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시작 : 08 : 36, 산행마침 : 14 : 35 , 산행시간 : 06 시간
산행거리 : 13. 1 km, 종 주 자 : 산아, 조용화, 서광진, 야초
산행경로
산성고개 - 동문- 제4망루- 의상봉 - 옥녀봉 - 금정산 - 고당봉 - 당고개 - 장군봉 - 계명봉 -
부산컨트리클럽 - 지경고개
낙동정맥 제3구간 ( 산성고개 - 지경고개 )
오늘 산행 시작은 08시 36분이다. 일기예보상 오늘 날씨는 올 겨울 들어 제일 춥다고 했다, 한강도 올 겨울 들어서 처음으로 오늘 결빙 된 날이다. 산성고개에 서니, 낙동강 강바람이 산성고개 쪽으로 몰아쳐 오는지 마등령의 칼바람 보다도 세차다. 완전히 바늘로 급소를 찌르는 것만 같다.
산성고개를 오르니 넓은 구룡성 숲속이다. 고속도로처럼 확 뚫린 등산로를 10분 정도 진행하니 동문이다. 동문부터는 조망이 좋다. 좌측으로는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고, 우측으로는 부산 동래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는 광안대교도 눈에 들어온다.
동문을 45분 정도 지나니 제 4망루이다. 조망이 일품이다.. 망루에 서니 38 --~39년전 군대에서 보초섰던게 생각이 난다. 이 망루에서 왜놈들 쳐들어 오는지를 지켜 봤을 그 당시에는 보초 심정이 어떠했는지 등~~어떻게 보초를 섰는지~~~~제4망루를 20여분 지나니 금정산 제 3 지점, 119조난 위치 표지판이 나온다. 이어서 15분 정도를 가니, 북문이다. 북문 앞에는 범어사 내려가는 표지판이 세워져있다.
북문을 지나서 3분 정도 가니 세심정(洗心井)이라는 약수터이다. 물이 좋은지 시험성적서도 비닐에 코팅해서 부쳐 놓았다. 수도꼭지는 2개인데, 추운 날씨인데도 얼지 않고 졸졸 나와서 한 바가지 받아서 먹는다.
세심정을 12분 정도 지나니 금정산 고당봉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고당봉 까지는 오르막이다. 숨을 고르면서 바위 사이를 기어오르니 고당봉(姑堂峰)이라고 새겨진 정상 표지석이 나타난다.. 고당봉 정상은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고 정상부위는 바람이 워낙 세차서 서 있기도 힘들다. 조망도 일품이다.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고 멀리는 김해공항과, 동쪽으로는 동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당봉의 고자는 시어머니 姑자를 썼는데 시어머니하고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고당봉 바로 밑에는 무슨 용한 보살이 집을 짓고 살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산꼭대기 바위틈에 집을 짓도록 놔 뒀는지 당국은 뭘하는지 모르겠다.
고당봉은 암릉군이라 내려오는데 로프가 매달려져 있다. 배낭이 거추장스러워서 뒤로 돌아서서 내려오는 수밖에는 없다. 고당봉을 25분 정도 지나니 마애여래 입상 안내판이 있다.
안내문에 의하면, “”가산리 마애여래 입상은 지방유형문화재 제 49호로서, 해발 727m의 금정산 암벽에 음각(陰刻)된 이 불상은 높이 12m 폭 25m로 충북 법주사의 마애여래 입상(높이 13m) 다음가는 크기로서 화려한 조각미와 불상의 모양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확실한 작자와 제작 년대는 미상이지만 당시의 찬란했던 문화를 알 수 있게 한다, 1980년 월 일 “”이라고 씌여 있다.
마애여래입상을 20여분 지나니 산속에 옹달샘이 나온다... 이 산중에 어디서 물이 흘러들어 와서 어떻게 나오는지 신기 할 수밖에 없다.
옹달샘 표지판은 금정산 옹달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웠다고 표지판에 씌여 있다. 표지판에 씌어진 글귀가 재미있어서 여기에 옮겨 본다.
“” 옹달샘 물에서 목을 축이는 길손이시여! 사랑 하나 풀어 던진 샘물에는 바람으로 일렁이는 그대 넋두리가 한 가닥 그리움으로 솟아나고,....우리의 한 모금의 샘물에서 우리를 구원할 이 산임을 인식합시다. 우리는 한 모금의 샘물에서 여유로운 벗이 산임을 인식합시다.“”
옹달샘 바가지로 물 한 바가지 먹고, 20여분을 지나서 장군봉에 오른다. 장군봉은 낙동정맥에서 벗어 나 있지만, 정맥 능선하고 가까이 있는 관계로 왔는김에 둘러보기로 한다.
장군봉 정상에는 정상 표지석이 세워져 있어서 정상석을 배경으로 한 컷하고, 계명봉으로 향한다. 장군봉을 지나서 계명봉으로 가는 길에는 이름 없는 봉우리가 있다. 이 봉우리에 서면 범어사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봉우리를 내려오면서, 억새평원에서 자리를 잡고 점심이다. 계명봉은 정상석은 없고, 돌무덤으로 되어있다
여기에서 길 주의 구간이다. 길이 잘 난 곳으로 빠지면, 길을 잘 못 든 것이다. 정맥길은 돌무덤 바로 뒤 희미한 길로 급경사를 내려서야 한다. 계명봉을 내려올 때, 돌무덤 뒤 길로 내려섰으나, 한 10여분을 가니 길이 희미해져서 길을 잘 못 들지나 않았나 하고, 다시 내려왔던 길을 거슬러서 숨을 헐떡거리며, 계명봉 돌무덤으로 올라와서, 산행지도를 다시 확인한
다. .
처음에 내려갔던 길이 맞은 것이다. 경사가 얼마나 급하고, 음지라서 낙엽을 밟으면, 낙엽 밑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도 있고, 낙엽 자체도 미끄러워서 줄줄 미끄러지면서 부산 컨트리컬럽으로 향한다.. 계명봉을 내려오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용을 썼던지 장딴지 근육에 쥐가 날 지경이다.
계명봉 급경사를 50여분 내려오니, 밑으로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육교이다. 육교를 건너면, 부산컨트리컬럽 후문이다. 후문으로 들어서지 않고 바로 왼편 능선으로 기어 오른다. 능선위에 올라서 골프장을 내려다보니, 잔디가 일품이다. 아마, 이 능선이 310고지인가 싶다.
이 능선을 지나 내려오니, 좌측으로 탱자나무 울타리가 갈구 친다. 탱자나무를 손을 봐서 다행이지. 손을 보지 않고, 그대로 뒀더라면, 탱자나무에 옷이 걸릴 것이 뻔하다, 이어서 축산농가가 나타난다. 축산농가에서 소 배설물을 길에다가 버려놔서, 길은 온통 소똥 천지이다. 축산농가를 바로 지나면, 오늘의 산행 끝점인 녹지농원이다. 바로 앞에는 4차선 도로가 확 뚫려 있다. 오늘 산행시작한지 6시간 만이다.
다음 산행구간은 지경고개에서 제 2천성산이다. 산행예정시간은 9시간 10분이다. 금정산성과 금샘. 그리고 부산의 대표적인 명산인 금정산(金井刪.802m)은 산자락에 범어사, 금정산성, 금샘 등 사연 많은 문화유적이 많다. 정상에서 서남쪽으로 능선과 계곡을 따라 축성된 금정산성(사적 제215호)은 성의 규모와 축조양식으로 볼 때 신라시대에 쌓은 것이라 한다.
전체길이 17,336m, 면적 714,216㎡...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금정산성은 1703년(숙종29) 경상감사 조태동(趙泰東)이 동래부사 박태항(朴泰恒)을 시켜 쌓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1707년 (숙종33)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중성(中城)을 쌓고 장대(將臺), 군기고(軍器庫)등의 시설을 보충하였으며, 1808년(순조 8) 부사 오한원(吳翰源)이 동문(東門)을 신축하고 수비군을 배치하였다고 한다.
동쪽 성벽은 정상에서부터 해발 500~600m의 낙동정맥 분수령의 험준한 지형과 암벽을 따라 요새를 이루었고, 서쪽 성벽은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의 능선과 계곡을 건넌 뒤 상계봉(638.3m)을 거쳐 다시 낙동정맥 분수령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벽은 화강암을 1,5~3m높이로 지형 굴곡에 따라 쌓았으며,
위치상으로 중요한 부분에는 무사석(武砂石)을 사용하였다. 현재 약 4km의 성벽이 남아있으나, 1972년부터 2년에 걸쳐 동, 서, 남 3문과 성곽 및 4개의 망루를 복원함으로써 한국 최대의 산성으로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한편,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 옆에는 바위로 된 샘이 하나 있는데, 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에는 ‘산정에 돌이 하나 있어 높이가 3장 가량이고 늘 물이 차 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에서 금빛 물고기가 다섯 색깔의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는 금샘 이야기가 전한다.
또 금정산성 토산주인 일명 ‘동래산성 막걸리’가 제법 유명하다. 조선시대 산성 에서 살던 화전민들이 누룩을 만들어 생계로 삼아 온 데서 유래한 것으로 역사가 250년쯤 된다고 한다. (자료 : 펌)
오늘 산행을 시작 하면서
동문을 배경으로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