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100세 일기]
큰손녀가 며칠 동안 독일에 갔다가 왔다. 오래간만에 연이 소식을 전해 들어 기뻤다.
오래전이다. 우리 집에 고등학교 2학년인 한 독일 여학생이 와서 1년 동안 지낸 일이 있었다. 기독교 기관의 교환 학생으로 왔었다. 내가 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우리 부부를 '아빠' '엄마'라 부르라고 했다.
집에 온 다음 날 연이가 아내에게 "엄마, 1년 동안 내가 할 일은 무어야?"라고 물었다. 아내는 얼마 후에 얘기해 줄 테니까 기다려 보라고 했다. 그 애는 집에서 한 가지 가사를 맡아서 해왔기 때문에 물은 것이다. 나는 연이에게 "한 달에 네가 쓸 용돈으로 2000원씩 줄 테다. 학비나 책값은 따로 주겠고…"라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 애는 정말 구두쇠였다. 신촌 우리 집에서 서대문까지 버스삯이 아까워 꼭 걸어가곤 했다. 한 번은 나와 같이 버스를 탔다. 차장에게 내가 10원을 주었다. 두 사람의 요금이다. 차장이 그 돈을 받고 지나갔다. 연이가 5원을 꺼내면서 자기 버스삯을 갚으려고 했다. 내가 "네 돈은 넣어두어라. 오늘은 아버지가 내주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형제들도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좋아서 5원을 도로 지갑에 넣는다. 마치 오늘은 5원 벌었다는 표정이다. 아내에게 연이가 저렇게 절약해서 무엇에 쓰는지 좀 알아보라고 부탁했다.
그 애는 사직공원 옆에 있는 아동병원을 찾아가곤 했다. 그곳에 입원했다가 돌아가는 어린이들은 여러 고아원에서 와 치료를 받는 불쌍한 애들이었다. 연이가 토요일 오후마다 그 병원을 찾아가 애들과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하면서 놀다가 오곤 했다. 그 일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용돈을 줄이고 절약했던 것이다.
1년이 가까워지는 어떤 토요일 오후였다. 내가 집에 들어왔더니 아무도 없는 자기 방에서 연이가 혼자 슬프게 울고 있었다. 내가 방문을 두드리면서 "그래 1년 동안 있다가 떠나게 되니까 섭섭하지?"라면서 위로해 주었다. 연이가 말했다. "아버지, 나 오늘 아동병원에 마지막으로 갔다 왔어요. 다음 화요일에 독일로 떠나기 때문에 다시 못 오겠다고 했더니 애들이 다 울었어요. 나도 울었어요. 집에까지 울면서 왔어요." 참았던 울음이 터졌는지 흐느끼면서 울었다.
나도 마음이 아팠다. '저 애들은 교육다 운 교육을 받았구나'라고 부러운 마음에 숙연함을 느꼈다. 그래서 YS 정부 때, 우리 청소년에게도 봉사활동의 기회와 교훈을 만들어주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당시 우리 교육계는 학원 폭력이라는 사회적 걱정거리와 싸우고 있었다.
애들을 키워보면 그들의 인생관은 청소년기에 형성된다. 다시 한번 교단에 설 수 있다면 제자들과 함께 눈물을 나누는 사랑을 베풀고 싶다.
오래전이다. 우리 집에 고등학교 2학년인 한 독일 여학생이 와서 1년 동안 지낸 일이 있었다. 기독교 기관의 교환 학생으로 왔었다. 내가 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우리 부부를 '아빠' '엄마'라 부르라고 했다.
집에 온 다음 날 연이가 아내에게 "엄마, 1년 동안 내가 할 일은 무어야?"라고 물었다. 아내는 얼마 후에 얘기해 줄 테니까 기다려 보라고 했다. 그 애는 집에서 한 가지 가사를 맡아서 해왔기 때문에 물은 것이다. 나는 연이에게 "한 달에 네가 쓸 용돈으로 2000원씩 줄 테다. 학비나 책값은 따로 주겠고…"라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 애는 정말 구두쇠였다. 신촌 우리 집에서 서대문까지 버스삯이 아까워 꼭 걸어가곤 했다. 한 번은 나와 같이 버스를 탔다. 차장에게 내가 10원을 주었다. 두 사람의 요금이다. 차장이 그 돈을 받고 지나갔다. 연이가 5원을 꺼내면서 자기 버스삯을 갚으려고 했다. 내가 "네 돈은 넣어두어라. 오늘은 아버지가 내주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형제들도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좋아서 5원을 도로 지갑에 넣는다. 마치 오늘은 5원 벌었다는 표정이다. 아내에게 연이가 저렇게 절약해서 무엇에 쓰는지 좀 알아보라고 부탁했다.
그 애는 사직공원 옆에 있는 아동병원을 찾아가곤 했다. 그곳에 입원했다가 돌아가는 어린이들은 여러 고아원에서 와 치료를 받는 불쌍한 애들이었다. 연이가 토요일 오후마다 그 병원을 찾아가 애들과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하면서 놀다가 오곤 했다. 그 일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용돈을 줄이고 절약했던 것이다.
1년이 가까워지는 어떤 토요일 오후였다. 내가 집에 들어왔더니 아무도 없는 자기 방에서 연이가 혼자 슬프게 울고 있었다. 내가 방문을 두드리면서 "그래 1년 동안 있다가 떠나게 되니까 섭섭하지?"라면서 위로해 주었다. 연이가 말했다. "아버지, 나 오늘 아동병원에 마지막으로 갔다 왔어요. 다음 화요일에 독일로 떠나기 때문에 다시 못 오겠다고 했더니 애들이 다 울었어요. 나도 울었어요. 집에까지 울면서 왔어요." 참았던 울음이 터졌는지 흐느끼면서 울었다.
나도 마음이 아팠다. '저 애들은 교육다
애들을 키워보면 그들의 인생관은 청소년기에 형성된다. 다시 한번 교단에 설 수 있다면 제자들과 함께 눈물을 나누는 사랑을 베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