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시작 : 07 : 52,, 산행마침 : 18 : 00,, 산행시간 : 10시간 8분(알바시간 포함)
산행거리 : 30.1 km 산 행 자 : 영두(59년생), 솔바람(63년생), 야초(1947년산)
산행경로
접치 ~ 580봉 ~ 연산봉3거리(865봉) ~ 조계산 장군봉(884.3m) ~ 선암굴목재 ~ 깃대봉 ~ 705.7봉
~장안치 ~ 697봉 ~ 660봉 ~ 650봉 ~ 고동산(794m) ~고 동치 ~ 600봉 ~ 510.5봉 ~ 515봉 ~ 520봉
~ 490봉 ~ 빈계재 ~ 508봉 ~ 백이산(584.3m) ~ 530봉~ 석거리재
호남정맥6구간(접치-석거리재)
######이번 구간은 접치에서 석거리재 까지로 잡았다. 오늘 새벽4시에는 2006월드컵 8강전인 프랑스와 브라질의 게임이 있는 시간이지만. 바로 이 시간이 호남정맥 한 구간을 위해서 산행 출발지인 접치로 가고자 약속한 시간이다..(산행 마치고 집에 와서 신문을 보니 승부는 “앙리 작사 작곡 프랑스 텀이 브라질 팀을 눈물의 삼바로 만들었다 ”고 지면을 장식했으며, 흥겨운 삼바 리듬은 적막으로 바뀌고, 월드컵에서 11연승을 달리던 대표팀이 0; 1로 지자 브라질 팀은 입을 다물었다. 고 덧붙였다.
선행자들은 접치에서 시작해서 58번 지방도가 지나는, 낙안읍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빈계재에서 끊는 게 보통이나, 호남정맥 종주 구간을 한 구간이라도 단축하기 위해서 빈계재에서 백이산을 넘어 2시간 50분이 더 소요되는 석거리재에서 끊기로 했다.
산행거리도 30km가 넘어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장마기간이고, 오늘 아침까지 남해안에는 장맛비가 계속 되었고, 산행 당일인 오늘도 오전까지 비가 오다가 오후에 개이나, 한 두 차례 소나기가 있다는 일기예보도 있었다. 산행구간 중 조계산을 지나, 굴목재 부터는 정맥 길이 선명치 않고, 새벽까지 내린 비로 이내 바지 가랑이는 물 범벅이 되고, 이어서 바지가랑이로 타고 들어온 물기가 양말을 적신 다음 신발 안 쪽으로 흘려 내려와서, 중간 중간에 젖은 양말을 짜기는 했지만,
6시간 이상을 젖은 신발을 신고 산행을 해서 발이 퉁퉁 불고 신발 무게도 더 느끼게 해서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철쭉, 참나무, 딸기나무와 잡풀 등으로 뒤 엉켜있어서 헤쳐 나가는데 체력이 많이 소모 되었고, 오후 2시까지는 안개로 시계가 제로인 상태라서, 고동치 구간에서 첫 알바를 했고,
백이산에서 하산 할 때 능선 길을 잘못 잡아서 40여분 알바를 했는 구간이다. 힘은 들었지만, 중간 중간에 딸기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딸기를 따서 입에 넣을 때는 힘든 것도 잊어버리고, 오직 달콤한 맛은 먹어 본 사람만 알수 있는 그대로이며, 시간만 있다면, 배부르도록 먹을 수도 있지만. 갈 길이 멀어서 대충대충 따먹었다. 산행소요 예정시간은 11시간 30분이었지만 10시간에 한 구간을 끝냈다.
산행 끝내고 낙안읍성을 둘러 본 다음, 벌량면사무소 앞에 있는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한 식당인 동백식당 욕보할매집(욕을 잘 한다고 소문이 나 있음)에 가서 짜고 맵다는 짱둥어 탕을 맛볼 계획이었지만, 집으로 돌아 올 길이 멀어서 다음으로 미룰 수밖엔 없다. ##########
호남정맥6구간(접치~석거리재)
07시 54분 접치재에 있는 두월 육교(길이 83.13m, 교폭 17.2m)에서 호남고속도로 순천1터널을 좌측으로 바라 본 다음 널따란 공터 왼쪽 아래로 파헤쳐진 곳을 지나 가파른 절개지위로 올라가게 되고, 리본이 붙은 숲길로 들어서니 얼마 안 가서 참나무 숲을 따라 도립공원이라서 그런지 등산로가 뚜렷하게 이어진다.
08시06분 고압송전탑 (154kv, NO 78)이다. 송전탑 옆에는 묘지도 1기가 있다. 08시 18분 조계산의 사찰이라는 비닐 표지를 입힌 글을 써놓았다. 내용은 조계산에 대한 것이다. 08시 35분 송광사 해우소와 화엄사 가마솥 이야기를 적은 비닐로 입힌 글이 쓰여 있는 안내문이 나온다. 이어서 오름을 계속하니 묘지1기가 있는 펑퍼짐한 안부이다.
09시 02분 한국철도산악회 순천 철도 산악회에서 세운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에는 오른쪽으로는 연산봉, 송광사, 천자암 왼쪽으로는 장군봉, 선암사을 표시해 놨다. 연산봉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조릿대 군락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을 25분 정도 진행하니 장군봉이다(09;28).
짙은 안개로 인하여 조망은 제로이다. 날씨만 좋았더라면, 오늘 나아가야 할 깃대봉과 백이산도 볼 수 있을 것인데 아쉽다. 여기서 잠간 휴식이다. 두 달 전에 장군봉에 올랐을 때는 나무로 된 이정표는 없었는데 오늘 보니, 나무로 된 이정표를 잘 세워놓았다 (지주는 장군봉을 가리키고, 장밭골 1.8km, 송광사 6.0km, 선암사 2.7km, 작은굴목재 0.8km,) . 장군봉 정상석 옆에는 순천 11, 1981 재설이라는 삼각점이 박혀있다. 장군봉을 지나서 바윗길을 15분 정도 내려오니 배바위가 나타난다(09:51).
이어서 너덜지대를 계속 내려오니 작은 굴목재라고 써놓은 119표지판이 있고, 쉬어가기 좋게끔 나무 의자도 설치해 놨다. 그 옆에는 선암사 굴목재라는 알루미늄으로 된 표지판이 서있다. 또 그 옆에는 굴맥이재의 이름과 전설을 적은 안내문이 서있다(10:23). (굴맥이재가 맞는지, 굴목재가 맞는 것인지??? 지도상에는 선암굴목재, 조계산 정상 표지목 이정표에는 작은 굴목재라고 되어있다. 통일을 시켜 줬으면 헷갈리지 않을 것인데~·), 건너편에는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과 조계산에 대한 내력을 적어놓고, 비닐로 입혀 놨다,
굴목재에서 오늘 끝점인 석거리재까지는 600~700m대의 봉우리 10개는 넘어야한다.굴목재를 뒤로하고 나무계단
을 오른다(10:26). 굴목재까지는 유명한 조계산이 있어서 길이잘 나 있지만, 이제부터는 완전히 정맥길 이다. 정맥 종주자
외에는 다니지 않는지 이정표도 없고, 길 찾기도 어려울 뿐 만 아니라, 오늘 따라서 장마기간이라서 온통 구름뿐이다. 마치
신선이 노는 것처럼 구름 위를 계속 걷고 있다. 참나무와 산죽군락을 따라 오름길 오른다.
이번 구간 종주는 새로운 인물인 문화공보실에 근무하고 있는 이영두 담당이정맥종주에 처음으로 동참을 했다. 평소 마라
톤을 즐겨하기 때문에 충분히 해 낼 수 있을것으로 생각은 했지만, 마라톤 근육하고, 산행 근육은 틀리는지 조계산 정상을
오를 때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속도를 조금 줄여가면서 진행이다.
완만한 오름길이지만, 싸리나무, 참나무, 키 큰 조릿대 숲을 헤쳐가야 한다. 10시44분 임도를 만난다. 임도 옆에는 산딸기
나무가 지천으로 깔려있다. 딸기 맛을 안 보고갈 수는 없다. 대충 대충 따먹는다. 송광면과 낙안면을 잇는 임도이다. 임도
를 가로질러 가파르게 오른다. 정맥을 왼쪽으로 끼고 돈다. 10시59분 산불감시초소가 나타난다. 산불 철이 아니라서 그런
지 텅 비어있다. 호남정맥을 지키고 있는 게 쓸쓸하게 보인다.
평탄한 길이 이어지고 참나무 숲과 철쭉군락을 지날 때는 머리를 잔뜩 숙이고, 양 팔은 앞으로 나란히 한 채 진행이다. 11
시04분 큰 바위를 오른쪽으로 끼고 오른다. 구름이 짙어서 여기가 705.7 봉인지 가늠이 되지를 않는다.
아침을 새벽 3시에 먹었으니 배도 고프다. 오늘 새벽까지 비가 내리고, 잔뜩 흐려서 나뭇잎에 젖은 물이 마르지를 않아서 적당한 바위를 골라서 앉지도 못하고 선채로 점심을 먹는다(11:04). 점심은 20분 이내 끝이 나고 바로 출발이다. 땀이 더 식으면, 한기가 들기 때문에 빨리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12시 08분 헬기장이다. 관리가 되었던 같이 보인다. 날씨만 좋았더라면, 여기서 점심을 먹었으면 좋았을 터인데 하는 마음이 든다. 헬기장에서 젖은 양말을 짜고, 신발 안에 물도 털어낸다.
12시 32분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 바로 옆에는 SK 텔레콤 외서기지국이다. 뒤로는 높은 안테나가 설치되어있다. 임도로 내려섰다가 우측 능선으로 붙는다. 능선에는 커다란 바위 5개가 인위적으로 가져다 놓은 것처럼 보인다. 구름이 짙어서 이 능선이 정맥능선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여기서 다시 임도로 내려서서 방향을 확인한다. 알바다 5분 이상 소요된 것 같다. 선택의 기로이다. 우측은 목장지대이고, 좌측은 구름으로 인해서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는다. 아무리 살펴도 이 능선이 맞을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다시 진행이다.
12시52분 억새풀과 철쭉군락이 이어지며, 큰 바위위에 돌탑을 쌓아 놓은 게 나타난다. 정맥이나, 대간에 바위구간이거나, 나무가 없고, 풀들이 없을 때는 리본을 나무에 매달 수 없으므로 돌탑으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앞에 있는 돌탑이 대간과, 정맥을 표시하는 것이다.
12시54분 또 헬기장이다, 구름으로 인해서 헬기장 가까이 가야지 확인할 수 있다. 헬기장 바로 옆에는 JN낙안 기지국이다. 기지국 바로 옆에는 산불감시초소가 나타나고, 고동산(769M) 정상을 알리는 순천시에서 설치한 대리석으로 된 사각형 정상석이 박혀있다.
철조망을 왼쪽에 끼고 진행이다. 철조망이 끝 날 무렵에 정맥 종주 팀들의 시그널이 20여개 나부낀다. 아마, 정맥 종주 팀들이 하나씩은 리본을 매달은 것 같다(13;00). 싸리나무와 키작은 참나무, 산딸기나무들이 꽉 들어찬 길을 재촉하니 13시14분 비포장 임도와 만난다. 비포장 임도를 따라서 10여분 진행하다가 정맥 길로 들어선다.
지금부터는 완전히 정글지대이다. 계속 양팔을 벌려서 싸리나무, 참나무, 딸기나무들을 헤치고 진행이다. 오늘 따라서 내가 제일 선두로 섰기 때문에 스틱으로 거미줄도 털어가면서 가야한다. 오르고 내림을 반복하니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15:05), 이 편도 1차선 포장도로는 순천시 외서면과 낙안면 경계로서 빈계재이다. 보통 선행 주자들은 여기 빈계재에서 1구간을 끊지만, 우리 팀은 더 가야지 구간을 단축할 수 있다. 갓길도 없는 포장도로 가장자리에 앉아서 간식을 취하고 출발이다.
빈계재를 가로질러서 오르막을 계속한다. 딸기 밭이 나타난다(15:35)..그냥 둘 수는 없어서 대충 대충 따먹는다. 앞에 멀리 백이산이 보인다. 억새 풀밭을 가로질러 오름을 계속하니 백이산 앞의 508봉이다. 508봉을 지나서 잡풀 능선을 계속 오르니 높이 485M의 백이산이다 (15시49분). 정상에는 대리석으로 된 정상석과, 바로 옆에 순천 23, 삼각점이 박혀있다.
잠시 휴식이다. 이제 내려가는 길만 남았다. 구름은 어느 정도 걷혀서, 오늘의 끝점인 27번 국도는 멀리 바라보이는데 정맥 능선이 가늠이 안 된다. , 오늘 출발 전까지 오늘 구간 정맥 능선지도를 몇 번 봤지만, 알바다., 머리 속에는 오늘 종주구간은 거의 직선 구간이라는 생각이 떠올라서 직진 능선을 탔는 게 잘 못이다,
20여분을 내려가도 시그널이 하나도 나타나지를 않아서, 잘 못 든 게 아니겠나 하고, 되돌아섰다. 딸기 밭이 지천이라서 되돌아오는데도 성가시기만 하다. 여기서 40여분 알바다. 내려가는 능선 길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오늘 따라서 산행지도를 지도 케이스에 넣지 않고, 호주머니에 넣었더니만, 물기로 인해서 젖어서 다 버려져서 볼 수가 없다. 산행 동참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억새풀과 키 낮은 잡초들만 무성해서 시그널을 달아야 달수가 없는 데이다. 한참을 살피고 나서야 정맥능선 길을 가늠했다. 백이산 정상에서 약간 우측(1시에서 2시 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18:00 보성군 벌교읍과, 순천시 외서면 경계인 석거리재이다. 15, 27번 국도가 지나는 석거리재에는 주유소와 휴게소가 있으나, 주차장에 차들이 없는 것으로 봐서 장사가 되지를 않는 것 같다. 오늘 산행 끝점이다. 호남정맥 종주 26구간 계획 중 6구간 종주이다. 집으로 오는 길에 4구간, 5구간 끝내고 들렸던 남원 춘향 테마 공원 맞은편에 있는, 원조, 남원 추어탕, 숙회 간판이 달려있는 식당에 들려서 미꾸라지 숙회하고 저녁 먹고 나서 88고속도로에 차를 올린다.
두월육교에서 바라 본 호남고속도로 순천제1터널
산행시작점인 접치
연산봉 갈림길 이정표
곡성 태안사
보성강을 끼고 있는 곡성은 화려하지 않지만 정감어린 풍경이 곳곳에 숨어 있는 고을이다.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보성강 맑은 내와 호남정맥이 뿌린 계곡이 아름다운데, 다른 고을에 비해 덜 알려져 아직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호남정맥상의 배틀재와 닭재고개 사이의 봉우리에서 북으로 뻗어나간 지맥은 보성강과 섬진강을 만나기 직전에 비교적 높은 봉두산(752.9m)을 빚는데, 그 남서쪽 기슭엔 천년고찰 태안사(泰安寺)가 깃들어 있다.
입구에서 사찰까지 걸어가는 2km쯤 되는 계곡 길은 길지 않지만, 아기자기한 맛을 지니고 있다. 고로쇠나무, 떡갈나무, 단풍나무, 소나무가 우거져 있는 차가운 계곡에 발을 담그면 한여름의 무더위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태안사의 현관 역할을 하는 능파각(凌波閣‘ 지방유형문화재 제82호)의 운치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계류가 시원하게 통과하는 능파각을 통해 숲길로 접어들면 이내 일주문이 나오면서 태안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의 태안사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한때는 구산선문(구산선문)의 유서 깊은 사찰로서 화엄사를 거느리기도 했을 정도로 큰 절이었다고 한다. 경내에는 지름 20m쯤 되는 큰 연못 가운데 부처님사리를 모셨다는 석탑이 있다.
또 혜철 스님의 부도인 적인선사조륜청정탑(보물273호). 윤다의 부도인 광자대사탑(보물 제274호)과 광자대사탑비(보물 제275호)가 있다. 조선전기 효령대군의 지시로 만들었다는 놋쇠 바라(보물 제956호)도 보물이다. 한편, 태안사 대웅전에서 선방으로 가는 길을 따라 조금만 따라 오르면 물맛 좋기로 소문난 태안사 돌샘이 반긴다. (자료: 펌)
조계산 장군봉에 있는 이정표
조계산 장군봉
조계산 장군봉 정상표지석을 배경으로
작은 굴맥이재에 있는 이정표
조계산의 두 절집, 송광사와 선암사
조계산 서쪽의 송광사(松廣寺)는 1200 년 전인 신라 말 혜린선사가 길상사(吉祥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명종 때 보조국사 지눌이 나라의 지원을 받아 중창한 후 수선사(修禪寺)라 고쳐 불렀고, 당시 여러 불교 사상을 재정리하여 한국 선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한 후 지금의 송광사라는 이름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이후 보조국사를 1세로 해서 진각국사, 청진국사등 16분의 국사가 송광사에서 배출되어 한국의 삼보(三寶)사찰 가운데 승보(僧寶)사찰의 명성을 얻으며 한국불교의 중심 사찰의 명성을 얻으며 한국불교의 중심사찰로 자리 잡았다. 현재 경내에는 이들 16국사의 진영(眞影)을 봉안한 국사전이 따로 있다.
송광사는 창건 후 몇 번의 화재를 겪었고, 1948년 여순사건과 1950년 6‘ 25전쟁을 겪으면서 많이 불탔으나, 1980년대 까지 건물들을 대부분 복구했다. 오랜 역사와 승보사찰의 명성에 걸맞게 귀한 유물과 유적들을 아주 많이 간직하고 있다. 목조삼조불감(국보 제42호),
<고려고종제서> (국보 제43호). 국사전(국보 제56호) 등 국보 3점을 비롯해 10여점의 보물들(대반열반경소. 경질. 경패. 금동요령. <묘법연화경>. 하사당. 약사전. 영산전. 고려문서 노비첩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추사 김정희의 서첩(서첩), 영조의 어필(어필), 홍선대원군의 난초 족자 등 셀 수없이 많은 문하재가 사찰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계산 너머에 있는 선암사(禪巖寺)는 우리나라에서 봄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유명하다. 매년 이른 봄이면 대웅전 뒤쪽 담장 곁의 늙은 매화나무 가지에서는 청매화, 홍매화가 화사하게 피어난다. 임권택 감독이 영화(아제 아제 바라아제)의 마지막 장면을 여기서 찍었고, 조선 말기 천재화가 오원 장승업의 예술 혼을 다뤄 2002년 칸느 영화제의 감독상을 수상한 취화선도 이곳서 촬영했다.
선암사 들머리, 점차 푸르러 가는 숲 사이를 걸어가다 보면 맑은 계류에 걸린 무지개다리 승선교(昇仙橋‘ 보물 제400호)가 반긴다. 막 목욕을 마친 아름다운 선녀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자태를 자랑한다. 열여섯 살에 선암사에 들어와 47년째 머물고 계신 주지 지허 스님은 17세기부터 내려온 선암사의 다선일여(茶禪一如) 맥을 잇고 잇다. 이와 함께 선암사엔
800년 된 야생 차밭이 있다. 차 맛에 어울리는 맑고 그윽한 샘물도 차 뿌리를 적시며 넘쳐흐른다.
선암사에도 문화재가 많다. 들머리의 승선교를 비롯해 신라 때 장엄하고 화려한 대웅전, 이중기단 양식의 동‘서 삼층탑과 10세기경에 제작된 동부도와 북부도 같은 여러 점의 보물과 팔상전, 원통전, 금동향로, 일주문 등 지방문화재가 있다. 선암사 해우소는 최고의 미학이라는 찬사를 듣는 건축물이다. (자료: 펌)
조계산의 사찰
조계산에는 우리나라 불교의 대표적 사찰인 천년 고찰 선암사와 송광사가 동서로 자리잡고 있다. 큰 절이 자리잡은 위치를 보면 명산의 형에 터를 정하고 산그늘과 조화롭게 가람의 어깨 그림자를 펼치고 앉아 그 산의 정기에 힘입어 대오 각설과 무한 번영을 이루고자 하였으므로 뿌리가 있는 본산 거찰의 일주문 현판에는 반드시 그 주산의 이름을 앞세워 자연(신)앞에 겸손함으로 몸을 낮춘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절과 산을 떼어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절을 스스로 일컬어 “본산” 혹은 “산문”이라 칭하는 것이나 “명산 대찰”이란 단어처럼 된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조계산은 “청출어람”이던가! 두 거찰의 명성이 너무 컸던지 조계산의 이름이 작아 보인다. 훌륭한 두 자식을 우뚝하게 키워내고 왜소하게 지친 어머니처럼 하지만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자랑스럽게 만인들을 품안으로 맞아들인다. (자료: 펌)
굴목재에 있는 이정표
조계산 굴목재
호남정맥 분수령인 조계산(884m) 굴목재는 나라의 유명한 두 사찰을 잇는 옛길이다. 조계산 최고봉인 장군봉 서족에 16분의 국사를 배출한 우리나라 승보(僧寶)사찰 송광사가 있고, 동쪽에 우리나라의 다선일여 차 문화를 이끌어온 선암사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님들이 명상하면서 거닐었을 이 길은 봄과 가을운치가 아주 뛰어나다. 특히 수량 적당한 계곡을 끼고 있기 때문에 한 여름에도 거닐기에 적당하다. 길 걷는 것을 좋아하는 가족이나 연인들의 도보여행 코스로도 적당하다. 중간 중간 쉼터가 잇다. 선암사~ 선암굴목재~송광굴목이재~송광사를 걸어서 넘는 데는 넉넉잡아 3~4시간쯤 걸린다. 조계산 중턱 송광사와 선암사 사이의 천자암엔 두 눈을 놀라게 하는 쌍향수가 있다
( 내 블로그 이산 저산(조계산 산행)에 들어가면, 사진이 있음), 천년기념물(제88호)로 지정된 두 그루의 곱향나무는 높이가 12.5m, 가슴높이 둘레가 각각 3.95m와 3.24m에 이른다. 마치 두 마리와 커다란 용이 용틀임을 하는 듯한 웅장한 자태는 800여 년이란 세월이 빚어낸 예술품이다. 보조국사와 담당국사가 중국에서 귀국하면서 짚고 온 지팡이를 꽂아 둔 것이 뿌리내렸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나무 둘레를 돌면 무병장수하고 소원 성취한다는 전설이 전한다. (자료:펌)
조계산 구간을 지나니 정맥길은 찾기가 어려움
장안치 부근에 있는 암괴
고동산 정상에 있는 통신 시설물
고동산 정상표시석을 배경으로
빈계재(순천시 외서면과, 낙안면의 경계임, 58번 지방도)
조선 냄새 물씬 풍기는 낙안읍성
우리나라는 산지가 많아 산성(山城)이 주롤 발달하였으나, 지방의 행정 중심지를 둘러싼 읍성(邑城)중에는 평지성(平地城)이 적지 않게 남았다. 옛 고을을 둘러싸고 있는 평지성은 산성보다 접근이 쉬워 계절과 상관없이 답사하기에 좋다.
그런데 순천의 낙안읍성(樂安邑城)은 어느 읍성과는 달리 사라들이 성안에 초가집과 기와집을 짓고 살아간다. 성벽을 따라 거닐다가 성안을 들여다보면 100여 채의 초가가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나지막한 돌담 한쪽에 드문드문 주차해 놓은 차들만 뵈지 않는다면 영락없이 조선시대다.
낙안읍성은 호남정맥과 그 주변의 지맥이 빚어 놓은 산세와 맛깔스런 조화를 이룬다. 성벽에 오르면 드넓은 낙안벌 너머로 북쪽은 진산인 금전산(667.9m), 동쪽은 좌청룡인 오봉산(591.5m), 서쪽은 우백호인 호남정맥 상의 백이산(584.3m), 그리고 백이산에서 동남쪽으로 얌전히 흘러내린 안산인 옥산(966m)이 포근하게 감싼 아늑한 고을이 한 눈에 보인다. 하천은 금전산 동남에서 흘러 들어오는 동내와 서남에서 흘러나오는 서내가 있는데, 모두 성곽의 바깥 동면을 따라 흘러 옥산 앞을 지나 들판을 훑고 바다로 이어진다. 풍수로 보면 옥녀산 발형의 명당이라 한다.(자료: 펌)
백이산을 오르면서 딸기 나무가 지천이라서 따 먹너라고 정신이 없슴
오늘 구간은 딸기밭이 군데 군데 있슴(갈 길이 멀어서 대충 대충)
백이산을 오르면서
멀리 산 뒤에 봉오리가 백이산
백이산 정상표시석을 배경으로
오늘 산행 끝점인 석거리재(순천시와 보성군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15, 27번 국도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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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포천에 백운산을 댜녀왔다네 여름 산행에 건강 조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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