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김형석의 100세 일기(여자 친구들이 다 도망갔다)

빠꼼임 2020. 1. 20. 19:24

김형석의 100세 일기

[Why] 여자 친구들이 다 도망갔다

조선일보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의 100세 일기]
내 나이가 알려지면서 몇 안 되던 여자 친구들이 다 떠나버렸다
제자가 놀려 주었다 "꼬부랑 할머니들이 지팡이 짚고 찾아올지 누가 알아요?"


지난달 말 금요일이었다. 차편이 생겨 오래간만에 예술의전당을 찾아갔다. 화가 샤갈의 전시회를 보기 위해서다. 오래전 모딜리아니 때만큼 인상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했다. 샤갈의 그림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있고 향수가 넘친다. '비테프스크 위에서' 그림은 더욱 그랬다. 전시를 보고 출판을 기념하는 저녁 회식장으로 갔다.

작년에 불광동 성당에 갔는데 본당 입구에 내 강연 주제인 '독서하는 국민이 되자'가 쓰여 있었다. 그날 나는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 등 다섯 나라의 문화 혜택을 받아 인류가 밝은 문화의 햇볕 밑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중국과 더불어 아시아 문화권을 이끌어 갔으면 좋겠다. 그 기초 작업은 간단하다. 국민의 절대 수가 100년 이상 독서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먼저 소개한 다섯 나라가 그러했다고 보는 것이 내 생각이다"고 말했다.


김형석의 100세 일기
2년 전에 '백년을 살아보니'를 출간했는데, 15만 부 이상 팔렸다. 내가 감사히 생각하는 것은 50~60대 장년층이 책을 읽는다는 사실이다. 그 뒷받침을 하고 싶어 다시 '행복예습'이라는 신간을 내놓았다. 내용과 수준은 먼저 책보다 약간 높은 것 같다. 그 출판을 기념해 출판사가 베풀어 주는 저녁식사 자리에 도착했다.

조촐한 모임이었다. 10명 정도의 출판사 실무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P상무가 "'백년을 살아보니'가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아서 감사하며, 이번 책은 내용이 풍부하고 흥미롭기 때문에 더 많은 독자가 애독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인사를 했다. 다들 내 표정을 지켜보았다. 한마디 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나는 "그 말씀은 사실입니다. 출판사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인 나는 얼마나 큰 손해와 타격을 받았는지 모르실 겁니다. 우선 내 나이가 백 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몇 명 안 되던 내 여자 친구들이 1~2년 동안에 다 떠나버리고 말았어요. 이제부터는 혼자 외롭게 고독을 이겨내면서 여러분의 행복을 원해야 하는 심정과 처지는 모르시지요?"라고 했다. 모두 웃었다. 내 눈에는 아직 어려 보이는 한 여직원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표정이었다.

식사를 끝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다. 동행
했던 제자가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백 살 넘은 꼬부랑 할머니들이 지팡이를 짚고 찾아올지 누가 알아요?"라며 놀려 주었다. 나는 웃으면서 "백 살이 되니까 그런 옛날의 꿈은 다 사라진 것 같아요. 지금 바라는 것은 좀 더 많은 사람이 내 책을 통해 행복해졌으면 감사하겠어요"라고 했다. 나 한 사람의 행복보다는 독자들의 행복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21/20180921015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