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9구간,,끝 (가현치~칠장산)종주산행
산행날짜 : 2008. 2. 24(일)
날 씨 : 대체로 맑음, 어제 이어 오늘도 강풍을 예상했으나 바람은 별로임.
산행시작 때 -5℃, 낮 최고 6℃
산행시작 : 07 : 15 ,, 산행마침 : 11 : 41,, 산행시간 : 04시간 26분
산행거리 : 도상 약 12 km
산 행 자 : 山峨, 野草 (2명)
교통갈때 : 삼죽면소재지(07:08) ~ 택시 ~ 가현치(07:14)
교통올때 : 칠장사(13:33) ~ 택시 ~ 죽산(13:41) ~ 시외버스 ~ 안성(14:10) ~ 시외버스 ~ 천안 시외버스터미널 (14:48) ~ 시내버스
~ 천안역 도착15:05/ 출발 15:23 ~ 열차 ~ 김천역(17:13)
산행경로
가현치(07:15) ~ 헬기장(07:42) ~ 국사봉(08:01) ~ 고압송전탑(08:19) ~ 헬기장(08:24) ~ 82번 지방도로. 대성사 노인복지원(08:34) ~ 82번 지방도로(08:41) ~ 시멘트 포장도로(08:53) ~ 38번 국도 삼거리(09:00) ~ 삼죽면사무소(09:05) ~죽산 만남의 광장(09:32) ~ 38번 도로 지하터널(09:40) ~ 도덕산(10:37) ~ 관해봉(11:24) ~칠장산 (11:41) ~ 칠현산 갈림길 이정표(12:03) ~ 칠장사(12:16)
산행 시작점 가현치
오늘 한 구간만하면 한남정맥도 끝이다. 끝이 나면, 또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 9정맥중 7정맥은 마무리 했지만, 금북정맥과, 한남·금북정맥 2정맥이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구간을 수월하게 마무리 하려고, 어제 삼죽면 소재지에서 하룻밤을 묵고 여관방에서 간단하게 조식을 마치고, 어제 타고 나왔던 택시를 부른다. 택시 사무실이 묵었던 여관 건너편 컨테이너이다. 거기서 기다리란다. 10분여 기다리니 택시가 온다. 바로 타고 가현치로 향한다.
걸어가면 1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를 개인택시라서 그런지. 지리를 잘 알아서인지, 안성 땅에서 살아서 안성맞춤으로 운전을 하는 건지, 반대 방향에서 차량이 와도 겁도 없이 추월이다. 총알택시를 오랜만에 탔다. 6분여 만에 도착이다.
곧바로 산행시작이다. 왼쪽 편으로 3단의 철조망이 간간히 나오고, 등로는 낙엽이 많이 쌓여 있고, 미끄러운 구간도 별로이고, 좋은 편이다. 동쪽 하늘에서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다. 붉은 태양을 배낭에 넣어가지고 있을 수만 있다면, 추운 날씨에 하루 종일 등때기 뜨뜻할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든다. 붉은 태양을 바라보며 산행을 계속하니 한결 가볍기만 하다.
태양이 솟구치고 있다
첫 헬기장을 지나면서
07시42분 첫 헬기장에 오른다. 주위는 온통 낙엽으로 뒤덮여있고, 시멘트 블록은 낙엽사이로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곧 이어서 돌탑이 있는 안부로 약간 떨어졌다, 다시 오름이다.
국사봉 정상
08시01분 국사봉이다. 제법 큰 바위2개와 작은 바위 2개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여기서 직진하면, 바로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대로 직진하면 보개산으로 향한다. 길 주의다. 정맥은 국사봉 못 미쳐서 바로아래서 급 좌측으로 꺾어야 한다. 국사봉 정상을 알리는 비닐표지판이 참나무에 매달려 있다. 올라왔던 길을 잠시 되돌아 내려와서 내리막길을 이어가면, 고압철탑을 만나고, 우측으로 미륵사가 보인다. 한차례 떨어지면, 로프가 짧아서 군 전화선을 이어서 설치해 놓은 로프를 잡고 오르면 두 번째 헬기장을 만난다. 헬기장에서 정월 대보름 행사를 했는지 타다 남은 장작더미가 군데군데 어지럽게 널려져 있다.
미륵사 사찰이 멀리 바라보인다. (줌 사용)
오늘 두번째 헬기장
며칠 전 보름날 행사를 했는지 태우다 그만 둔 장작이 너질구레 함
2차선 포장도로로 내려서면서 만나는 노인복지원
08시34분 2차선 포장도로로 내려선다. 좌측의 대성사 노인복지원 마음의 쉼터 표석을 지나 좌측방향 산길로 접어드니 등로가 아주 나쁘다. 7분여 진행하니 좀 전에 만났던 그 도로로 내려선다. 도로를 가로질러 나무계단을 오른 후 10여분 진행하니,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난다. 주택과 축사를 끼고 등로를 이어가니 70.82번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뜨락식당 간판이 서있다(08:58).
차량통행이 전혀 없으며, 도로 한 켠으로는 결빙된 그대로 있음
축사를 왼쪽으로 바짝끼고 정맥은 이어 짐
여기서 부터 삼죽면 사무소까지는 도로를 따라서 가면 됨
38번 도로 삼거리
정맥은 면사무소 마당을 가로 질러 건물 우측으로 오르면 됨
2차선 도로를 따라서 삼죽면 노인회관앞을 지나, 국도 38번 삼거리교통표지판을 보면서 우측 방향으로 꺾어 삼죽면사무소 마당으로 진입 후 복지회관 우측으로 등로는 이어진다(09:09). 계속 오름이 이어지다 한 차례 뚝 떨어지면, 죽산만남의 광장으로 내려선다(09:30). 38번 국도로 떨어진다. 중앙분리대를 높게 쳐 놓아서 차량통행이 뜸해도 넘기가 어려울 것 같아 동쪽 방향으로 갓길을 따르다가 400여 m위 지하통로로 우회한다.
38번 국도가 시원스럽게 내려다 보임
죽산 만남의 광장
지하통로를 빠져나오면, 축사 건물 가운데로 나오게 되어있다. 흄관 공장을 지나서, SK 인천정유 주유소 뒤편으로 오름이 이어지고 한 차례 떨어지면, 시멘트 농로와 만나고, 다시 로프가 매달린 오름이 이어진다.
10시32분 좌측으로 로프가 매달린 오름길이 이어지고 도덕산 정상에 선다(10:37). 정상에는 삼각점이 박혀있고, 글씨는 마모 되어 식별 불능이다. 여기서 우측으로 큰 건물이 멀찌감치 바라보이는데 동아방송대학이다. 규모도 크고 건물도 멋지다.
오늘 마지막 피치
도덕산 정상에서, 젊은 산친구 山峨 님
우측에서는 채석장에서 돌 빠수는 소리가, 좌측으로는 골프장 공사장에서 나오는 소음이 심함
칠장산 정상 팻말, 아크릴 쪼가리를 붙여서 들고 한 컷 했음, 정상은 여기인데 정상석을 지고 오다고 무거워서 바로 밑 헬기장 옆에 설치했는지???
한차례 떨어졌다가 다시 오름이 이어진다. 오름 중간 중간 나무에다가 숫자가 쓰여 있는 비닐 표지판이 붙어 있다. 아마도 여기도 골프장 공사를 하는게 아닌지, ~~ 좌측으로는 골프장 공사장이 내려다보이고, 우측으로는 채석장에서 돌 깨는 소리가 들린다. 채석장 위험지역 표지판을 지나서 다시 오름이 이어지고, 계속 이어지는 좌측 5단 철조망을 끼고, 철조만 너머 골프장 공사장을 내려다보면서, 등로를 이어가면 관해봉에 오른다(11:24). 관해봉 정상에는 아무런 표지판도 없고 지도상에서나마 확인할 수 있다.
잠시 내려섰다가 눈이 녹지 않아서 미끄러운 등로를 오르면, 칠상장 아크릴 표지판과, 삼각점, 돌맹이를 하나 세워 놓았다. 여기가 한남정맥 끝 지점이다. 삼각점이 있는 정상 아래에는 헬기장과, 커다란 정상석이 놓여있다.
정상석은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칠장산 정상보다 조금 낮은 바로 밑 헬기장 옆에 설치되어 있음
3정맥 분기점 표지석 ::금북정맥, 한남정맥, 한남`금북정맥 분기점
정상석 뒤편에는 3정맥 분기점이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칠장사 삼거리 이정표
칠장사 대웅전
칠장사 七長寺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칠현산(七賢山)에 있는 절.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636년(선덕여왕 5)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 그 뒤 고려 초기에 혜소국사(慧炤國師)가 현재의 비각(碑閣) 자리인 백련암(白蓮庵)에서 수도할 때 찾아왔던 7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7인 모두가 도를 깨달아 칠현(七賢)이 되었으므로 산이름을 칠현산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혜소국사는 왕명으로 1014년(현종 5)에 이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 그 뒤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여 내려오다가, 1674년 세도가에게 산을 빼앗겨 승려들이 모두 흩어져서 잠시 빈 절이 되었던 것을 거사(居士) 초견(楚堅)이 다시 찾아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원통전(圓通殿)·명부전·응향각(凝香閣)·천왕문(天王門)·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웅장한 규모, 우아한 조각미와 채색미가 괄목할 만하다. 또한, 천왕문 내의 소조사천왕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비각 내에 보존되어 있는 보물 제488호의 혜소국사비(慧炤國師碑)가 있다. 1060년(문종 14)에 건립된 이 비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임진왜란 때 적장인 가토(加藤淸正)가 이 절에 왔을 때 어떤 노승이 홀연히 나타나 그의 잘못을 크게 꾸짖자, 화가 치민 가토가 칼을 빼서 베니 홀연히 노승은 사라지고 비석이 갈라지면서 피를 흘렸으므로 가토는 겁이 나서 도망쳤다고 한다.
현재 국사의 비신(碑身)은 가운데가 갈라져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이 밖에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인목대비의 친필 족자를 비롯하여 당간지주(깃발을 걸기 위해 세운 기둥 초석), 수많은 부도군(浮屠群:승려의 유골을 모신 부도들)이 있다. 이 중 족자는 인목대비가 이 절에 와서 수양할 때 쓴 것이다. 또한, 절 입구에 있는 14기의 부도와 절 뒤편의 수많은 부도탑은 이 절의 유구한 역사를 일깨워 준다.
특히, 절 입구에 있는 철당간지주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청주 용두사지(龍頭寺址)와 갑사(甲寺)에서만 볼 수 있는 극히 드문 문화재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칠장사의 풍수적 형국이 행주형(行舟形)이므로 이 당간으로 배의 돛대를 상징한 것이라 한다.
그 밖에도 고려 말에 왜구의 피해가 극심할 때 충주 개천사(開天寺)에 있던 사서(寺書)를 이 절로 옮겨서 보관하여 소실을 면한 일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명적암(明寂庵)·극락암(極樂庵)·백련암 등이 있다. 절 일원이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韓國寺刹全書(權相老 編, 東國大學校 出版部, 1976)
≪참고문헌≫ 名山古刹따라(李孤雲·朴雪山, 신문출판사, 1987)
경기도 칠현산(七賢山)에 있는 칠장사는 세운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0세기경에도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 현종 5년(1014)에는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넓혀 세웠는데 ‘칠장사’와 ‘칠현산’이라는 이름도 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7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선하게 만들었다는 설화에서 유래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인조 원년(1623)에 인목대비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의 명복을 비는 절로 삼아서 크게 된 곳이기도 하다. 이후 세도가들이 이곳을 장지(葬地)로 쓰기 위해 불태운 것을 초견대사가 다시 세웠으나 숙종 20년(1694) 세도가들이 또 다시 절을 불태웠다. 숙종30년(1704)에 대법당과 대청루를 고쳐 짓고 영조 원년(1725)에 선지대사가 원통전을 세웠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과 원통전을 비롯한 12동의 건물과 혜소국사탑과 탑비, 철제당간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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