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한국인 없는 K팝 그룹 탄생
1990년대를 풍미했던 보이 그룹 H.O.T는 결성 당시 해외 진출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잘생긴 외모, 세련된 노래, 현란한 춤을 TV로 본 중국과 동남아 청년들이 열광했고, 이에 고무된 SM 등 기획사들이 해외 진출을 목표로 K팝 아이돌 그룹 만들기를 시작했다. 노래와 춤 못지않게 언어 장벽을 넘는 게 숙제였다. 재미교포 유진과 재일교포 슈를 발굴해 내놓은 첫 작품이 걸그룹 S.E.S였다. 슈를 앞세워 일본에 진출했고 대만에선 가장 인기 있는 걸그룹이 됐다. K팝 열풍의 시작이었다.
▶원더걸스, 동방신기 등 토종 한국인 아이돌이 해외 진출에 나섰던 이 시기를 ‘K팝 1.0′이라 한다. 이후 최근까지는 다국적 그룹이 대세인 ‘K팝 2.0′ 이다. 걸그룹 트와이스 멤버 9명 중 쯔위는 대만인, 모모와 사나는 일본인이다. 많은 일본 소녀가 모모와 사나처럼 K팝 걸그룹이 되어 도쿄돔 무대에 서는 날을 꿈꾸며 한국에 온다. 블랙핑크의 메인 댄서인 태국인 리사는 그 나라 청년들 사이에서 가장 닮고 싶은 롤모델이다. 태국 총리도 “국위를 선양한 젊은이”라고 공개 칭찬했을 정도다. K팝의 지평을 넓힌 사례들이다.
▶마침내 한국인이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K팝 그룹이 등장하는 ‘K팝 3.0′ 시대가 열렸다. 지난달 신곡 ‘카르마’를 선보인 걸그룹 블랙스완이 그 주인공이다. 국적과 인종 조합은 더욱 파격적이다. 파투는 세네갈 출신의 벨기에 국적 흑인이고 가비는 독일 출신의 브라질 국적 백인이다. 스리야는 인도인, 앤비는 미국인이다. 이들의 출신국은 K팝이 시장 확장을 노리고 있는 지역들이기도 하다.
▶K팝의 현지화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일본에서 얼마 전 결성된 니쥬(NiziU)는 멤버 전원이 일본인이고 노래도 일본어로 한다는 점에서 K팝의 토착화 사례로 꼽힌다. JYP 엔터테인먼트 박진영 대표가 지난해 뉴욕과 LA 등 대도시를 돌며 A2K(아메리카 투 코리아)라는 글로벌 오디션을 연 것도 영어권에서 활동할 현지인 K팝 걸그룹 재원을 찾기 위해서였다.
▶‘한국인이 부르거나 한국어로 불러야 K팝’이란 정의는 더 이상 맞지 않는다. 누가, 무슨 언어로 부르건 ‘화려한 칼군무에 맞춰 숨소리조차 흐트러지지 않게 노래하고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게 K팝’이란 것이다. 그 사이 K팝의 역사를 다시 쓴 BTS는 10주년을 맞았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전 세계 아미(BTS 팬덤)가 한국을 찾고 있다. K팝의 진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응원하며 지켜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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