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김형석의 100세 일기(이기붕의 선택이 주는 교훈)

빠꼼임 2020. 1. 20. 10:36

김형석의 100세 일기

[Why] 이기붕의 선택이 주는 교훈

조선일보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의 100세 일기]
서울 광화문으로 가던 버스가 서대문 농협박물관 앞에 멈춰 섰다. 길 건너편을 바라보았더니 '4·19 기념도서관' 건물 간판이 눈에 띄었다. 4·19 전에 있었던 이기붕 일가의 알려지지 않은 일이 생각났다. 그 당시 이기붕의 비서였던 한글학자 한갑수로부터 들은 얘기다.

자유당 시절 이승만 대통령의 후계자로 알려지고 있던 이기붕은 건강이 좋지 못했다. 정치적 격동기를 겪으면서 건강 악화를 참아오던 이기붕은 비서 한갑수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비밀이니까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이번 토요일 오전 10시에 중대 성명이 발표될 것이라고 언론에 알려라. 그리고 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정계에서 은퇴한다는 성명서를 준비해라."

지시를 받은 한갑수가 성명서를 작성해 결재를 받았다. 토요일 10시에 자신이 대독할 예정이었다. 이기붕은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두 사람만의 비밀이었다.

토요일 9시쯤 되었을 때였다. 자유당 강경파로 알려져 있던 세 사람이 찾아왔다. 이기붕에게 "무슨 성명이냐"고 물었다. 세 사람은 정치적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내용일 것으로 기대했던 모양이다. 이기붕은 한 시간 후에 알려질 내용이기 때문에 '정계를 떠나기로 했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그 얘기를 들은 세 사람이 "연로한 대통령을 위해 꼭 필요한 시기에 그렇게 은퇴하면 이승만 박사는 어떻게 되고 이 난국을 누가 책임지느냐"고 항의하면서 한갑수 비서에게 그 성명서를 보자고 했다. 이기붕의 허락을 받고 보여주었다. 한 사람이 성명서를 그 자리에서 찢어 버리며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라고 만류했다. 성명 발표는 무기한 연기한다는 내용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기붕도 세 사람을 설득하지 못하고 "알아서 하라"는 말을 남기고 뒷방으로 들어갔다.

시민들과 정계 인사들은 어떤 중대한 발표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가 아무 소식도 얻지 못했다. 다섯 사람의 숨겨진 사건으로 끝난 셈이다. 한갑수는 나에게 '이기붕은 큰아들(이강석)을 양자로 입적시킬 정도로 이 박사와 인연을 맺었고, 부인 박마리아 여사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정계 은퇴 결심을 실제로 단행하기에는 정권에 대한 애착이 남아 있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뒤이어 4·19 사건이 벌어졌다. 피신할 곳이 없었던 이기붕 가족은 전방의 한 사단장에게 은신처를 요청했으나 뜻대로 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로 찾아갔다. 이 박사도 환영할 처지가 못 되었다. 한쪽 방
을 얻어 머물려고 했다. 그러다가 이강석의 뜻에 따라서 가족을 총으로 쏘고 자결하는 비극으로 끝났다. 그때 찾아온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일본으로 망명했고, 두 사람은 영어(囹圄)의 신세가 되었다.

나는 당시의 일들을 회상하면서 '역사는 과거가 현재를 결정지어 주지만 현재는 언제나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 그 가능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12/20181012018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