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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의 100세 일기

빠꼼임 2020. 1. 19. 15:44

김형석의 100세 일기

[아무튼, 주말] 제자는 앞을 못 보지만… 태양의 소리를 듣는다

조선일보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의 100세 일기]

[김형석의 100세 일기]
일러스트=이철원
지난 화요일 오후였다. 대문 밖에 서울 실로암 안과병원에서 온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병원장인 김선태 목사의 새로운 저서 '아침 태양에서 들리는 소리' 출판 기념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강서구 등촌동에 있는 그 병원 앞에 내렸다. 6~7층이 되는 대규모 안과병원이었다.

김선태 목사는 6·25전쟁 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전란 때 버려져 있던 포탄이 터지는 바람에 실명하는 비운을 맞았다. 친척집을 전전했으나 누구도 그를 반겨주지 않았다. 박대를 참지 못한 소년은 거리를 서성이면서 거지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점자(點字)를 배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기독교 학교인 숭실중학과 고등학교를 마쳤다. 학교의 도움이 컸기 때문에 숭실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다. 그때 안병욱 교수의 제자가 되었고 내 강의도 들었다. 김 목사는 중·고등학교로는 내 후배이고, 대학 때는 내가 그의 은사이기도 하다.

그 후에 목사가 되기 위해 장로회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매코믹신학대학까지 마치고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에는 목사가 되기보다는 실명한 사람과 더 많은 빛을 찾는 환자를 위해 안과병원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 업적이 특출했기 때문에 아시아에서는 모두가 흠모하는 막사이 사이 상을 받기도 하고, 졸업한 숭실대와 신학대학으로부터는 명예학위를 받았다. 대통령 표창과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거지에서 성자(聖者)가 된 김선태 원장의 인생 이야기는 2008년 조선일보 'Why?'에 소개된 적이 있다.

내가 축하 예배에 안내를 받아 들어갔을 때는 병원 안에 있는 예배실이 가득 차 있었다. 식순을 맡아 진행하는 이들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로 목사이다. 내가 축사 순서를 맡기로 했다. 두 차례 축하 음악 순서가 있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연주자들도 있어서 그런지 청중은 엄숙하기보다는 경건한 자세로 경청했다.

김선태 목사가 답사를 할 차례가 되었다. "존경하는 은사님과 포옹하는 인사를 하고 싶다"면서 나를 강단 앞으로 맞아들여 오래도록 서로 껴안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김 목사가 그렇게까지 나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모든 식순을 끝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을 감고 생각해 보았다. 김 목사는 책을 쓸 때마다 '태양의 빛'과 '태양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얘기한다. 그는 어렸을 때 실명했다.
그때 이후 태양에서 오는 빛이 얼마나 아쉬웠을까. 그 빛을 다시는 볼 수가 없으니까 상실한 시각 대신에 청각으로 그 광명 모두를 대신했을 것이다. 태양과 빛, 소리가 80평생 삶의 희망이고 소원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날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목사님 오래오래 사셔서 우리에게 감사와 행복을 깨닫게 해주시고 절망은 없다는 가르침을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2/20190322016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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