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강 길 3일차 (3 코스. 대순진리회 ~ 4코스. 세종대왕릉) 끝
날 짜 : 2017. 10. 28 (토). 날 씨 : 좋 음. 오후에는 덥게 느껴 짐.
누 구 랑 : 나 홀 로.
시 작 : 08 : 00. 마 침 : 14 : 21. 거 리 : 15.7km.
코 스 : 대순진리회 ~ 목아박물관 ~ 금당교 ~ 신륵사 ~ 여주도서관 ~ 연인교 ~ 영월루 ~ 여주시청 ~ 여주중앙로
(여주5일장) ~ 대로사 ~ 세종산림욕장 ~ 효종대왕릉 ~ 세종대왕릉.
연3일 째 여강길을 밟는다.
대순진리회 신자들의 모습이다.
아직 문 열 시간이 안 된 모양이다.
***목아박물관은 1989년 우리나라 전통 목조각 및 불교미술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세워졌으며, 1992년 묺화관광부 제28호
등록된 전문사립박묽관이다. 특수박물관으로는 관람객 수가 가장 많은 편으로 우리 문화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본관에 사용된 붉은 벽돌은 서울 문리대 건물에 쓰였던 것을 활용한 것이다. 중앙 앞쪽과 좌 우로 원추형의 계단을 두어 불교
의 불,법,승, 삼보를 형상화시겼고, 전체적인 조형은 인도의 석굴사원을 모방하여 불교의 전통과 형대화의 조화를 꾀하였다.*
신 륵 사
보호수
수종 : 은행나무. 수령 : 약 600년. 수고 : 22m. 나무둘레 : 31m. 2.7m.
고유번호 : 여주-66. 지정일자 : 1982.10.15.
소재지 :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 관리자 : 신륵사.
신륵사 관광지 일원에서 오곡나루축제(10.27 ~ 10 29)가 한창이다.
대로사비(大老詞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4호
대로사비는 조선 후기 대유학자인 송시열의 제사를 모시는 대로사의 내력을 적은 비로, "대로(大老)"는 송시열의 존칭이다.
정조 11년(1787년) 송시열 탄생 180주년을 기념해 세웠으며, 정조가 직접 비명과 비문을 짓고 쓴 글씨를 정교하게 새겼다.
비석에 새긴 한 글자의 크기는 50cm로 상당히 큰 편이다. 비의 형태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석의 몸체를 세우고 그 위에
지붕 모양의 갓돌을 얹은 모양이다. 앞면에 전서체로 "대로사비"라는 비의 이름을 새기고, 나머지 세 면에 비문을 새겼다.
받침돌과 갓돌은 화강암이고 비의 몸체는 대리석이며 좋은 석재를 썼다. 비석의 총 높이는 3.77m이고, 비의 몸체 높이는
2.24m이며, 너비와 두께는 똑같이 66cm다.
여주 효종 영릉재실 ( 驪州孝宗寧陵齋室) 보물 제1532호
재실은 祭官의 휴식, 祭需 장만, 제기 보관 드의 제사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능의 부속 건물로 영릉재실은 1659년 경기도
양주군(현 경기도 구리시)에 능 조성시 인근에 건립되었으나, 1673년 영릉을 천릉하면서 현위치로 옮겼다.
건물들은 전반적으로 간결하고 소박하면서도 세부수법에 있어서는 짜임새 있게 건릷되었고, 안향형, 제기고, 재실, 행랑채
(대문 포함)등의 시설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유기적으로 적정하게 배치되어 있다.
조선왕을의 재실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이후 대부분 멸실되어 그 일부만 남아 있으나, 이곳은 조선시대 왕릉 재실의 기본
형태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학술적, 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여주 효종대왕릉 회양목 (천년기념물 제459호)
이 회양목은 잎이 두껍고 타원형이며, 꽃은 4~5월에 피고 열매는 6~7월에 갈색으로 익는 사철 푸른 나무이다.
경북 북부, 충북, 강원도, 황해도 지방의 석회암 지대에 주로 자생한다. 원래 회양목은 작고 낮게 자라는 나무로
이와같이 재실 내에 크게 자란 나무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생물학적 가치가 튼 노거수 일 뿐만 아니라 1673년
에 조성한 효종대왕 영릉 재실에서 300여년 동안 자라온 나무로서 그 유래 및 역사성이 매우 깊다.
홍 살 문 {홍 전 문(紅 箭 門)}
신성한 곳을 알리는 붉은색을 칠한 나무문, 홍전문, 홍문(紅門)이라고도 한다.
화살모양의 살대는 법도(法度)의 곧고 바름을 의미하며 나라의 위엄을 상징한다. 능역의 들머리에는 홍살문이 서 있고,
제관들이 찾을 때 절을 하는 배위가 조성되어 있다. 홍살문에 도착한 제관은 배위에 절을 하고 정자각에 이르는데
홍살문과 정자각을 연결하던 돌길을 참도(參道:참례하러 가는 길)라 하며 가운데 높은 길은 神道라 불러 돌아가신 先王의
혼령만이 신도로 출입할 수 있을 뿐이다.
수 복 방 (守 僕 房)
제기를 보관하거나 수릉관(守陵官 - 능을 지키는 관리)또는 수복(守僕 - 청소하는 일을 맡아보던 일종의 관노비)이
거처하던 곳이다. 터만 남아있던 것을 발굴하여 1977년에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수 라 간 (水 라 間)
산릉제례(산릉제례) 때 음식을 데우고 준비하던 곳이다.
터만 남아있던 것을 2005년 7월 발굴조사하여 2006년 복원하였다.
3일 연속으로 여강길을 걸었다.
강물에 심취하고, 단풍에 젖고, 풍경에 취해, 심장도 붉게 쿵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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