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16구간 (울치재 - 윗삼승령)종주 산행
산행날짜 ; 2006. 3. 18(토). 날 씨 ; 비. 흐림
산행시작 : 08 ; 00,, 산행마침 : 15 : 15,, 산행시간 : 07시간 15분
산행거리 : 21 km,, 종 주 자 :산아 . 솔바람, 조용화.서광진, 야초 (5명)
산향경로
울치재 - 창수령 - 독경산 - 670봉 - 옷재 - 저시재 - 쉰섬재 -아래 허리재 - 화산봉 - 아랫삼승령
-지무터재 - 삼승바위 - 윗삼승령
낙동정맥제16구간(울치재-윗삼승령)
오늘 산행을 위해서 사는 곳에서 새벽4시에 출발해서 울치재에 도착하니 아침8시다. 산행 출발 전날부터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접한바 있지만, 그래도 산행약속이 되어있어서 강행하기로 하고. 울치재에 도착하니 가랑비가 내린다. 비가 오는 것에 대비한 산행준비를 하고 오늘의 첫 번째 봉오리인 684봉을 향하여 오른다. 684봉에서부터 잠시 내리막길이 계속되더니 688봉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688 봉에 오르니 창수령 임도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잠시 내리막길을 달리니 창수령이다. 산행시작한지 1시간 15분 만이다 (09:15).. 창수령에는 울치재 4.0km 표지목과 낙동정맥 영양군 4구간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판이 서있다. 창수령에 도착하니 비가 약해지면서 그칠 기미가보여서 우의는 벗는다.
오늘 산행길은 온통 낙엽이다. 마치 스폰지를 밟고 가는 기분이다. 창수령을 지나서 독경산을 향하는 산행로 옆에는 고사목이 몇 그루 있다. 보기에도 아름답다. 마치 설악이나. 지리산 주목 고사목과도 흡사하다(09:44)..고사목지대를 5분 정도 지나서 독경산에 오른다.
독경산 정상에는 50사단 121연대에서 설치했다는 흰 페인트로 글씨를 써놓은 헬기장과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있다. 헬기장에서 3분 정도 휴식이다. 독경산을 뒤로하고 670봉을 향한다. 독경산에서 10여분 내려오니 좌측으로 잘 가꾸어진 무덤이 있다. 비석도 크게 세워놓았다. 산행을 재촉해야 하므로 비문은 읽지도 못한다. 그냥 눈으로 비석이 있구나하고 지나간다.
무덤을 지나니 약간의 평탄한 길이다. 간간히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산행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독경산에서부터 산행시간 1시간이 지날 때까지 소나무마다 일제시대때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 남아있다/. 옆에서 보면 마치 군인 계급장 같이 온통 v자로 패여 있다. 보기에도 흉측스런 모습이다.
독경산을 출발한지 35분정도 되어서 임도와 만난다(10:24)... 산행지도에는 임도 표시가 없어서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이 안 되어서 산행지도를 펼쳐보니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 마을에서 영양군 영양읍 밤남골로 통하는 임도이다. 임도에서부터 670봉 까지는 오르막의 연속이다. 경사도 급하다. 670봉까지 25분이 소요된다. 670봉에 올라서니 멀리 임도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670봉부터는 잠시 내리막이 계속되더니 이내 오르막이다. 630봉이다. 오늘은 630 봉이 겹쳐 있다. 지금 630봉을 오르고 나면, 또 다른 630 봉을 넘어야한다.
독경산을 출발한지 4시간 40여분이 지나서 아래허리재에 내려선다. 아래허리재는 사람 통행 흔적이 남아있지를 않다. 산행길 옆에는 멧돼지 목욕한 흔적이 있는 늪??이 있다(사진 참조. 13:32)...아래허리재를 지나서 급경사 길을 오르니 무덤이 나타난다. 무덤위에는 비둘기를 매가 잡아먹은 흔적 그대로이다. 비둘기 깃털이 이리저리 바람에 날렸지만 잡아먹은 지 몇 시간이 채 안되는지 깃털이 무덤 정상 부위에 그대로이다. 무덤을 지나서 아랫삼승령까지는 내리막이다.
아랫삼승령은 영덕군 창수면과 영양군 영양읍을 잇는 임도이기도하다. 또한 근래에 공원을 조성하였는지 의자도 있고, 정자도 세워놓고 주변 울창한 소나무와 잘 어울린다. 통나무 의자에 앉아서 잠간 쉬고 있는데 농촌에서 사용하는 세렉스 화물차1대가 올라온다.
사람 셋이서 타고 왔는데 오늘 사람 처음 만나는 것이라서 말을 걸었더니. 창수면 쪽으로 나가면 삼승바위에 가 볼 수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거기 구경하러 온 사람으로 잘 못 알았는지 설명도 덧붙인다. 삼승바위는 삼정승이 놀았는 것이기도 하고, 거기 가면 바위에 바둑판과. 장기판도 그려져 있으며, 바위 속에 굴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샘도 있다고 한다.
바위 속 샘은 사람 열명이 오면, 열명이 먹을 물이 나오고, 백명이 오면 백명이 먹을 물이 나온다고 상세히도 우리한테 설명을 한다. 영덕방면으로 임도 따라서 내려가다가 왼편으로 들어가면 갈 수있다고 얘기를 해준다.((산행 후에 영덕군. 영양군. 울진군 홈피에 들어가서 삼승바위 전설을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슴))...산행지도에는 삼승바위가 나와 있지만 신행길은 삼승바위와 좀 떨어져 지나간다. 멀리서 삼승바위 구경만 한다(사진 참조).
아랫삼승령에서 삼승바위까지는 계속 오르막이 이어진다. 산행길은 삼승바위를 우측으로 끼고 돌아간다. 멀리서 바라본 삼승바위는 일품이다. 양옆에 2개의 바위가 서있고, 그 가운데 바위가 하나 덩그렇게 올려져있다. 아마 저게 삼승바위이겠지 하는 마음이다. 삼승바위를 지나서 평탄한 길과 내리막을 반복하니 윗삼승령이다.
윗삼승령은 영양읍 기산리 마을과 영덕군 창수면 마을을 잇는 임도이다. 임도에는 차단기가 설치되어있고, 낙동정맥 영양4구간을 알리는 커다란 간판이 세워져있다. 오늘 산행 끝점이다. 오늘 산행은 당초에는 울치재에서 아랫허리재까지 잡았으나, 아랫허리재에 자동차 진입이 용이치 않아서 윗삼승령까지 산행을 했다.
울치재(울티재)내력을 알고자 산행 마친 다음 날 영덕군 홈피에 들어가 보니. 이렇게 적혀있다.
울티재(泣嶺)와 감사 손순효(孫舜孝)
창수면과 영양군 경계에 있는 독경산(讀經山)의 줄기로 창수에서 영양으로 넘나드는 산길로써 울티재는 재가 높고 험하며 계곡도 깊었다. 옛날에는 석양(夕陽)에 이 재를 넘으면 반드시 그 나그네는 참상을 입었다 해서 울고 넘는다는 뜻으로 울티재(泣嶺)라 했다 하며 저녁만 되면 이 재 넘어 가기를 꺼려했다 한다.
어느 날 원님이 오다가 길에서 풀벌레를 보고*『저 벌레가 무슨 벌레냐??』*하고 물었다. 『범아제비입니다.』하고 하인이 대답하였다. 조금 더 오다가 호랑이(범)를 만났다. 겁이 났으나 정신을 차리고 『내가 오다가 자네 백부(伯父. 阮丈)를 만났으니 길을 비켜라』하니 범(호랑이)이 길을 비켜주어 위기를 모면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울티재와 관련된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울티재는 영해 고을의 교통의 요충지로 영해 고을을 오고가는 대소의 관리들이 처음 이 고개를 넘으면 반드시 죽임을 당하곤 하였다. 그래서 영해 고을의 관리가 되는 것을 모두가 꺼리게 되었다. 그래서 손순효(孫舜孝)가 경상도 감사가 되자 바로 울티재에 내려와 주위를 살핀 다음 오래된 나무 한그루를 베고 글을 쓰기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
汝捐華山呼萬歲 我將淪命慰群氓
個中輕重誰能會 白日昭然照兩情
너희들이 공손히 화산곡(華山曲)을 만세토록 부른다면 내 장차 임금의 명을 방아 너희들을 위로하리라. 개개 일들의 가볍고 무거움을 누가 능히 헤아리랴 밝게 비추는 햇님이 우리 양 충정을 비추는 햇님이 우리 양 충정을 비추어 주지 않은가
그러자 바로 괴이한 일들이 없어지고 이후로는 흉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울티재는 괴이한 일들이 없어졌다고 하여 파괴현(破怪峴)이라 하였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 태조 2년(1393) 5월에 전조 고려 왕씨들의 후예들을 영해로 옮겨 살도록 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의 후예들이 점차 장성하면서 조선 왕조에 대한 반감으로 범아제비 혹은 산적 등으로 변장하여 새 왕조들의 관리들을 살해하여 선조들의 원한을 갚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선 왕조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오래 방치하면 구왕조의 부흥운동이 일어 날까봐 병조좌랑 등을 역임한 손순효(1427-1497)를 경상도 관찰사(감사)로 삼아 이를 토벌하게 하였는데 이 때가 성종16년(1485)이었다. 이는 조선이 건국된 지 불과 73년 밖에 되지 않은 시점으로 이때 까지도 신왕조에 대하여 반발하는 세력이 영해지역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손순효가 써서 붙인 방문(방문)의 마지막 구절에도 여실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으며. 이후 연산군 1년부터 연산군 4년(1495-1498)에 이르는 동안 영덕현령으로 재직한 권오복(권오복)의 “파괴현”이란 시로써도 이를 알 수 있다.
영양 서석지
반변천 상류 입암면 연당리에 자리한 서석지(瑞石池. 중요민속자료 제108호)는 1613년(광해군5)에 석문(石門), 정영방(1577~1650)이 만든 연못과 정자다. 전통 조경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이 정자는 보길도의 부용동 원림, 담양 소쇄원과 더불어 한국 3대 정원으로 꼽힌다.
자양산 남쪽 완만한 기슭에 위치한 서석지는 가로 13m, 세로 11.2m, 깊이 1.7m. 그 안에 상운석등 물 위에 나타난 것이 60여개, 침수된 돌이 30여점 등 90여개의 서석군이 전통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돌 하나하나에 모두 이름이 있어 정영방의 학문과 인생관은 물론 , 은거생활의 이상적 경지와 자연의 아름다움에 심취하는 심성을 잘 알 수 있게 해 준다. 연못의 이름은 이 서석군에서 유래하였다.
연못은 사우단(四友壇)을 감싸는 U자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 사우단엔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 국화를 심어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고 있으며, 400년 된 은행나무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연못의 동북쪽 귀퉁이엔 산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도랑을 만들었고, 반대편의 서남쪽 귀퉁이엔 물이 흘러나가는 도랑을 만들었다. 이 연못을 중심으로 경정(敬亭), 주일재(主一齋), 수직사(守直舍) 남문과 담장이 에워싸고 있다.
정원은 내원(內苑)과 외원(外苑)으로 구분되어 있다. 내원은 정관, 사고, 독서 등 사생활을 위해 인공적으로 꾸몄고, 외원은 주위의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앞산과 청기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이 스쳐 지나가도록 병풍바위가 둘러쳐져 수려한 천혜의 절경을 이루고 있다. (자료: 펌)
산행 시작 점
창수령에 있는 안내문
창수령에 설치되어 있는 낙동정맥 안내도
창수고개 표지목
창수령에서 바라본 임도
독경산 오름길에 있는 고사목
독경산 정상에서
독경산 정상 비닐 표지판
송진 채취 흔적
임 도
멧돼지 목욕탕. (늪 지대임)
종이 다른 나무가 붙어서 커고 있슴
매가 비둘기를 잡아 먹은 흔적(깃털이 많이 있슴)
소나무가 멋짐 ( 아랫삼승령)
아랫삼승령 쉼터
삼 승 바 위
윗삼승령에 설치 되어있는 낙동정맥 표지판
윗삼승령에 설치 되어 있는 차단기
기산리 마을로 내려오면서 윗삼승령 가는 길목이 조금 마을임
입석(선돌) (((산행마치고 나오면서 입석 표지판이 있길래 차를 멈추고 한 컷 했슴))))
영양 읍내 들어 가기 전임
☆ # by | 2006/03/20 09:32 | 낙동정맥종주산행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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