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100세일기] 20년 전부터 멋지게 입고 다닐 걸
입력 2020.06.27 03:00
[아무튼, 주말]
내가 양복을 잘 입는 신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저 혼자 있을 때는 편하게, 공적인 곳에서는 평범하게 지내고 싶었다. 지금도 어머니가 남겨 준 우스운 이야기를 기억한다.
몹시 더운 여름날이었다. 한 사람이 얼마나 더운지 시험해 보자는 생각으로 솜바지 저고리를 입고 거리를 한 바퀴 돌았다. 자기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보는 사람들이 더워 죽더라는 말씀이었다. 어머니는 더운 여름에 넥타이까지 매고 나서는 아들의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일러스트= 김영석
그렇게 살아온 내가 100세가 되면서 옷을 잘 입는 신사라는 얘기를 듣는 때가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강연회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다가 6월 중순, 지방 한 교회에 갔다. 주최 측에서 준비해 준 의자에 앉아 80분 정도 강연했다. 끝나면 강연에 관한 얘기가 대부분이었으나, 두세 사람이 "누가 옷차림을 도와주느냐"고 묻기도 하고, "우리 목사님보다 더 젊어 보인다"면서 웃기도 했다. 한 할머니가 "사모님이 미술가인지 모르겠다"고 칭찬했다. 나는 속으로 '그래도 옷보다는 강연 내용이 더 좋았을 텐데' 생각했다.
그 무렵이었다. 동아일보 사장을 비롯한 몇 분과 점심을 같이 하게 되었다. 동석했던 여자 부장이 옷차림과 넥타이를 누가 챙겨주느냐고 물었다. 백세 할아버지치고는 약간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혼자 골라 입는다"고 답했다. 돌아오면서 나도 어느 정도 의상에 관한 미적 감각이 있는가 싶어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어떤 애독자가 유튜브에서 내 강연을 들었다면서 "옷차림도 멋있었다"고 칭찬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20년 전부터 멋지게 입고 다녔으면 좋았을걸' 하면서 혼자 웃었다.
사실은 옷차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대학 동창이면서 연세대 교수이던 정경석이 아내와 함께 나에게 충고해 준 일이 있었다. 아내가 병중에 있을 때라 많이 힘들었던 시절이다. 주어진 책임은 감당해야 하고 개인 생활은 이전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 친구가 몇 가지 위로와 부탁을 했다. "야, 너 벌써부터 홀아비 냄새가 난다. 힘들어도 옷이라도 반듯이 입으면 보는 사람들과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어?"라는 충고였다. 그 얘기 속에는 앞으로는 아내의 도움은 못 받고 살 텐데, 하는 우정 어린 사랑이 깔려 있었다. 그 충고를 계기로 공식석상에 나설 때 거울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 친구는 학생들이 옆에 있어도 "어이! 형석아!" 하고 큰 소리로 찾아 옆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곤 했다. 한 번도 나를 '김 교수'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이제는 나를 "형석아!"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어지고 말았다.
오래 살면서 얻은 교훈이다. 30~40대에는 옳고 그른 것을 따지면서 살았다. 50부터 80까지는 선과 악의 가치를 가리면서 지냈다. 최근에는 추한 것을 멀리하고 아름다운 여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옷차림은 그 작은 한 가지일 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26/2020062602678.htmlr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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