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능선위로 해가 솟아 오름
부귀산이 바라보임
부귀산 암벽구간
부귀산 전망바위에서 마이산을 바라 봄
절벽에 소나무가 멋짐
진안읍내가 바라 보임
병조참판 묘( 학생 묘 보다 허술 한 것 같이 보임)
26번 국도 4차선을 차가 오지 않을때 건넘
젊은 산친구 산아 님(1955년산)
종주팀원 막내(이계장 님) 젊음이 넘침~~
◆ 탑사 탑사는 태고종단에 소속된 사찰로 마이산 속에 쌓여진 신비한 돌탑무리에 자리잡아 세워진 사찰이다. 이 사찰은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마이산 석탑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1928년의 기록에 의하면 그때까지도 이갑룡 처사는 불교를 표방하지 않은 듯 하다. 그러나 더 후기에 와 마이산을 찾는 치성인들의 수가 불어나자 이처사의 기도처이자 치성처인 토막은 어느때인가 함석지붕으로 새로이 지어지고 자연스럽게 삼신상과 불상이 안치되어 사찰화 되었다. 그러나 법당에 부처를 모시고 생활관을 겸하는 인법당(인법당) 처지를 면하지 못하다가 1980년 태고종단으로 등록하고 1986년 전면4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인 대웅전을 완공하고 뒤이어 나한전과 동양최대의 법고라는 북을 소장한 종각과 관리사를 건립하여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다. |
마이산 탑사에는 어른 머리 크기의 돌덩이에서 부터 엄지손가락만한 작은 돌멩이를 이용하여 만든 크고 작은 80여개의 석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석탑들은 위치와 모양이 제각기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소우주를 형성하고, 우주의 순행원리를 담고 있다. 외줄탑 가운데 있는 중앙탑은 바람이 심하게 불면 흔들렸다가 다시 제자리에 멎는 신비한 탑이다. 돌에도 암수가 있어 암수의 조화를 이뤄 쌓은 것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오행을 뜻하는 오방탑(五方塔)의 호위를 받고 있는 돌탑의 우두머리 천지탑(天地塔)은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규모 또한 가장 큰 한쌍의 탑으로, 기단부에서는 한 몸통으로 축조되어 올라가다가 탑의 1/2쯤 되는 곳에서 남북으로 나뉘어 두개의 탑으로 쌓여졌으며 탑의 상륜부는 편편한 돌을 뾰쪽하게 쌓아올린 첨두원추형 석탑으로 높이가 13.5m에 이른다.
이 탑은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여 막돌 허튼층 쌓기기법을 사용 하였는데 설계가 정확하고 결구가 치밀하여 보기에도 튼튼하고 우람하게 하늘높이 솟구쳐있다.
탑사에는 천지탑, 오방탑이외에도 여러개의 돌탑들이 쌓여져 있으며, 단 한개도 직각을 이루고 싸여져 있는 탑이 없다.
자연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 마이산이라 한다면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은 역시 마이산의 탑군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이산 탑군은 전라북도 지정 지방기념물 제 35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다.
자연석을 차곡차곡 쌓아 마치 송곳처럼 정교하게 만든 탑들은 태산처럼 위엄을 느끼게 한다.
주탑인 천지탑은 부부탑으로 2기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13.5m이고 남.북으로 축조되어있다.
주탑인 천지탑을 정점으로 조화의 극치를 이루며 줄줄이 세워저 있고 팔진법의 배열에 의하여 쌓았다고 전해지며, 당초에는 120기 정도가 있었으나 현재는 80여기가 남아있다.
맨 앞 양쪽에 있는 탑을 일광탑.월광탑이라 하며 마이산 탑군은 태풍에 흔들리기는 하나 무너지지 않는 신비를 간직하고 있으며 탑들을 보면 양쪽으로 약간 기울게 쌓여저 있는것을 볼수 있는데 이는 조탑자가 바람의 방향등을 고려하여 축조한것으로 보인다..
마이산을 남쪽에서 보게되면 봉우리 중턱 급경사면에 군데군데 마치 폭격을 맞았거나 무언가 파먹은 것처럼 움푹 움푹 파인 많은 작은 굴들을 볼수 있은데 이는 타포니 지형이다.
풍화작용은 보통 바위 표면에서 시작되나 마이산 타포니 지형은 풍화작용이 바위 내부에서 시작하여 내부가 팽창되면서 밖에있는 바위 표면을 밀어냄으로써 만들어 진 것으로 세계에서 타포니 지형이 가장 발달한 곳이다.
마이산의 타포니는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고 특수한 기후조건 즉 신생대 제 4기의 빙하기와 뒤에 온 한냉기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은수사 전경
은수사 배나무
은수사는 현재 조계종단 소속인데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라 했고, 숙종 무렵에는 상원사는 없어지고 사지만 남아 있었는데 그 뒤 누군가 암자를 지어 정명암이라 했다.
은수사 황혜수 주지스님에 의하면 "正"은 5획으로 오행, "明"은 일월이므로 정명암이란 이름은 음양오행의 순환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아무튼 정명암도 퇴락하여 없어졌다가 1920년에 이주부라는 분에 의해 증창되었고, 이때 은수사로 개칭되었다.
은수사란 이름은 한글학회의 <지명총람>에 의하면, 태조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하였으므로 지어진것이라 한다.
은수사는 본시 불당겸 요사채로 쓰인 건물과 그 위 산신도각이 있었을 뿐이었으나 근래 극락전, 태극전, 대웅전과 요사채를 건립하여 바햐흐로 대가림으로 도약을 기약하고 있다.
이 은수사에는 국내 최대 크기였던 법고(1982년 제작)가 소장되어 있다. 한편, 조선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상, 삼신할머니상이 상원사지에서 출토되었다.
또한 은수사 경내에는 천연기념물이 두가지 있다.
하나는 마이산 줄사철군락이고(천연기념물 380호), 또 하나는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386호)이다.
섬진강 발원지 표지석
뒤돌아 본 마이산
마이산은 산 자체가 국가지정 명승 제 12호로 지정되었고,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673 m의 암 마이봉과 667 m의 숫 마이봉의 두 봉우리로 형성되어있으며 신라시대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이라 했고, 조선시대부터 말귀를 닯았다 하여 마이산이라 불리어 왔다.
마이산은 중생대 후기 약 1억년전까지 담수호였으며 대홍수시 모래 자갈등이 밀려 호수를 메우고 물의 압력 의하여 이루어진 수성암이며 약 6 ~ 7천만전 지각 변동에 의하여 융기되어 마이산을 이루었으며 지금도 민물고기 화석이 간혹 발견되고 있으며 자연이 만든 최대의 걸작품이다.
<문화재>
마이산도립공원에는 국가지정 명승 1점(마이산 - 12호) , 천연기념물 2점(청실배나무 - 386호. 줄사철나무 군락 - 380호), 보물 1점(금당사 괘불탱화 - 1266호), 지방기념물(마이산석탑 - 35호), 지방유형문화재 2점(금당사 목불좌상 - 18호. 강정리 5층석탑 - 73호)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마이산의 전설>
마이산은 아득한 옛날 남녀 두 신선이 이곳에서 자식을 낳고 살았다 하는데, 등천할 때에 이르러 남신이 이르기를 "우리가 등천하는 모습을 아무도 봐서는 안되니 밤에 떠납시다"하였으나 여신은 밤에 떠나는것은 무서우니 새벽에 떠나자고 했다 한다.
그러나, 새벽에 떠날 즈음 마침 새벽 일찍 물길러 나왔던 동네 아낙이 등천하는 두 신선을 보고 놀라 소리치는것을 듣고 등천이 틀린것을 안 남신이 화가나서 "여편네 말을 듣다 이꼴이 되었구나"하고 여신으로 부터 두 자식을 빼앗고서 발로 차 버리고는 그자리에선 "바위산"을 이루고 주저 앉았다 한다.
이것은 구전되어 내려온 전설이기는 하지만 마이산을 진안쪽 북에보면 아닌게 아니라, 동편 아빠봉에 새끼봉이 둘 붙어 있고, 서편의 엄마봉은 죄스러워서인지 수치심에서인지 반대편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이라 새삼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가름내재를 건너 옥산동고개를 향하여 올라감
오늘 산행 끝점인 옥산동고개(뒤에 멀리 마이산이 보임)
산행끝점에 있는 진안군 마령면 사인동 사옥마을 경로당
진안에서 자랑하는 음식 애저(새끼 돼지).. 한마리의 1/4쪽 분량 값이 40.000원 임
진안은 예로부터 수질과 풍토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이에 음식 맛도 독특한게 많기로 유명하다. 진안의 돼지고기 맛은 유달리 뛰어나기로 잘 알려져 있는데, 어린 돼지로 요리한 애저는 진안의 대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진안 곳곳에 이 애저 요리를 하는 곳이 많은데 이 맛은 그 어디서도 흉내낼 수 없는 진안 고유의 맛이라 하겠다.
◆ 전문점
업소명 : 진안관
대표자 : 이 상 봉
소재지 : 진안읍 군상리 282-5
연락처 : 063-433-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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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 가본지 참 오래되었네요. 애저란 것도 먹어 보고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