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시작 : 07 : 55 , 산행마침 : 16 ; 40 ,, 산행시간 : 08시간 45분
산행거리 : 20.1 km, 종 주 자 : 산아, 솔바람, 야초
산행경로
석거리재 - 400봉 - 417봉 - 500봉 - 485.5봉 - 420봉 ~ 주릿재 - 백림목장 - 존재산(703.8m) - 천치고개
~ 575 봉 - 600 봉 - 613봉 - 무남이재
호남정맥7구간(석거리재-무남이재)
★★★★★★오늘 정맥 한 구간을 위하여 새벽 4시에 출발하기로 약속이 되어있다. 지난 6구간(접치~석거리재)을 무릎 때문에 하지 못한 황소장도 오늘은 동행하기로 했다. 사는 곳을 새벽 4시에 출발하여, 3번 국도를 타고, 거창 IC에서 88고속국도로 진입하여, 지리산 휴게소에 들려서, 아침 대용으로 맛있는???? (맛은 생각하지 않고 점심때까지는 견디려고 억지로 먹었음)곰탕을 먹고 오늘의 출발점인 석거리재를 향하여 바로 출발이다.
장맛기간이지만 오늘은 비도 안 오고 더운 것 빼고는 날씨도 괜찮지 하고, 일단은 날을 잡았지만, 걱정은 되었다. 출발점으로 가는 도중에도 간간히 비가 뿌려 차 앞 유리 와이프를 작동해야한다. 남원 IC로 빠져나와서 17번 국도로 진입하여, 구례에서 18번 국도로 갈아타고, 주암댐을 우측으로 바라보면서 멧돌재를 지나서, 신곡천교 못 미쳐서, 삼거리에서 벌교 방향 27번 국도를 이용 석거리재에 도착하니 07시 50분이다.
오늘 구간은 존제산 군사통제구역을 통과해야 하는데, 과연 군부대에서 허락을 할지, 허락을 하지 아니한다면, 우회를 어떻게 해야 할지가 관건이다. ★★★★★★
순천시 외서면과, 보성군 벌교읍 경계인 석거리재는 휴게소와 주유소가 있지만 장사가 영 시원찮은 것 같이 보인다. 지난번 구간 끝내고 들렀을 때도 휴게소 식당도 썰렁하고, 주유소에도 기름 넣으러 오는 차들도 전혀 없다. 아마, 석거리재에서 순천 방향 쪽 바로 밑에 주유소가 새로 생겨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이 든다.
07시 55분 외서면 경계표지판 직전에서 오르막을 기어오른다. 오늘은 비가 그쳤지만 어제 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려서 그런지 나뭇잎과 풀잎은 물을 잔뜩 먹고 있다가 바지가랑이에 흠뻑 달라붙는가 하면 머리위로 떨어지곤 한다. . 소나무 숲과 밤나무 숲들, 잡풀들로 인하여 정맥 길은 찾기가 어렵다.
08시 25분 400봉이다. 아침 안개가 들 걷혔지만. 지난 정맥 구간을 뒤 돌아 보니 백이산이 바로 앞이다. 싸리나무와 잡목들을 제치고 바람에 넘어진 큰 나무들을 뛰어넘고, 밑으로 기고, 오르내림을 거듭한다. 얼굴과 옷은 벌써 땀으로 흠뻑 젖는다.
09시 13분 500봉이다. 정맥 길은 급히 좌측으로 꺾는다. 완만한 내리막길이지만, 잡목들과 망개덩굴과 찔레나무들이 걸구 친다. (경상도에서는 망개나무라고 하지만, 다른 이름도 많다. 청미래, 산귀래, 토봉령, 명감덩굴로도 불리어 진다). 호남정맥에는 유난히도 망개덩굴이 많다. 아예 2구간부터는 황소장님이 전지가위를 들고 선봉을 서고, 망개덩굴, 칡넝쿨, 찔레나무들이 나타나면, 자르면서 전진한다,
09시 39분 지도에도 없는 임도가 나타난다. 이 임도는 순천시 율어면과 보성군 벌교읍의 경계로서 비포장 임도이다. 여기서 5분 정도 휴식이다. 이어서 잡풀 숲과 잡목 숲을 헤치고 억새밭을 지나서 오르막을 계속하니 삼각점이 박혀있는 봉우리가 나타난다.
10시 10분 485.5봉이다. 잡풀에 덮여있어 삼각점 글씨가 잘 보이지를 않아, 잡풀들을 발로 제치고 살펴보니, 삼각점에는 순천 445, 1986재설이라고 음각으로 쓰여 있다. 앞으로 가야 할 정맥 능선을 바라보니 존제산이 바로 앞이다. 정상 부근에는 고사리 밭 가운데 푸른 플라스틱 통들이 많이 세워져 있어서 가까이에서 살펴보니 플라스틱 통 속에는 적은 나무들을 심어 놨다.
10시 35분 주릿재다. 주릿재는 순천시 율어면과 보성군 벌교읍을 잇는 포장이 잘 된 왕복 2차선 895번 지방도로로서, 존제산으로 올라가는 길과 삼거리 길이다. 한국통신 광주통신망운용국 존제산중계소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며, 존제산 입구 길 건너편으로 백림농장 입구 이정표가 있다. 잘 가꾸어진 쉼터에서 잠시 휴식이다.
존제산 오르는 길은 비포장도로로서 비에 씻겨 나가서 군데군데 움푹하게 파인 것이 보인다. 일부는 군부대에서 마대 포대로 임시로 쓸려 내려간 부분을 응급 복구해 놨다. 입구 들어서자마자 출입금지 표지판과 경고문 표지판이 나온다. ( 내용은 이 지역은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서 출입자는 관할 군부대장의 허가를 받아라! 는, 등 등)..
11시 31분 백림농장과 군부대 갈림길이다. 선행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백림농장 안으로 가더라도 통신중계소 하고 마주친다고 되어있으나, 그래도 우리 팀은 정맥능선을 타고자 군부대 경고판을 무시하고 비포장도로로 계속 오르기고 결정한다. 군부대 출입금지 경고판 앞에 이르러서 경고판에 적혀있는 군부대로 전화를 하니, 무조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설마 총이야 겨누겠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비포장도로를 돌고 돌아서 올라간다. 군부대가 보일 때쯤 되니깐, 망원경으로 우리가 오는 것을 보고 있는지 사이렌 소리가 계속 나고, 경고방송이 나온다. 되돌아가라는 말 밖에는 안 들린다. 군부대로 전화를 했던 관계로 군부대 전화기에 나의 번호가 찍혔던지, 올라가는 도중에도 나의 휴대폰으로 몇 번인가 전화가 온다. 통화상태가 나빠서 몇 번이나 전화를 받았지만, 들어오지 말라는 말 밖에는 안 들린다.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무조건 들어간다. 매향리 사격장도 폐쇄하는데. 이런 군부대가 뭐가 필요한지 모르겠다. 요새 간첩도 없고 한데도 못 들어오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12시 50분 군부대 앞이다. 비상을 걸었던지 부대원들이 츄리닝 바람으로 정문 일렬 횡대로 줄지어 모여 있다. 위병소 앞으로 가서 사정을 얘기해도 통하지가 않아서, 되돌아 가는척 하면서, 위병소가 보이지 않는 모퉁이에서 눈치만 보다가, 부대 정문 못 미쳐서 임도로 내려가다, 도저히 이 길로 가다가는 어디로 빠질 줄도 모르고, 안 되겠다고 결정을 하고서는 군부대 앞으로 다시 올라가니. 우리 팀이 내려간 줄 알고, 부대원과 정문 보초도 식사를 하러 갔는지 아무도 없다.
부대 정문 바로 좌측 철조망을 넘는다. 좌측은 원형 철조망, 우측으로는 가시철망과 원형철망으로 된 이중철조망이 처져 있고, 그 위로 올려다보면 부대 막사가 보인다. 혹시나 들키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빨리 철조망 구간을 통과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다. 좌,우측 철조망 가운데로 성벽처럼 바라보이는 존제산 봉우리만 보고 진행이다. 철조망 샛길이지만 정맥꾼들이 드나들은 흔적이 보인다. 길은 그야 말로 엉망이다. 중간 중간에 바위와 도랑이 있지만, 그런 대로 갈 수는 있는 길이다.
13시 30분 존제상 정상이다. 소설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중심무대인 정상에서 군 부대를 바라보니 정맥은 군부대 정중앙이다. 부대 안으로 통과를 시켜 줬더라면, 1시간 이상은 단축 되었을 것인데~~~~
존제산 정상에는 군견묘지가 있고 억새 풀밭과 키 작은 잡목들로 가득 차 있다. 내려가는 길 찾기가 쉽지는 않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한 다음에야 내려가는 길을 찾을 수가 있다. 철조망을 몇 번 넘은 뒤에다. 철조망 주위에는 위험지대 (지뢰 표지)표지판과, 군사시설보호구역을 알리는 경고문이 서 있다.
13시 50분 점심이다. 소나무 숲 가운데 적당한 자리를 잡아서 대충 먹는다. 날씨가 더운 관계로 밥이 잘 넘어가질 않아서, 우리 팀 셋이서 모두 밥에다 물을 부어서, 마시다 시피하고 점심을 끝낸다. 점심 먹으면서 주위를 살피니 더덕 줄기가 있어서, 점심 먹고 나서 더덕 세 뿌리를 캤다.
14시 33분 고압철탑이 나타났다. “154kv 장흥-벌교, 보성-벌교T/L” “좌: 장흥-벌교... 우: 보성-벌교”라고 철탑 표지판에 쓰여 있다.14시35분 산불조심 경고 표지판이 서 있는 비포장 임도로 내려선다. 순천시 율어면 선암리와 보성군 벌교읍 옥전리를 잇는 천치고개(모암재)이다. 오늘 산행을 시작한지도 벌써 6시간이 넘었다. 산행지도를 펼쳐 보니 시간은 많이 경과했는데도 거리상으로는 오늘 예정된 구간 반 쯤 온 것 같다.
아마도, 존제산 밑 정맥을 벗어나서 군부대를 향하여 오르면서 비포장도로를 따라서 걷다 보니. 꽤 더운 날씨에다가 진행 속도가 빨라서 좀 지친 것 같기도 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오늘 예정된 구간 끝점인 오도치(겸백고개)까지는 못 갈 것 같은 느낌이다. 힘을 내서 575봉을 향하여 오른다. 바위들이 군데 군데 나타나고 키 작은 진달래와 억새밭을 가로 지른다. 큰 나무들은 없고 작은 나무와 풀들의 천지이다. 가파른 오르막이다. 한참동안 오르막을 계속하고 나니 어느새 575봉, 571.1봉을 넘었는지도 모르겠다.
15시 35분 600봉이다. 삼각점은 보이질 않는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휴식이다. 참나무와 잡목, 망개덩굴, 산딸기나무들한테 시달린다. 16시 15분 광대코 삼거리이다. 우측으로 진행하면, 초암산 정상과, 밤골재가 나오고, 좌측 방향이 정맥 길이다. 가파르게 내려서면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참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보성군에서 설치했는지 급경사면 양 쪽으로 로프가 걸려있다. 아마 눈이 많이 올 때 길을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설치했을 것 같다.
16시 39분 무남이재다 등산안내도는 태풍에 쓰러졌는지 비스듬히 누워있고, 무남이재 이정표가 세워져있다.(이정표에는 주월산 정상1870m, 광대코1000m, 초암산정상4530m, 원수남 밤밭(1160m), 대곡리 2700m로 표시되어있다.) 여기서 오늘 산행은 아쉽지만, 예정된 겸백고개까지는 무리라고 판단하고, 여기서 중단하기로 하고 대곡리 쪽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임도는 포장이 되었다. 비포장이 되었다가 반복을 한다. 대곡리 까지는 2700m이다. 대곡리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오른쪽으로 키위 밭이 수시로 나타난다. 키위 밭은 처음 본다. 나무는 포도나무와 흡사하게 생겼고, 나무 심은 간격이 포도밭 보다는 훨씬 넓다.
17시 36분 돌담들이 나타난다. 대곡리 마을이다. 돌담을 따라서 10여분 내려오니 廣州이씨 충효비가 나타나고, 바로 그 옆에 오래 묵은 듯한 제실이 있다, 여기서 061안내에다가 조성면 콜택시 전화번호를 안내받아서 콜택시를 부른다! 20여분 후에 조성택시(유) 52호가 왔다. 오늘 출발지인 석거리재까지 가야한다고 하니 . 미터기 사용하던, 안 하던 15.000원에 흥정을 하고 석거리재로 향했다. 52호 박동주 기사님(011-636-4910) 덕분에 석거리재까지는 편안하게 올수 있다. .
석거리재에 산행 시작할 때 세워뒀던 차량을 회수하고, 새벽에 왔던 길을 거슬러, 남원에 와서 저녁을 먹으니 시간이 20시55분이다. 식당은 호남정맥하면서 4번이나 들렸던 광한루 건너편 추어탕 원조??? 식당이다.
산행시작점인 석거리재
호남정맥은 길이 이렀슴
길 찾기가 매우 힘이 듬
온갖 잡풀을 헤치고 전진 함
억새밭 사이에서
태풍에 넘어진 나무들을 제치고~~~
키작은 진달래 밭 사이로~`
주릿재에서 (보성군 율어면과 벌교읍의 경계 임)
지방도 895호선이 지나는 보성군 율어면과, 벌교읍의 경계인 주릿재
호남정맥7구간(석거리재-겸백고개)
서편제 보성소리축제 (보성소리유래)
보성소리의 유래 “보성소리”는 판소리의 유파들로 일컬어지는 서편제와 동편제 및 중고제를 어우르는 독특한 창법의 판소리 유파를 말합니다. 서펀제의 비조 강산 박유전 명창은 우리 보성군 강산리에 살면서 탁월한 예술 혼을 발휘하여 홍선대원군으로부터 “네가 천하제일강산이다”라는 칭송을 듣습니다. 이는 「강산은 대마디대장단의 밋밋한 위조 위주의 “동편제”를 보완해 계면조의 부침세가 정교한 「서편제를 만들어 낸 인물」(한겨레신문 1990. 3. 16자)이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근자에 와서 「보성소리」로 이름이 굳어지는 정씨 일가의 세습소리제, 박유전 - 정재근 - 정응민 - 정권진 - 정회천.... 으로 내리닫는 탄탄한 소리는 이들 하동정씨 일문이 전남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 도강마을에 살았다 하여 「보성소리」로 불린다』(세계일보 861호) 거나 『....보성소리란 전남 보성지방에서 태어나 정씨문중에서 전송되어 오다 이제는 우리나라 판소리를 대표하게 된 판소리의 한 유파를 말한다.
정재근은 서편제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박유전으로부터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를 계승했다. ...정재근의 조카인 정응민은 「보성소리」에 동편소리인 김세종제 춘향가를 접목시킴으로써 (보성소리)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이다』 (서울신문 1993. 3. 23자) 한 것에서도 보성소리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상현 명창 등 우리나라에서 판소리를 하는 분의 대부분이 보성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도 『실제로 「보성소리」를 거치지 않은 소리꾼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한겨레신문 1990. 3. 16자)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성은 판소리 다섯마당(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을 모두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보성은 판소리의 성지로 불러지고 있습니다. (자료 : 보성군 홈피)
서편제 보성소리 축제 행사배경
판소리 유파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섬진강 동쪽의 전주, 남원, 순창, 구례 등 지역을 동편제, 섬진강 서쪽의 보성, 나주, 광주, 강진, 해남 등 지역을 서편제, 충청도와 경기도 지역을 “중고제” 라고 구분지어 졌고, 흥선대원군으로부터 “네가 천하제일 강산이다”라는 칭송을 들은 서편제의 비조 강산 박유전 명창이 서편제 판소리를 창곡하여 후세에 널리 펼친 곳이 보성군 강산으로 문헌상의 기록에 근거 하고 있다.
보성에서는 강산 박유진 이후로 정재근-정응민에 이르러 서편제 바탕위에 동편제 소리인 김세종제 춘향가의 장점과 중고제 장점을 접목시킨 전 소리제를 어우르는 새로운 창법 보성제 즉 보성소리가 발현 되었다. 이후 보성소리는 정권진, 성우향, 조상현, 성창순 등으로 전수 되어 불리어지고 있고 많은 소리꾼들이 이 수중에 있습니다. 이처럼 보성은 우리나라 판소리 성지로 자리하고 있으며 많은 소리꾼들이 찾는 곳입니다.
따라서 보성군은 판소리의 고장으로서의 역할과 맥을 이어나가고자 지난 1998년부터 서편제 보성소리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올해는 지난 2003년 11월 판소리가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됨에 따라 대중화에 앞장서기 위해 주제를 “서편제의 원류를 찾아서 박유전과 서편제”라 정하고 우리소리의 신명남을 대중에게 전파하고 쉽게 다가서게 함으로써 사라져가는 우리소리를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 놓고자 하였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을 요즘 많이들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가장 세계적인 소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자료: 보성군 홈피)
한국통신 존제산 중계소 표지판을 배경으로
주릿재 쉼터에서
이 지점에서 군부대로 전화를 한다.
우측에는 2중 철조망, 좌측으로는 둥근 철조망
그 가운데로 통과한다.
군견묘지 (존재산 정상)
이런 경고문이 수시로 나타난다.
존제산 정상 부위
장흥-벌교,, 보성-벌교 간 고압철탑
보성군 율어면과 벌교읍의 경계인 천치고개(모암재)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무대 벌교
호남정맥 기슭의 해안가에 자리 잡은 벌교(벌교)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고을이다. 5년에 걸친 우리 민족의 비극사를 다룬 ”태백산맥“은 작가가 실제로 거주했던 벌교읍내 구석구석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소설 속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들은 대부분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여순사건과 6,25전쟁 등 현대사의 비극을 거치면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던 부용교, 염상진, 하대치 등 빨치산들이 지주들의 집에서 쌀을 빼앗아 소작인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쌓아 놓았던 홍교(보물 제304호)도 벌교천에 걸려있다.
“태백산맥”에서도 비유로 등장하듯이 벌교의 명물은 역시 쫄깃한 맛이 일품인 꼬막이다. 벌교 꼬막은 실제로 육질이 탱탱하고 맛이 좋은데다 고단백이면서도 비타민과 칼슘, 철분 함유량이 많아 빈혈예방에 좋다. 호남지방에서는 흔히 “여수에서 돈 자랑 말고, 순천에서 인물 자랑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벌교에서 주먹자랑 말라”는 말은 개펄에서 생산되는 참꼬막이 우리나라 최고 품질이라 영역다툼으로 건달끼리 시비가 많아서 유래됐다고 한다. 여하튼 벌교 사람들은 제사 때 다른 것은 몰라도 꼬막만큼은 꼭 올린다.
또 매달 음력 말일에서 다음달 보름 사이, 썰물에 맞춰 장암리에 가면 질박한 삶 흠씬 묻어나는 꼬막 채취 장면을 구경할 수 있다. 바닷물이 빠지면 수십 명의 아낙네들이 개펄 위에 널빤지를 올려놓고 한쪽 다리로 개펄을 차고 나간다. 속도는 웬만한 배보다 훨씬 빠르다. 어떤 식당에 가도 꼬막이 밑반찬으로 나온다. 따로 꼬막정식을 시켜 들면 실컷 맛볼 수 있다. (자료; 펌)
오늘 산행은 너무 힘이 들어서, 예상 끝점인 겸백고개(오도치)까지는 산행이 어려울 것 같아서
중간에서 탈출을 하기로 하고, 남은 거리, 시간을 계산하고 있슴(천치고개에서)
600봉에 있는 쌍봉
600봉을 지나서 613봉을 오르면서
613봉에 있는 이정표,,, 현위치는 광대코 삼거리
태풍에 넘어진 등산안내도
키위 밭을 지나면서
보성은 국내 최대의 차 주산지요, 차산업의 발상지이다.
동국여지승람과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기록에 의하면 보성은 예부터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녹차를 만들어왔고, 지금도 문덕면 대원사, 벌교 징광사지 주변등을 비롯한 군 전역에 야생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또한 득량면 송곡리는 마을 이름이 다전(茶田)으로도 불리우고 있어 옛 기록을 뒷받침하고 하고 있다.
녹차는 해양성기후와 대륙성기후가 맞물리고 사질양토에다 강수량이 많아야 하는데, 보성의 차밭은 1939년 무렵에 이 같은 조건들을 모두 갖춘 활성산(구 학성산)자락 일대에 30ha가 조성된 후 그 면적을 점차 확대해 나왔다. 근래 들어 녹차의 효능이 현대인의 건강과 미용에 특효임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웰빙 열풍이 더해지면서 녹차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차재배 농가가 점차 늘어나, 2004년 현재 보성군은 646ha의 차밭에서 전국 생산량 46%의 녹차를 생산하고 있다.
오랜 역사와 함께 최대의 차 생산지이며 차산업의 발상지라는 자부심 속에서 지난 1985년 5월 12일 “다향제‘라능 이름의 차문화 행사를 활성산 기슭의 다원에서 국내 최초로 개최, 차의 풍작을 기원하는 다신제와 차잎따기, 차만들기, 차아가씨 선발 등의 행사를 실시한 이래 1988년 제4회 다향제를 제14회 군민의 날 행사와 병합, 다향제로 명명한 후 올해 32회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자료, 보성군 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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