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김형석의 100세 일기

빠꼼임 2020. 1. 19. 15:41

김형석의 100세 일기

100년을 살면서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조선일보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 일기]
[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 일기]
일러스트=이철원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100년을 살아오는 동안에 언제가 가장 행복했는가'이다. 대답하기 망설여지는 것은 어떤 기간을 묻는 것인지, 한 사건의 전후인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 세대가 물었을 때는 내가 겪은 사건 중의 하나를 말하고, 나이 든 사람에게는 행복했던 기간을 소개하곤 한다.

내 일생에 걸쳐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있었다면 1961년과 62년에 걸쳐 미국 대학 사회에 머물렀다가 유럽을 비롯한 세계 일주 여행을 한 기간이다. 친구인 안병욱 교수와 한우근 서울대 교수와 함께였다. 만일 그 1년 동안의 학문과 사회적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 인생과 하는 일의 소중한 일부를 갖추지 못했을 것 같다.

세계적인 대학에 머무를 수 있었고 석학들의 강의와 세미나에 동참할 수 있었다. 철학계는 물론 관심을 갖고 있던 P. 틸리히, K. 바르트, R. 니이버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들의 강의와 강연에 참여하기도 했다. 유럽 등지의 문화적 유산과 문물도 찾아볼 기회를 얻었다. 여러 날 인도를 방문한 것도 유익했으나 바이블의 고장들을 순방하는 기회도 생겼다. 한마디로 내 정신세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든 개인적인 사건 중 하나는 최근의 일이다. 7년쯤 전이었다. 충북 영동에 강연을 갔다. 청중 몇백 명이 내 강연에 심취해 주었다. 강연을 끝내고 휴게실에서 혼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노크 소리가 들려 들어오시라고 했더니 지방의 유지로 짐작되는 70대 후반의 신사였다. 나와 마주 앉은 그 손님이 "피곤하실 것 같은데 한 5분만 인사드리고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안병욱 선생 건강을 묻기에 병중이어서 외출이나 활동은 못 하신다고 했더니 그가 말했다. "워낙 고령이시니까요. 두 분 연세가 같으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안 선생님은 직접 뵈올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선생님께서 고령에도 불구하고 저희 고장까지 방문해 강연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희들 젊었을 60년대, 70년대는 정말 살기 힘들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견딜 수 있었으나 정신적 방향 상실이 그렇게 힘들 줄 몰랐습니다. 그럴 때 두 분 선생님이 계셔서 방송, 강연을 해주셨고 책도 남겨 주셔서 그 기간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느님께서 힘들어 애태우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를 위해 두 분 선생님을 보내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직접 뵈오니까 감개가 무량
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피곤하실 줄 알면서도 인사드리고 싶어 찾아 뵈었습니다."

나도 일어서서 따뜻한 인사를 나누었다. 돌아서서 나가던 그가 발걸음을 멈추더니 "안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 꼭 감사 인사를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고 했다.

나는 그 고마운 마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인사를 받을 때마다 수고의 보람에서 오는 행복을 느끼게 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26/2019042602064.html

'wh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형석의 100세 일기  (0) 2020.01.19
김형석의 100세 일기  (0) 2020.01.19
김형석의 100세 일기  (0) 2020.01.19
김형석의 100세 일기  (0) 2020.01.19
김형석의 100세 일기  (0) 2020.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