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때문에 최 세무사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20년 전쯤이었을까. 세무사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90이 다 되어 보이는 손기정(1912~2002) 옹이 찾아왔다. "어디서 상금을 받았는데 세금 내는 일은 좀 도와달라"는 청이었다. 상을 주는 측에서 세금을 처리했을 테니까 신고 안 해도 된다고 했더니, "그건 나도 알아. 그래도 내가 받은 돈이니까 내고 싶다"고 해서 계산을 해보였다. 손 옹은 "그것밖에 안 되나. 더 많이 내는 방법을 알아봐 줄 수 없겠나" 하면서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이었다고 한다. 세무사는 많이 내는 규정에 맞추어 드렸다. 손 옹이 서류를 살펴보고는 흡족해하면서 "나 이게 마지막 내는 세금이야.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혜택을 얼마나 많이 받고 살아왔는데, 세금이라도 좀 많이 내면 내 마음이 편해서 그래…" 하였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세무사가 내게 "선생님도 나라가 없는 일제강점기를 사셨으니까 손 옹의 마음에 공감하시겠네요?"라고 물었다. "나는 탈북 1세대입니다. 그때 대한민국이 나를 품 안에 안아 주지 않았다면 지금도 세계 어디에선가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요"라고 답하는 내 마음도 무거웠다.
이번에 나는 평생 어느 때보다 종합소득세를 많이 납부했다. 일을 맡아 주었던 세무사는 경력이 20년 되었다는데 "백 세가 된 나이에 이렇게 일 많이 하고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분은 처음 만났다"고 할 정도였다.
지난해에는 두 곳에서 억대가 넘는 상금을 받았다. 저서 두세 권이 독자의 호응을 받았기 때문에 인세도 많았다. 강연료까지 다 합치다 보니 많은 세금(약 3000만원)을 낸 것이다. 내 일을 도와준 세무사가 "어차피 상금은 공익사업에 후원을 하기로 하셨으니 법인의 후원 영수증을 발부받으면 안 내도 될 세금이었을 텐데"라고 말했던 모양이다.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캐나다에 갔을 때 친구에게 들은 얘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김 선생, 캐나다에서 살아보니까 교회에 헌금하는 것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내가 미국 딸네 집에 갔다가 심장병으로 두 주 동안 입원했는데 캐나다 정부가 병원비를 다 지불했고요. 토론토에서 변두리 도시로 이사를 왔을 때는 시 도서관에서 한국 책 도서목록을 보내주며 '필요한 책이 있으면 더 신청하라'는 안내장이 왔어요. 김 선생 저서도 서울에서는 읽지 못하다가 여기서 읽었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캐나다 의료 체계는 다른 주로 이사하거나 해외여행 중에도 세금으로 무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올림픽에서 우승할 때 나는 대학생이었다. 마라톤 우승 장면을 친구와 같이 영화관에서 보면서 둘이서 손을 잡고 감격했다. 한국의 젊은이가 일본을 앞질러 세계를 제패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인생 전체를 대한민국에 바치고 싶었을 것이다.
내 친구는 한국이 아닌 캐나다에 가서야 세금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나도 그런 마음을 갖고 대한민국에서 몇 해 더 살아보고 싶어졌다.
90이 다 되어 보이는 손기정(1912~2002) 옹이 찾아왔다. "어디서 상금을 받았는데 세금 내는 일은 좀 도와달라"는 청이었다. 상을 주는 측에서 세금을 처리했을 테니까 신고 안 해도 된다고 했더니, "그건 나도 알아. 그래도 내가 받은 돈이니까 내고 싶다"고 해서 계산을 해보였다. 손 옹은 "그것밖에 안 되나. 더 많이 내는 방법을 알아봐 줄 수 없겠나" 하면서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이었다고 한다. 세무사는 많이 내는 규정에 맞추어 드렸다. 손 옹이 서류를 살펴보고는 흡족해하면서 "나 이게 마지막 내는 세금이야.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혜택을 얼마나 많이 받고 살아왔는데, 세금이라도 좀 많이 내면 내 마음이 편해서 그래…" 하였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세무사가 내게 "선생님도 나라가 없는 일제강점기를 사셨으니까 손 옹의 마음에 공감하시겠네요?"라고 물었다. "나는 탈북 1세대입니다. 그때 대한민국이 나를 품 안에 안아 주지 않았다면 지금도 세계 어디에선가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요"라고 답하는 내 마음도 무거웠다.
이번에 나는 평생 어느 때보다 종합소득세를 많이 납부했다. 일을 맡아 주었던 세무사는 경력이 20년 되었다는데 "백 세가 된 나이에 이렇게 일 많이 하고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분은 처음 만났다"고 할 정도였다.
지난해에는 두 곳에서 억대가 넘는 상금을 받았다. 저서 두세 권이 독자의 호응을 받았기 때문에 인세도 많았다. 강연료까지 다 합치다 보니 많은 세금(약 3000만원)을 낸 것이다. 내 일을 도와준 세무사가 "어차피 상금은 공익사업에 후원을 하기로 하셨으니 법인의 후원 영수증을 발부받으면 안 내도 될 세금이었을 텐데"라고 말했던 모양이다.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캐나다에 갔을 때 친구에게 들은 얘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김 선생, 캐나다에서 살아보니까 교회에 헌금하는 것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내가 미국 딸네 집에 갔다가 심장병으로 두 주 동안 입원했는데 캐나다 정부가 병원비를 다 지불했고요. 토론토에서 변두리 도시로 이사를 왔을 때는 시 도서관에서 한국 책 도서목록을 보내주며 '필요한 책이 있으면 더 신청하라'는 안내장이 왔어요. 김 선생 저서도 서울에서는 읽지 못하다가 여기서 읽었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캐나다 의료 체계는 다른 주로 이사하거나 해외여행 중에도 세금으로 무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올림픽에서 우승할
내 친구는 한국이 아닌 캐나다에 가서야 세금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나도 그런 마음을 갖고 대한민국에서 몇 해 더 살아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