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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히말라야 14좌봉 루트 개척이 새 목표…산악인 박영석....

빠꼼임 2009. 6. 18. 09:36

히말라야 14좌봉 루트 개척이 새 목표…산악인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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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서벽 코리안 루트를 통해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박영석 대장.
'지독한 근성과 평상심, 이에 더한 건망증.’

산악인 박영석(46) 대장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그는 기자가 만나기 전 머리 속에 그렸던 사람보다 더 강했다. 목표가 서면 어떻게든 해낸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 강한 신념으로 자신을 지키고 있었다. 후배들에게도 그 믿음이 곧 그의 카리스마였다.

산악인들이 흔히 하는 ‘산이 좋아 산에 묻히고 싶다’는 얘기를 그는 부정했고, “그렇게 산에서 생고생하면서 여태껏 버텨왔는데 왜 그곳에서 죽냐”고 말했다. 그는 “산에서 절대 죽고 싶지 않다. 왜 얼음구덩이에서 죽어야 하나. 어떻게든 살아서 나이가 많이 들어서는 사랑하는 가족 품에서 죽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함께 등반하다 산에 묻힌 9명의 대원들에 대한 애도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어떻게 유가족들을 뵐 수 있을까’ 등 견디기 힘들 정도의 심적 고통을 받았었다.

매년 5월 16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1993년과 2007년 크레바스와 눈사태로 인해 각각 동료 2명씩 모두 4명을 하늘나라로 보낸 날이다. 올 5월 20일 에베레스트 코리안 신 루트를 개척하기 전 16일에도 이들 4명을 기리는 의식을 지냈다.

박 대장은 “이들과의 약속이고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며 “물론 대단한 쾌거지만, 산악인이자 탐험가로 난 내 갈 길을 가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런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나이지만, 건망증하면 대한민국 2등 자리가 아쉬울 정도로 심하다.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특히 손에 쥔 것은 여지없다. 지금까지 잃어버린 휴대폰만 100대가량. 우산, 지갑, 카메라 등 들고 다니는 것은 그의 손에서 1주일을 버티기 힘들다. 어머니가 은행에 예치하라며 준 4천만원을 잃어버린 적도 있다. 16년 전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반의 후유증이다. ‘뇌세포가 많이 죽어 다른 뇌세포를 이용해 기억해야 때문이기도 하고 습관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그의 설명이다.

11일 박영석 원정대가 있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세계탐험협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날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지 20일째'라며 대원들과 함께 점심까지 동행했다. 박 대장을 비롯한 원정대원들은 이번 남서벽 루트 개척으로 몸무게가 평균 15kg씩 줄었다. 대부분 20일 동안 7, 8Kg은 늘었지만, 지금도 맛있게 먹고 몸관리하면서 회복 중이다.

이들 원정대 중 신동민 대원은 대구대를 나온 지역 출신 인사였다. 그는 "매일신문사와도 에베레스트 등정을 함께했다"고 했다.

◆‘김찬삼의 세계여행' 전집

누나 넷을 둔 막내 박영석은 여성스러워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 군수품 납품회사를 운영했던 아버지는 누나들과 공기놀이를 하던 막내 아들을 강하게 키우길 원했는지 4살 때부터 수영, 공놀이 등 운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평범한 유년시절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준 ‘김찬삼의 세계여행’ 전집은 그에게 꿈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이 전집을 100번 이상 반복해 읽었다. 책이 모두 다 닳아 헤질 정도였다. 공부를 잘 못했지만 탐험가로의 그의 꿈은 무럭무럭 자랐고, 그는 재수 끝에 동국대에 입학했다. 동국대로 간 것도 단 하나의 열정 때문이었다. 동국대 산악부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 산악부라고 자부했다.

박 대장은 “30년 전 동국대 산악부가 히말라야 마나슬루를 정복하고, 도심에서 카 퍼레이드를 한 건 충격이자 동경 그 자체였다.”고 기억했다.

◆9명 보내고 나 역시 수차례 죽을 뻔

박 대장은 “살아있는 게 감사할 뿐”라고 말했다. 그는 수십차례 목숨을 잃을 뻔 했다. 8천m이상 세계 최고봉들을 35차례 정복했으니, 히말라야는 그의 목숨을 노렸던 적도 많았을 터.

이번 남서벽 코리안 루트 개척에도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4월 25일 남서벽 루트 개척작업 중 왼쪽 종아리 파열 부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그의 의지를 꺾기에도 턱도 없는 부상이었다.

박 대장은 ‘가장 심각했던 적이 언제냐’고 묻자 3차례의 사건을 떠올렸다. 어떤 영화도 그보다 더 극적일 순 없을 듯했다.

1997년 다울라기리(Dhaulagiri, 8천201m) 스노우브릿지. 그는 눈 속에 가려져있던 천길 낭떠러지 '크레바스' 아래로 떨어졌으나 틈과 틈 사이 연결된 스노우브릿지 사이에 배낭이 걸려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는 것. “사실 저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고 믿기지 않아요. 절 살리려고 스노우브릿지가 있었나보죠."(웃음)

1991년에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에서 150m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눈 속에 파묻혀 살았다. 1995년에는 에베레스트 북동릉에서 눈사태를 만나 700m아래로 휩쓸려갔으나, 역시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살았다. 이 아찔한 얘기를 듣는 동안 ‘아무래도 대한민국 산악인의 두 거목인 박 대장과 엄홍길은 하늘이 돕는 '천상 산악인’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내 꿈은 '탐험학교'

그는 탐험가가 존중받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의 지론이었다. 탐험 선진국의 사례를 들며 일부 불만을 표현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뉴질랜드의 등산가이자 탐험가인 에드먼드 힐러리( Edmund Hillary, 1919~2008)는 5달러짜리 지폐의 주인공이자, 뉴질랜드 탐험학교의 설립자가 돼 국부와 같은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탐험학교’는 그가 미래 한국민에게 주고 싶은 꿈이다. 드넓은 세상을 개척하고 각 분야에서 진취적 기상을 발휘해 세계로 뻗어가는 대한민국 정신의 근원을 마음속에 심어주고 싶은 것.

이런 이유 때문에 어린이 잡지나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인터뷰 요청이 오면 거절하는 일이 없다. 오히려 언론 인터뷰와 TV오락프로그램 참여요청은 가급적 사양하는 편이다.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실어주는 일이 다른 어떤 일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인터뷰도 대구등산학교 장병호 교장의 권유가 많이 작용했다.

그는 “정부 차원이 아니라면 서울시,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기초단체 차원에서도 탐험학교 설립에 도움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일문일답

-왜 잘 잃어버리나요.

“이젠 초월했습니다. 손에 뭐가 있기만 하면 잊어버리니까요. 심할 때는 집 전화번호도, 아이들 이름도 잊어버립니다. 무산소등정 후유증 때문인 것 같은데, 그래서 평상 생활에서 손에 아무것도 안 들고 다닙니다”

-이번 등반멤버들은 어땠나요.

“다 '골통'들이죠. 다들 잘 따라줬고 큰 사고없이 등반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 이번 등정으로 제가 소속된 회사에 다 취직돼 앞으로 1년에 4개월은 원정등반을 떠날 수 있게 됐습니다. 진재창 부대장과 신동민·강기석 대원 등이죠”

-정상에 이를 때 뭘 먹습니까.

“정상 탈환 5일 전쯤부터는 제대로 된 식사는 꿈도 못꿉니다. 그저 물이나 조금씩 마시고 열량 보충을 위해 사탕이나 초콜릿류를 입에 넣습니다. 알타미같은 건조식품으로 허기를 채웁니다. 그래서 한 번 등반이 끝나면 몸무게가 15~20kg이 빠지는 겁니다.”

-힘들고 화날 때는.

“(이 얘기를 하면서 그는 얼굴이 상기됐다) 어떤 네티즌이 '이번 등정 때 정상을 정복하고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베이스캠프 텐트랑 물건들 다 버리고 가는 것 아니냐. 그러면 클린 등반이 아니다'는 등 비판을 했습니다. 사람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데 너무한 것 아닙니까. (불현듯 신동민 대원에게 "니가 지금 가서 수거해와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취미생활은.

“등산말고 할 게 있나요. 아! 스킨스쿠버는 한 달에 1, 2번씩 떠나요. 하늘과 맞닿은 산도 좋지만, 바닷속도 궁금하잖아요. 평소에 등산 훈련은 안 합니다. 원정가고 체력회복하는 것이 제 생활입니다.”

-향후 계획은.

“앞으로 10년 정도는 현역 산악인으로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동안 히말라야 14좌봉마다 코리안 루트를 내는 것이 새로운 목표입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없을 때는 훌륭한 후배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이 뒤를 잇겠죠.”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박영석은? 1963년 서울 출생. 오산고, 동국대 체육교육학과 학사, 석사. 한국산악회 이사, 한국대학산악연맹 이사, 대학산악연맹 등반분과기술위원회 위원. (주) 골드윈코리아 이사. 세계 최대기간 히말라야 8천m급 14좌 등정(8년 2개월), 아시아 최초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1993년), 세계최초 산악그랜드슬램 달성(2005년), 코리안 신루트를 통한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정(2009년).

출처 : summit
글쓴이 : 써미트 원글보기
메모 : 산악인 박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