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09.01 03:02
[김형석의 100세 일기]
버스를 기다리다가 동네 사람을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참, 어제 교회에 다녀왔지요?" 묻기에 "나는 다른 일이 있어 나가지 못했는데"라고 했다.
내가 교회로 안내한 후배이다. 그는 "안 나가시기를 잘했습니다. 목사님 설교를 듣다가 좀 민망했습니다"라는 것이다. 목사님 설교는 이런 내용이었다. "노령 인구는 계속 늘어나는데 출생률은 떨어지고, 청장년들은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젊은이 한 사람이 두 늙은이를 봉양하게 될 테니까 아들딸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오래 살지 말아야겠어요. 저도 80이 넘으면 더 사는 것이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후배는 "저도 3년 지나면 80이 되는데, 교수님이 오셔서 그 설교를 들으시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다"고 덧붙였다. 함께 웃었다.
내가 교회로 안내한 후배이다. 그는 "안 나가시기를 잘했습니다. 목사님 설교를 듣다가 좀 민망했습니다"라는 것이다. 목사님 설교는 이런 내용이었다. "노령 인구는 계속 늘어나는데 출생률은 떨어지고, 청장년들은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젊은이 한 사람이 두 늙은이를 봉양하게 될 테니까 아들딸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오래 살지 말아야겠어요. 저도 80이 넘으면 더 사는 것이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후배는 "저도 3년 지나면 80이 되는데, 교수님이 오셔서 그 설교를 들으시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다"고 덧붙였다. 함께 웃었다.
버스를 타고 나 혼자 또 미소를 지었다. 지난해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서울에 사는 50대 남자가 어려서부터 아버지 친구이면서 자기를 사랑해 주던 노인에게 세배를 드리러 수원까지 갔다. 복장을 가다듬고 예의를 갖춰 공손히 엎드려 큰절을 드리면서 말했다. "백수 하시기 바랍니다!" 이전 같으면 반기면서 덕담도 하고 먼저 세상 떠난 아버지 얘기도 하셨는데,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밖으로 나와 친구인 아들에게 그 얘기를 했다. 아들이 "뭐? 백수 하시라고 그랬어? 명년이면 백수가 되셔. 1년만 더 사시라고 했구먼…"이라면서 걱정했다.
그 말을 들은 친구가 큰일 났다 싶어 다시 들어갔다. "세배를 다시 드리겠습니다. 만수무강하시기 바랍니다"고 했다. 그제야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멀리서 왔는데 놀다가 가게. 명년에 또 오게나"면서 반기더라는 얘기다.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목사의 설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 목사도 80이 되면 생각이 달라질지 모른다. 삶에 대한 애착만큼 강한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백세 이상 살게 되면 그것은 더 큰 사회문제가 된다. 인생이란 쉽게 체념할 수도 없고 욕심으로 채워지는 것도 아니다.
나 같은 사람은 더욱 처신이 곤란해진다. 나이를 자랑할 수도 없고, 후배나 젊은이들에게 죄송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은 얼마나 오래 사는 것이 좋으냐고 누가 물으면 "일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 때까지"라고 말한다.
오래전에 나는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를 쓰고 변종하 화백이 삽화를 그려 책을 낸 일이 있다. 그 화백은 암으로 투병 중에도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까지 가족의 부축을 받으면서 그림을 그리다가 별세했다. 우리에게 무엇인가 주기를 바라며 줄 수 있는 사람에게는 장수가 자랑스러운 축복일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친구가 큰일 났다 싶어 다시 들어갔다. "세배를 다시 드리겠습니다. 만수무강하시기 바랍니다"고 했다. 그제야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멀리서 왔는데 놀다가 가게. 명년에 또 오게나"면서 반기더라는 얘기다.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목사의 설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 목사도 80이 되면 생각이 달라질지 모른다. 삶에 대한 애착만큼 강한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백세 이상 살게 되면 그것은 더 큰 사회문제가 된다. 인생이란 쉽게 체념할 수도 없고 욕심으로 채워지는 것도 아니다.
나 같은 사람은 더욱 처신이 곤란해진다. 나이를 자랑할 수도 없고, 후배나 젊은이들에게 죄송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은 얼마나 오래 사는 것이 좋으냐고 누가 물으면 "일할 수 있고
오래전에 나는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를 쓰고 변종하 화백이 삽화를 그려 책을 낸 일이 있다. 그 화백은 암으로 투병 중에도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까지 가족의 부축을 받으면서 그림을 그리다가 별세했다. 우리에게 무엇인가 주기를 바라며 줄 수 있는 사람에게는 장수가 자랑스러운 축복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