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계엄으로 지키려 한 것은 대체 뭐였을까?
[아무튼, 주말]
[서민의 정치 구충제]
20년 뒤 상상해 본
소설 '윤석열의 150분'
“뭐라고요? 기호 1번부터 5번까지 모두 좌파라고요?” 2045년, D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온 탕가라(감비아 기생충학과)는 S 교수의 말에 진심으로 놀랐다. 5년 만에 치르는 대선, 이 나라에선 국회 의석수대로 정당 기호가 정해진다는데, 보수 정당이 겨우 3석에 불과해 기호 6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 이제야 이해가 되네.’ 탕가라는 줄곧 궁금했었다. 한때 세계 10위 안에 드는 부국이던 대한민국이 왜 자기네 나라와 비슷한 수준이 됐는지.
보수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 하고, 좌파는 빈부 격차 등 사람들의 시기심을 이용해 표를 구한다. 특히 대한민국 좌파는 상대 진영의 약점을 부풀려 악마화하는 데 일가견이 있어서, 그들이 선거에서 써먹은 전략은 후진국 독재 정권들이 교재로 사용할 정도였다. 그런 이들이 20년 연속 집권했으니, 국가 경쟁력이 수직 낙하할 만도 했다. “그런데, 한국 국민은 이 사실을 모르는 건가요? 왜 계속 좌파에게 투표하는 겁니까?”
S 교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좌파는 우리가 점점 못살게 된 이유를 친일 청산이 안 된 탓이라고 한다네. 걔들한테 보수는 친일파 그 자체거든.” 탕가라는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말이 됩니까?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단절한 게 오래전이라면서요?” S 교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자네 말이 맞네. 보수가 멸망한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어. 20년 전에 윤석열이라는 분이 대통령을 했는데….”
S 교수가 한 얘기는 다음과 같았다. 검찰총장 시절, 권력자 측근의 비리를 수사했다는 이유로 정치 보복을 당했던 윤석열은 궤멸 상태였던 보수를 구해 달라는 국민의 요구에 따라 대선에 출마했고, 결국 대통령이 된다. 국민이 그에게 바란 것은 두 가지. 하나는 무너져 가는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워달라는 것, 둘째는 정치인의 탈을 쓴 범죄자들이 죗값을 받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윤통은 첫째 임무를 비교적 잘 해냈다. “그럼 인기가 꽤 많았겠어요?” S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그렇지가 않아. 여사에게 문제가 좀 있었거든. 좌파는 그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말이야. 정말 신기한 점은, 좌파가 눈을 부릅뜨고 여사만 보고 있는데, 여사란 분이 비판할 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해줬다는 사실이야.”
더 어이없는 점은, 윤통이 여사를 옹호하느라 총선을 지휘하던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었다는 사실이다. 안 그래도 열세였던 선거판에서 대통령과 당대표가 분열한 데다, 의대 증원으로 전통적 보수 지지층인 의사들마저 적으로 돌렸으니, 선거 결과는 보나 마나였다. “총선 패배는 윤통에게 부여된 둘째 미션까지 어렵게 만들었지. 야당이 총 12가지 혐의로 재판을 5건 받는 자기네 당대표를 보호하려고 국회가 가진 모든 권한을 사용했거든.”
민주당의 만행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재명으로 하여금 1심에서 징역 1년. 집유 2년을 받게 한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죄를 삭제하는 개정안을 냈고, ‘성남FC 후원금 사건’ 등에 적용될 제3자 뇌물죄 처벌 범위를 축소하는 형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불법 대북 송금 건으로 재판받는 이화영을 보호하기 위해 검찰이 수감자 소환 조사를 못 하게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또한 자기들이 가진 탄핵 소추권을 이용해 이재명을 수사하는 검사들을 탄핵하기까지 했으니, 헌정사에 이런 무소불위 정당이 또 있었을까 싶다.
탕가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국민들은 그런 걸 보고도 가만 있었나요?” “공영방송을 참칭하는 MBC와 다른 좌파 언론들이 민주당 기관지 노릇을 했거든.” 아무리 언론이 편파적이라 해도, 많은 국민을 오랫동안 속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이재명이 공직선거법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자 지지자들은 속속 이탈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주최하는 윤통 퇴진 촉구 집회의 참가자가 갈수록 줄어든 게 그 증거였다. 공직선거법과 위증 교사는 길게는 1년, 최소 6개월 안에 대법원 선고까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느리긴 했지만 둘째 미션의 성공도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탕가라는 다음 얘기가 궁금해 침을 꼴깍 삼켰다. “그래서요? 이재명이란 사람, 구속됐나요?” S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게 말이야, 윤통이 뜬금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해 버렸어.” “네? 계, 계엄요? 이 무슨 황당한 짓이죠?” 12월 3일 밤 10시 30분, 윤통은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서울의 봄’이라 이름 붙은 1980년의 계엄 이후 44년 만의 일, 문제는 계엄을 발동할 상황이 아닌 데다, 헌법 77조 5항에 ‘국회 과반수의 찬성이 있으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 대통령이 국회를 봉쇄해 표결을 못 하게 했겠네요?” “철저히 준비하고 계엄을 발동했다면 그렇게 했겠지. 근데 윤통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 계엄군이 왔을 때, 국회에는 이미 소식을 듣고 온 수많은 시민이 있었다. 계엄군은 1시간 가까이 국회 진입을 시도했지만, 그들에게 밀려 본회의장 진입에 실패하고 만다. “그러는 사이 참석한 국회의원 190명은 만장일치로 계엄 해제를 결의하지. 그때가 새벽 1시였으니 계엄 소동은 150분 만에 끝난 셈이지.”
“네? 그게 끝이에요? 진짜로?” 탕가라는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무슨 대통령이, 일을 그렇게 해요?” S는 다시금 쓴웃음을 지었다. “더 신기한 게 뭔지 알아? 민주당에 김민석이라는 인간이 있어요. 그 작자가 그해 8월부터 석 달 가까이 ‘정부가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정부에 따져 물었다는 거야. 당연히 근거는 없었지. 근데 말이야, 상대가 계엄 선포하는 거 아니냐고 계속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진짜 계엄을 선포해 버리는 대통령이 어디 있어? 왜 거짓 선동가를 예언가로 만들어 주냐고!”
윤통이 그때 아무것도 안 했다면, 그냥 당하고만 있는 피해자로 남았다면, 상황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대통령에게 법적인 하자가 있는 게 아니니, 민주당이 탄핵안을 발의해 봤자 기각될 것이 뻔했다. 하지만 윤통은 바로 그 ‘하자’를 민주당에 제공했고, 결국 탄핵 위기에 처한다. 법정 구속이 될 운명이었던 이재명은 극적으로 부활해 대통령이 된다. “그 뒤 보수는 다시 집권하지 못했지. 두 번 연속 보수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했는데, 다시 보수를 찍을 국민이 얼마나 되겠어?”
탕가라가 이제 그만 들어가 보겠다고 짐을 싸는데, S의 넋두리가 들려왔다. “그나저나, 윤통이 계엄으로 지키려던 건 대체 뭐였을까? 역시 여사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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