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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콜리를 출발한 원정대는 고소적응을 겸한 이번 원정의 1차 목표인 K2 메모리얼을 향해 강행군을 해야 했다. 통상적으로 발토로 트레킹은 밤낮으로 변화가 심한 자연 환경과 고소증이라는 두 요인에 의해 파유와 콩코르디아에서의 휴식일 이틀을 포함해서 8~10일 정도의 상행 캐러밴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4일만인 7월9일 K2 BC와 2시간 거리에 있는 해발 4,794m(GPS 측정) 브로드피크 BC에 도착하는 강행군이었다.
▲ C3에서 하산하는 사진. 설벽으로 접근하기 위해 트래버스하고 있다.
10년 전 폭풍설에 사라진 세 대원 추모 트레킹
10년 전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떠나야 했던 이곳 브로드피크는 올해도 어김없이 여러 원정대를 황량한 품에 안고 있었다. 1996년 7월 경희대산악부의 홍정표 대장을 비롯한 브로드피크 원정대는 BC에서 두 달 가까이 지내며 해발 7,100m에 마지막 캠프(C3)를 세우고 식량과 장비를 모두 올려놓은 채 등정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사나흘간의 좋은 날씨만을 기다린다. 히말라야의 신은 경희대 원정대에게 좋은 날씨를 주고 등정을 허락한다.
▲ 등반 2일째, C2에서 C3로 이동하고 있다. 옆으로 보이는 절벽이 아찔하다.
BC를 출발한 정상공격조 한동근(87학번), 양재모(91), 임순택(91) 세 대원은 이틀만에 마지막 캠프인 C3에 여유있게 도착했고, 몸 상태도 좋다고 BC에 알려온다. 7월18일 이른 새벽, 마지막 캠프를 출발한 세 대원은 느리긴 했지만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콜(약 7,700m)로 올라선다. 전위봉으로 이어지는 리지를 오르면서 양재모, 한동근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등반을 하지만 임순택은 그렇지 못했다. 콜 아래서부터 가슴에 통증을 느꼈음에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앞선 두 대원을 따라 오른다.
양재모, 한동근 순으로 정상에 오른 공격조는 내려오는 도중 전위봉의 한 바위 위에서 편안한 자세로 앉아 카라코룸 연봉과 그 위로 기울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한참을 쉬다가 양재모가 먼저 하산을 시작한다. 전위봉 못 미친 리지 상에서 임순택을 만났을 때는 그의 상태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을 넘어서 있음을 알려온다.
얼마 후 한동근이 합류해서 임순택을 데리고 내려오려는 노력을 해보지만 두 대원은 등정에 거의 탈진 상태였기 때문에 임순택을 데리고 내려올 수 있는 상황은 못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임순택을 혼자 두고 갈 수 없다며 하산을 포기하고 만다. 어느덧 해가 지고 낮 동안 바람 한 점 없던 맑은 날씨는 급변해서 엄청난 폭풍설로 바뀌고 만다.
남아 있는 대원들의 기대와 달리 폭풍설은 밤새 계속되었고, 새로운 아침이 되어서는 더 심해진다. 밤사이 무전기 배터리가 바닥나서인지 위쪽 상황은 알 수도 없었다. BC를 떠나오던 날까지 산은 자신의 모습을 폭풍설 속에 감춘 채 세 명의 대원을 영원히 품에 품고 만다.
▲ (위) : C2에서 C3로 이동하는 도중 나타난 설원. 뜨거운 태양에 크레바스에 빠질 위험이 높아지면서 대원들의 걸음에 잠시 망설임이 생긴다.
(아래) : 스판틱 정상에서 부기를 들고 있는 최성호 대원과 천우용(03) 대원.
브로드피크 BC에 도착한 다음날(7월10일) 새벽, 아무런 말없이 대원들의 발자국 소리만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빙하를 따라 2시간만에 K2 메모리얼 맨 위쪽에 97년 세워둔 추모동판을 찾아서 석 잔의 술과 세 개비의 담배를 피워 올리고 고개 숙여 추모의 시간을 갖고는 두번째 목표인 스판틱 등반을 위해 발걸음을 되돌렸다.
스판틱 등반기점인 아란두(Arandu) 마을은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옥을 중심으로 펼쳐진 풍요로운 들판을 가진 전형적인 농촌이다. 아스콜리행 길이 갈라지는 하이더라바드를 출발한 지 3시간 반만에 겨우 아란두 마을에 도착했다. 지프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소로를 만나서 짐을 내리고 차를 후진으로 돌려보냈다. 차가 들어오는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서는 선착순으로 짐을 하나씩 어깨에 짊어지고 풍성하게 곡식이 자라는 들판을 가로질러 마을 반대편의 야영장으로 운반해 놓는다.
아란두 마을서 스판틱 BC까지는 초고룽마 빙하를 따라 3일 동안 걸어야하는 비교적 쉬운 트레킹 코스다. 7월16일 캐러밴 첫날. 아란두를 출발하여 빙하 말단을 향해 포터들 뒤를 따라 출발했다. 가야할 길을 올려다보니 빙하를 가로질러 건너편 산자락으로 이어진다. 빙하를 거침없이 올라서서 1시간만에 빙하를 완전히 가로지른 후 가파른 오르막으로 접어들었다. 뜨거운 햇살에 노출된 오름길을 20여 분 걸은 후에는 평지나 다름없는 오솔길이 이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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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행 캐러밴 이틀째 만피구라에서 불로초로 향하던 중 에메랄드빛 호수에 비친 스판틱이 아름답게 보였다.
캐러밴 둘째 날. 오전 6시 대원 먼저 길을 나선다. 길 주위로 무수한 야생화가 피어 있고 스판틱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져간다. 점심식사 후 약간의 오르막길을 올라 지나온 길과 같이 완만한 오르막의 걷기 좋은 길을 가다가 어느 순간 앞서 가던 포터들이 빙하쪽으로 사라지면서 흙먼지를 일으킨다. 사고라도 난 것은 아닌지 걱정되어 급히 다가가 보니 길이 유실된 곳에서 포터들이 빙하쪽 급사면을 내려가면서 돌이 굴러 먼지가 일어났던 것이다.
조심스럽게 사태지역을 내려서자 시커멓게 입을 벌린 빙하 옆으로 길이 이어져 있고, 그 길을 따라 가다보니 에메랄드빛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작은 호수가 마음과 몸을 이끈다. 그곳에서 20분 정도 더 가서 12시40분 볼루초(Bolucho·3,828m) 캠프로 들어섰다.
- 아래 기사는 2006년 경희대학교산악부 브로드 피크봉 10주기 추모원정대 '스팬틱봉(7,027m)' 등정 내용이 실린 '월간 산' 2006년 9월호 내용을 옮긴 것임.
- [원정보고] 파키스탄 카라코룸 스판틱
- 이제 후회 없이 산을 내려선다
경희대팀 ’96 브로드피크 추모등반 성공리에 마쳐
출처 : 왕마구리의 산행
글쓴이 : 왕마구리 원글보기
메모 : 해외원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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