 지원하자는 법률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연장에 반대했다. 의료지원금의 59%가 원래 목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심리 치료에 쓰이지 않고 치과와 한방 치료에 편중돼 있다는 것. 하지만 당사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참사 후 7~8년 만에 처음으로 트라우마 증상이 나타난 피해자나 유가족도 있다.” “트라우마 치료는 주기가 없어 지속적 의료비 지원이 필요하다.” “미국에선 9·11 테러 피해자들에게 사실상 종신 지원을 법으로 보장한다.” “평생의 아픔을 안고 가는 사람들에게는 길게 지켜봐 주는 시각이 필요하다.”
다 맞는 얘기다. 그런데 왜 이런 당연한 얘기가 천안함 피해자에겐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포털 검색창에 ‘세월호’와 ‘트라우마’를 넣으면 수만 개의 문서가 나오지만, ‘천안함’과 ‘트라우마’를 검색하면 그 1000분의 1도 나오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북한과 휴전 상태에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장병들에 대한 푸대접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지난 5월 28일, 민주당은 민주유공자법 등 다른 3개 법안과 함께 세월호 피해자의 의료지원을 5년 연장하는 특별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관건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 대통령은 ‘여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법안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다른 3개 법안과 달리 세월호특별법 개정안에는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이런 추세면 5년이 지난 뒤엔 또 다른 대통령이 의료지원을 연장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 더 안타까운 점은 다음이다. 세월호를 폄하하면 인간 말종으로 취급받고, 국회의원 공천도 물 건너가지만, 천안함을 폄하하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것. 위에서 언급한 권칠승도 이번에 공천을 받아 무난히 재선됐고, 최원일 함장을 “”미친XX” “병X 같은 새X” “패잔병”이라 부른 유튜버는 “명예훼손 혐의가 없다”며 경찰에 의해 불송치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윤공용 현 천안함재단 이사장의 절규를 소개한다.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한 지 1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천안함 사건의 진실에 관한 가짜 뉴스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포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유가족 중 9명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이 또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무관치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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