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료

나의 실버타운 일기

빠꼼임 2025. 5. 3. 07:33

TV 건강 프로를 끊었다

[아무튼, 주말]
[나의 실버타운 일기](8)

 
일러스트=유현호

언제였더라? 110세도 훌쩍 넘은 최장수 할머니 쟌느가 100세에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왠지 순간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젊은이들이 골목 귀퉁이에서 전자 담배를 피우는 걸 보면 담배 끊기가 어렵다던데 100세에 건강을 위해 금연을? 그 결기가 신선했던 걸까?

의학이 발달하면서 건강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첫 번째 화두가 되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TV에서 좋은 시간대에 쏟아져 나오는 건강 프로그램. 안 볼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건강 프로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더구나 그 프로의 주요 대상은 나 같은 노인이 아니던가.

전문가들이 여러 명 나와서 건강 증진을 독려하고 질병 예방법을 알려줬다. 이어진 건강 회복 사례는 나의 건강 염려증을 점점 더 심화시켰다. 그래서 거의 동시간대에 판매되는 홈쇼핑의 건강 식품들을 여러 번 사보았는데, 끝없이 중첩되는 프로그램 내용과 사례자들의 연기에 신뢰감을 잃게 되면서 건강 프로그램에서는 졸업했다.

 

그래도 최근까지 공영 방송의 ‘생로병사’ ‘명의’ 등을 시청해 왔지만 그것도 실버타운에 와서는 끝. 아, 얼마나 후련한지! 나의 첫 번째 일탈은 바로 건강 염려증으로부터의 탈출이다. 그동안 외면해 왔던 먹거리들, 내가 사지 않았는데도 쌓여온 탄산음료, 각종 과자, 커피와 커피 믹스, 포도주, 유통 기간이 지난 떡, 햇반…. 건강 염려증에서 빠져나오니 먹거리들이 즐비하다. 매일 하나씩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별한 일도 약속도 없는데 굳이 지키려는 수면 강박증도 떨쳐버린다. 밤에 잠이 안 와도 초조해하지 않기로 한다. 어제도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밤 12시 10분에 깨어, 이렇게 평생 안 쓰던 일기도 쓰고 있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다.

※필자(가명)는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지금은 한 실버타운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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