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료

버드 스트라이크

빠꼼임 2024. 12. 31. 18:34

버드 스트라이크

 
일러스트=이철원

한전 직원들은 봄마다 전신주 위 까치집을 제거하느라 곤욕을 치른다. 까치는 나뭇가지, 철사, 쇠붙이 등으로 둥지를 짓는데 비가 오면 이들 물질이 전선과 접촉하면서 정전 사고가 발생한다. 정전 사고의 5%가 까치집 때문에 생긴다. 한 팀이 하루 100개 이상 까치집을 제거해도 까치가 같은 곳에 둥지를 또 짓기 때문에 매년 같은 작업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까치가 싫어하는 뱀 소리를 내보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아직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풍력 발전기도 새와 박쥐가 충돌하는 사고로 골치다.

▶까치집 정도는 피해가 경미하지만 새 떼가 항공기와 충돌하는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시속 370km로 이륙 중인 항공기에 900g의 새 한 마리가 충돌하면 항공기가 받는 순간 충격은 4.8t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특히 새가 엔진 부분에 빨려 들어가면 엔진 팬 블레이드를 쳐서 깨뜨릴 수 있다. 깨진 블레이드 조각이 다른 부품과 충돌해 불꽃을 일으키면 폭발과 엔진 정지로 이어질 수 있다. 무안공항 참사가 그 경우였던 것 같다.

▶전 세계 항공 당국은 조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공항 주변 습지를 메우고 나무를 잘라내는 것은 기본이다. 조류 퇴치팀을 운영하며 공포탄을 발사하거나 경보기를 부착한 차량을 상시 가동하고 새들이 두려워하는 송골매나 독수리 로봇을 날리는 등 온갖 방법을 쓰고 있지만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고궁 건물 처마 밑엔 새들이 드나드는 것을 막는 망을 설치해 놓았다. 인터넷엔 항공기 엔진 입구에도 망을 치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이 적지 않다. 항공기 제작 업체들이 이미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비행기가 뜨는 양력을 얻으려면 강력한 흡입력으로 공기를 빨아들여야 한다. 엔진 입구에 망이 있으면 이 흡입력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또 이 망 자체가 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재앙이기 때문에 진작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1903년 최초 비행한 라이트 형제도 비행 중 새와 충돌했다는 일기가 남아 있다. 새들과 하늘을 공유한 이후 조류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매년 1만여 건, 국내에서도 100~200건 나오고 있다. 인명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조류 충돌로 인한 항공기 손상, 비행 지연과 취소 등 경제적 손실도 매년 2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AI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시대에도 새 떼와 공존하며 안전을 유지하는 일은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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