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終)

호남정맥9구간 (그럭재 ~ 한치)

빠꼼임 2009. 4. 16. 17:35

호남정맥9구간(그럭재-한치)종주산행

산행일짜 : 2006. 8.13(일).               날      씨: 가마솥 더위

산행시작 : 08 : 15,,                       산행마침 : 15 : 23,,,         산행시간: 07시간 08분
산행거리 : 21.5 km,,                      산 행  자 : 산아, 솔바람,  나, (3명)
 
산행경로
    그럭재(2번 국도) ~  반섬산  ~  배각산 ~ 봉화산 ~  녹차밭  ~  봇재(18. 77국도)~  활성산~  삼수마을~  한치
 
★★★★ ★★★★오늘 구간 종주를 위해서 산행 시작점까지 가는 데만 꼬박 4 시간이 걸렸다. 날씨가 워낙 더워서 정맥 길이 나쁘면 애 좀 먹을 것이라고 걱정도 되었지만, 그럭재에서 봇재까지는 보성군청에서 정맥 능선이라고 해서 그런지. 봉화산 행사 때문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능선에 나무도 베어내고 잡풀도 1~2년 전에 제거 핸 흔적이 남아있었으나. 지금은 잡풀도 좀 자라고 키 작은 나무들이 갈구 쳤지만, 다른 구간에 비하면 양반 길이다. 그럭재에서 녹차 밭까지는 잡풀과 잡나무들이 많지 않은 관계로 진행이 수월한 편이었으나, 봇재, 녹차 밭을 지나서는 잡초, 잡풀, 가시덩굴을 헤쳐 나가야 하고, 태풍 때 쓰러진 나무들이 여기 저기 뒹굴고 있는 관계로 발목을 잡곤 해서 더운 날씨에 땀 꽤나 흘렸으며, 물 소비도 많았다. ★★★★ ★★★★


08시 15분 국도 2호선 (목포~부산)그럭재 우측 안치마을 반대편 버스승강장을 지나서 도로 옆 옹벽 위로 난 길을 따라 숲길로 들어선다. 오름길이 계속되더니 08시 36분 통신중계탑이 나타난다. 이어서 임도를 계속 따르니 08시 44분 또 다른 통신중계탑이 나타난다.

08시 49분 삼정리 6km, 초당리 1km, 정흥0.7km라고 씌어진 나무 팻말이 나타난다. 표지판은 페인트칠을 한지 꽤나 오래 되었는지 퇴색이 되어서 희미하게 보인다. 여기서 정맥은 우측 능선 숲길로 접어든다.

09시12분 삼각점을 만난다. (복내 11. 1990 재설이라고 ) 배각산이다. 긴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바람이라도 좀 불어주면, 산행하기도 좋을 터인데 바람 한 점 없다. 그저 온몸에 땀뿐이다. 09시46분 보성사 1.0km, 봉화산 0.7km 이정표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봉화산까지는 좌측으로 남해 보성만을 바라보면서 진행이다. 날씨관계로 온 몸은 땀으로 얼룩졌지만, 눈과 맘만은 시원하다.

10시 05분 봉화대로 올라가는 쇄석이 깔린 길이 나온다. 밑으로는 임도도 개설되어있다. 아마, 봉화산 행사 때 자동차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3분 후에는 보성군에서 세운 커다란 바윗돌이 나온다. 바윗돌에는 “새천년의 햇살 보성에서 빛나리”라는 글씨가 음각되어있다. 그 뒤로는 표석위에 커다란 돌맹이를 세워 놓았는데 앞면에는 “봉화대 복원기념”이라고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그 뒷면에는 봉화산(해발) 468m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정상석 바로 옆 돌계단을 오르면 돌로 쌓은 봉화대가 설치 되어있다. 봉화대가 높은 관계로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서. 여기서 보성읍내를 바라보면서 휴식이다.

보성은 일찍이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백의종군하여 “약무호남이면 시무국가라”하시면서 이곳 보성에서 지략을 얻고 군사를 일으켜 우리나라를 수호하는 기틀을 다진 곳이다. 일제시대 보성향교 제주사건등 국난으로 나라가 어지러울 때 국가를 구한 수많은 충신열사를 배출한 의향이며, 매년 5월이면 이곳 보성에서 전국의 다인들의 축제가 열리는 차의 고장 다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봉화산 복원 기념비 옆에 오석에 새겨진 봉화산 비문이 있는데 이를 옮겨 본다.
 
                                             봉 화 산
                                                                                     시인 안 도 섭
                                      새천년 하늘에
                                      우뚝 봉화대서니

                                      이 산 모통이
                                      해맑은 빛살 받아
                                      늘푸른 차나무 력력??히 서고

                                      강강수월래
                                      그 봉화 올리던 밤
                                      겨레 함성이 밀물져 오면

                                      섬진강 샛강이 흐르는
                                      내 고장 시절도 좋을시구

                                      머루랑 다래랑 멧새 기르며
                                      헌??대같이 꿋꿋한 너
                                      보성의 넋이여.


11시09분 봉화산 2.1km, 다원 3.0km 표지판 앞이다. 쉬어가게끔 의자 2개가 놓여있다. 날이 더운 관계로 휴식 시간도 자주다. 보통 때 같으면, 내리막길은 2시간 이상은 그냥 통과하곤 했지만, 오늘은 봉화산을 출발 한지 채 1시간도 안 되었는데도 목이 마르다. 10여분 계속 진행하니 寶城 宣氏 합장묘가 나타난다. 묘에는 둘레석도 해 놨고, 학생 벼슬이라서 비문도 읽어볼 시간도 없지만, 읽어 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냥 통과다.

11시 24분 재양골재이다. 종이에다가 재양골 내력을 적어서 비닐로 덮어 씌어서 나무에 걸려 있다. 내용은 이렇다. “#여기가 재양골(조양곡)재입니다. 버스가 천포지방에 다니기 전에는 화죽리, 군농리, 천포리, 서당리, 객산리 사람들이 보성장에를 가거나 광주 순천에 기차를 타려고 여자들은 짐을 머리에 이고 남자들은 등에 짊어지고 이 재를 넘었습니다. 유학을 하는 학생들은 자취를 하기위해 또는 하숙집에 쌀을 주기 위해 끙끙대며 땀을 흘리며 넘어야 했습니다.
 
장에 갔던 사람들이 막걸리를 거나하게 먹고 한가락을 뽑으며 넘거나 소를 몰고 가거나, 또 늦게까지 오지 않은 가족이 있는 집에서는 석유등을 밝히고 마중을 가기도 했지요, 이곳 사람들에게는 애환이 깃든 고개랍니다. 몇 십 년은 이렇게 계속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줄이 끊임이 이어졌답니다.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11시36분 300봉이다. 봇재다원과 보성다원등 다원이 동쪽으로 바라보이고 국도 18호선도 바라보인다. 나무의자도 2개를 설치 해 놓아서 잠시 쉰다. 남쪽으로는 보성만과 크고 작은 섬들이 무수히 바다위에 떠있다. 서쪽으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활성산이 멀찌감치 눈에 들어온다.

11시59분 310봉이다. 길이 좀 헷갈린다. 앞으로 나아가서 봇재로 내려가야 되는지 아니면, 여기서 북동쪽으로 나있는 차 밭 사이 길로 내려가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이길 저길을 잠시 왔다 갔다 하니. 시그널이 붙어 있는 쪽을 향해 내리막길이다.
 
제일 다원 정문앞을 지나서 봇재 주유소 뒤편 언덕배기에 소나무가 있고, 쉬어가게끔 인공적으로 가져다 놓은 바위가 있어서 여기서 20여분 허기진 배를 채우고 12시40분 출발이다. 12시 55분 차마실 다원 간판앞을 통과해서 보성군 회천면과 보성읍 경계인 봇재 18번 국도를 건너니 봇재다원이다 (12시 56분).
 
보성군은 1985년부터 매년 차 수확기인 곡우가 되면 전국에서 유일한 차 문화축제인 보성다향제를 열고 있다. 다신제를 시작으로 차잎 따기, 차 만들기, 차 아가씨 선발대회, 다례 시범등 여러 가지 행사를 갖는다.

봇재다원을 들어서니 영감, 할마이 조각상을 세워놓고 그 밑에 다가 글을 써 놓았는데 전문을 옮긴다.

山을 등지고 바다를 굽어보는
내 고장 보금자리 아늑한 樂土
할바지 할마니들이 일구어논 누리어라
千里를 떠나가도 萬里를 떠나가도
꿈은 늘 여기에서 서성이고 맴돈다.
뿌리가 깊이 내려서 끊을 수 없는 情이여
태어나 자란 고장 부모와 형제자매
돌아보고 도 돌아봐도 限없이 쏟힌 사랑
아끼고 고이 가꾸어 번창으로 이끄옵세
檀紀 4326年 癸酉仲秋節 ~짓고~~ 쓰다

영감, 할마이 조각상 맞은편은 봇재다원 시음장이다. 들려서 시음을 하고 갈까 생각도 했지만, 온통 땀에 젖어 있어서 옆에 다른 시음객이 있으면, 불쾌하게 느낄까봐 그냥 통과다, 봇재 다원 가운뎃길 양옆으로 차 밭이 계속되는 오르막길을 향한다. 시음장을 지나니 우측으로 커다란 기와집 2층을 짓는데 방수도 많고 제법이다. 호텔같이 보이기도 하다.

13시 05분 봇재 다원 차밭 정상이다 정상에는 그늘막이 잘 지어져 있고, 관광온 사람들인지 좀 붐빈다. 봇재다원 길을 버리고 정맥으로 접어든다(13시22분)., 지금부터는 길이 형편없다. 넘어진 나무들이 이리 저리 뒹굴고, 잡나무,. 망개나무, 딸기나무들이 옷을 할퀴고 붙잡는다.
 
13시 40분 이제는 차 밭이 끝났는가하고 생각을 했는데, 또 차밭이 나타난다. 땡볕에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차 밭을 매고 있다. 여기서도 길이 헷갈린다. 차 밭 우측 가장자리로 정맥을 가늠하고 올랐는데. 정맥이 분명치 않아서 2~3분간 헤매다가 정맥을 찾아서 잡목 숲길로 접어든다.

14시 01분 활성산에 힘겹게 올랐다. 오늘 구간 중에서는 봉화산에 이어서 두 번째 높은 고지이다. 14시 27분 진원 박씨 합장묘가 나타난다.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어, 잠시 휴식이다. 상석 전면에는 이렇게 음각되어있다. “聯?棣堂珍原朴公諱重憲之墓配恭人南平文氏~· 配 恭人下東鄭氏”~~
棣 산앵두나무 체(字)
활성산은 古山子 金正浩 선생이 그린 대동여지도에 夢中山으로 표기된 산의 이름이 언제부터인가 鶴城山, 활성산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14시 41분 아스팔트 도로와 만난다.. 정맥이 끊긴 감이 든다. 포장도로를 따라서 내려오니 삼수마을 앞, 三水亭 현판이 붙은 정자가 나타난다. 정자에는 더위를 피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쉬고 계신다. 정자 옆에 수도꼭지가 있어서, 머리부터 갖다대고 꼭지를 트니 뜨신 물만 나온다.
 
한참을 틀어도 마찬가지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얘기를 나눈다. 어느 할머니가 월급 받고 하지요 하고 묻는다. 그냥 웃어 넘겼다. 할아버지 한 분은 호남정맥도 알고 계신다. 어떻게 잘 아시냐고 물으니, 저기를 보란다, 가르쳐 주는 데를 쳐다보니, 정자옆 나무 한그루가가 있는데 가지에 종주자들의 시그널이 꽤 많이 달렸다.
 
호남정맥을 하는 사람은 여기를 다 거쳐 가기 때문에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또 민박은 하지 않느냐?? 왜 차를 여기 대어 놓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차는 출발지에 대어 놓아서, 그 차를 가지러 가야한다고 답을 하니. 힘들지 않느냐고 또 묻는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15시12분 갈멜 사슴농장 입구를 지나니 895번 지방도가 나타난다. 삼수마을 입구라는 큰 표지석이 있고, 건너편에는 농장쉼터가 나온다. 오늘 산행은 여기서 끝이다(15시 22분).

 

 산행시작점인 (국도2호선 목포~부산) 그럭재

 

봉화산을 오르면서
 

봉화산 정상 바윗돌에 새겨진 보성군의 슬로건???"새천년의 햇살 보성에서 빛나리"가 음각되어 있슴

 

 봉화산 봉화대에서

 

 봉화산 정상의 봉화대

 

 봉화산에서 바라 본 보성읍내

 

((봉화산을 내려오면서)) 국도 2호선(목포~부산)이 시원하게 뚫려있슴

 

보성만이 시원하게 바라다 보임

 

제일 다원 앞의 안내문(경고문???)

 

 봇재 다원 시음장

봇재 다원 전경

 

봇재 다원 녹차 밭

 
우리나라 최대 차 생산지 보성
전남 보성은 우리나라 최대 차 생산지로 이름이 높은 고을이다. 보성의 차밭은 대부분 호남정맥 분수령인 활성산(465.2m)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호남정맥 분수령이면서 보성읍과 율포를 오가는 고갯길인 봇재 부근은 동양다원, 대한다원, 꽃다원등 수십만 평에 달하는 차밭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보성 차 밭은 동국여지승람과 세종실록지리지 등에도 차나무가 자생하는 곳으로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토양에 큰 일교차, 적당한 습기 등 차 생산에 적당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인 1939년 일본의 차 전문가들이 보성을 우리나라 최적의 홍차 재배지로 선정해 인도산 차 종자를 수입하여 밭에 씨를 뿌리면서부터 대규모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 후 1950년대 후반에 새로운 차 재배단지를 개간하고 1970~80년대에 재배 면적을 확대하면서 현재는 358ha에서 연간 200여 톤의 차가 생산되는 전국 최대의 다원이 형성되었다.
 
이렇게 산재한 보성의 차밭 중에서 눈맛을 만족시켜주는 최고의 포인트는 대한다업의 차밭이다. 이 차밭은 “여름향기” “온달왕자” 같은 텔레비전의 각종 드라마와 광고 등의 배경지로 애용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모 이동통신회사의 광고에서 수녀와 비구니 스님이 차밭을 배경으로 함께 자전거를 타던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가로수 길이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이곳은 일약 최고의 관광지 대열에 올라섰다. 호남정맥 봇재 고갯마루 부근의 다향각(茶香閣)에서 보성만을 배경으로 널따랗게 펼쳐진 차밭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얼마나 덥던지 물만 들이 킴

 

산행 끝점인 삼수마을 (지방도 895번 도로가 지나 감)표지석

                                                  섬진강 원천수 飛來泉 이라고 음각되어 있슴

 

by 야초 | 2006/08/14 13:34 | 호남정맥종주산행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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