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료

실버타운

빠꼼임 2025. 3. 1. 13:12

실버타운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아무튼, 주말]
[나의 실버타운 일기] (1) 삶은 현재진행형

 
일러스트=유현호

내 나이 90. 몇 군데 노인 시설을 탐방한 끝에 지난해부터 이 실버타운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올 때 나는 90년의 인생을 대충 마감하기 위해 몇 달에 걸쳐 주변 정리를 했습니다. 과감하게 버릴 것은 버리고, 쓸 만한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었습니다.

마지막 정리까지 가장 어려웠던 건 사진, 편지, 이런저런 기록들, 여행 기념품, 아까워서 못 썼던 그릇 등 수십 년의 추억이 깃든 귀중품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었습니다. 긴 세월 서랍 속에서 잠들고 있던 옛날 편지와 노트들은 잉크 글씨들이 거의 다 날아가버렸고, 종이는 삭아서 부서지기 직전이었습니다. 눈 딱 감고 그 모든 추억들을 장사 지냈습니다.

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자녀들은 중장년이 되어 각자 바쁜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니, 그들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그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곳으로 왔습니다.

 

실버타운은 조용히 여생을 이어가다 인생의 종착점을 맞이하는 그런 곳일까요? 아니었습니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실버타운은 비로소 오롯이 나만의 인생이 새롭게 시작되는 곳입니다. 나를 중심으로 나를 위해서 나만의 책임으로 하루하루의 기적이 이루어지는 그런 곳입니다.

인생에 정리나 은퇴 같은 것은 없음을 실버타운에서 새삼 깨달았습니다.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현재진행형. 나는 여기서 또다시 새로운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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