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5.02 03:00
만100세 생일맞은 김형석 延大명예교수
본지 실린 칼럼 엮은 '백세 일기' 펴내
"백세일기를 연재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이게 책으로 나올 거란 생각은 안 했어요. 인문학 공부를 하는 한 모임에서 이 칼럼을 모아다가 교재로 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책을 내면 좀 더 편하게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일주일 전인 4월 23일 만 100세 생일을 맞은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아무튼, 주말'에 연재한 칼럼 '백세일기'를 엮은 책이 나왔다. 2018년 3월 10일에 첫 칼럼이 실렸고, 100회분을 훌쩍 넘겼다. 김 교수가 작업실로 애용한다는 서울 홍은동 한 호텔 로비에서 만났을 때, 그는 보청기·지팡이·틀니 중 아무것도 몸에 갖추지 않고 있을 만큼 정정했다. 지난해엔 이틀에 한 번꼴로 전국을 다니며 강연을 했다. 올해 들어 청력이 조금 약해져 옆에서 큰 소리로 말을 건네야 했다. 그는 "여전히 나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는지, 연애를 하는지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있다"며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남들과 함께 사는 세상, 젊어서만 연애하냐, 늙어서도 한다고 대답한다"고 했다.
"저도 카페 같은 데서 제 또래 할아버지보다 여자랑 얘기하는 게 더 좋아요. 앞으로 그런 기회가 많이 생겨서 그걸 칼럼으로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하."
1920년에 평남 대동군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6·25, 4·19혁명 등을 직접 보고 겪었다. 수영장에서 할머니 무리에게 기가 죽은 할아버지 이야기처럼 최근 일상부터 윤동주와 중학교를 함께 다닌 80여 년 전까지, 그의 칼럼 소재는 20세기 초부터 21세기 초까지 한 세기를 마구 넘나든다. 글의 내용을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머릿속에 정리가 되면, 한 시간도 안 돼서 칼럼을 완성하는 일필휘지형이다. 칼럼 소재가 떨어지거나 마감 시간을 피하고 싶었던 적이 있느냐고 묻자, "사람이 늙는다고 하는 건 미래가 없어지고 과거는 길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소재가 아직 많이 남았다. 원고 마감이 힘들거나 귀찮은 적도 전혀 없었다"고 했다. 대신 불만 아닌 불만을 한 가지 제기했다.
"저도 카페 같은 데서 제 또래 할아버지보다 여자랑 얘기하는 게 더 좋아요. 앞으로 그런 기회가 많이 생겨서 그걸 칼럼으로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하."
1920년에 평남 대동군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6·25, 4·19혁명 등을 직접 보고 겪었다. 수영장에서 할머니 무리에게 기가 죽은 할아버지 이야기처럼 최근 일상부터 윤동주와 중학교를 함께 다닌 80여 년 전까지, 그의 칼럼 소재는 20세기 초부터 21세기 초까지 한 세기를 마구 넘나든다. 글의 내용을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머릿속에 정리가 되면, 한 시간도 안 돼서 칼럼을 완성하는 일필휘지형이다. 칼럼 소재가 떨어지거나 마감 시간을 피하고 싶었던 적이 있느냐고 묻자, "사람이 늙는다고 하는 건 미래가 없어지고 과거는 길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소재가 아직 많이 남았다. 원고 마감이 힘들거나 귀찮은 적도 전혀 없었다"고 했다. 대신 불만 아닌 불만을 한 가지 제기했다.
"백세일기는 200자 원고지 6.5매 분량이에요. 예전에는 제 글을 맘껏 쓰다가 제한된 지면 분량에 맞추려니까 그건 좀 싫네요. 게다가 짧은 글 안에서 재미도 좀 있어야 하고 읽고 나서 생각할 거도 좀 있어야 하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에요."
지난 4월까지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강연이 거의 취소됐지만, 5월부터 다시 강단에 선다. 그는 "일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을 때까지 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덧니를 드러낸 채 씩 웃더니 말을 이었다.
" '그렇게 안 되면(일을 못 하면) 그만 살래?'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에요. 우리 어머니는 '아흔이 넘으니 재미없다, 오래 안 살아야겠다'고 자주 말씀하시면서도 손자가 내복 사 들고 가면 나중에 입겠다고 아껴두셨죠. 그럼 손자가 '할머니 200세까지 살고 싶은가보다' 하고 놀리곤 했어요. 제가 딱 그때 어머니 심정입니다. 아흔이 넘으면 몸과 마음이 피곤해지는데도 더 살고 싶은 의욕, 생에 대한 애착은 없어지지 않아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그래도 이백 살까진 안 살래요."
지난 4월까지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강연이 거의 취소됐지만, 5월부터 다시 강단에 선다. 그는 "일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을 때까지 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덧니를 드러낸 채 씩 웃더니 말을 이었다.
" '그렇게 안 되면(일을 못 하면) 그만 살래?'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에요. 우리 어머니는 '아흔이 넘으니 재미없다, 오래 안 살아야겠다'고 자주 말씀하시면서도 손자가 내복 사 들고 가면 나중에 입겠다고 아껴두셨죠. 그럼 손자가 '할머니 200세까지 살고 싶은가보다' 하고 놀리곤 했어요. 제가 딱 그때 어머니 심정입니다. 아흔이 넘으면 몸과 마음이 피곤해지는데도 더 살고 싶은 의욕, 생에 대한 애착은 없어지지 않아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그래도 이백 살까진 안 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