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김형석의 100세 일기(서대문 안산의 '개구리 교향악'

빠꼼임 2020. 1. 21. 08:33

[Why] 서대문 안산의 '개구리 교향악'

조선일보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의 100세 일기]

며칠 전 일이다. 늦은 저녁때인데 전화가 왔다. 같은 동네에 사는 후배였다. 지금 서울 안산(서대문구) 입구를 산책하고 있는데, 개구리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이다. 5월 하순까지는 계속될 것 같다는 얘기다. 기회가 되면 그 개구리 소리를 들으러 와보라는 뜻이었다.

이틀 동안 계속되던 비가 그친 날 늦은 저녁에 서대문자연사박물관 맞은편 숲속으로 들어섰다. 작은 연못이 둘 있는데 그곳이 개구리들의 서식처다. 사면이 조용해지기를 10여 분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맞은쪽 숲속의 한 마리가 울어대니까, 양쪽과 뒤 습지에서도 화답하는 듯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10여 마리가 목청을 돋우어 소리를 지른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고향에서 해마다 들어오던 개구리 소리를 연상했다.

로맹 롤랑의 소설 '장 크리스토프'를 읽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젊은 음악도가 작곡가가 되려고 열중하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찾아와 "가장 위대한 교향악을 들려주겠다"면서 강가의 들판으로 이끌고 갔다. 그곳에서 하늘이 진동할 듯이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가 들린다. "아무리 위대한 음악가라고 해도 저렇게 천지를 경탄케 하는 음악을 창조해 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그는 귀띔해 준다. 그 젊은이가 훗날 제9심포니를 작곡하는 주인공으로 성장한다. 물론 지어낸 이야기다.

서대문 안산의 '개구리 교향악'
그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어려서 초여름마다 들었던 개구리들의 울음을 연상했다. 수천수만 마리의 합창이라 불러도 좋고 교향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긴 세월을 지나면서 나는 어렸을 때 심취했던 개구리 교향곡을 듣지 못했다. 고향과 더불어 사라진 옛꿈이 되어 버렸다.

그런 소리가 듣고 싶어 5월이 되면 어느 지방 저수지 부근의 논두렁길을 걷기도 하고, 충남 부여 부근을 찾아가기도 했다. 백마강 기슭에는 논이 많고 개구리들이 울어댈 것 같은 기대를 해보았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고향에서 들으면서 자랐던 개구리 교향곡은 들을 수 없었다. 농촌을 지키는 노인네들은 "농약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개구리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내가 들은 안산 연못의 개구리들도 반쯤은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문명의 혜택을 받아 긴 인생을 살았으나 문명이 주는 것보다 더 소중한 자연의 축복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개구리 소리만이 아니다. 우리의 어머니인 자연의 축복을 저버리고 사는 결과가 되었다.

내 나이 때문일까. 대학생 시절에 한 지붕 밑에 살았던 서 형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그리움이 찾아든다. 서 형은 베토벤을 사모한 음악도였다.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제9심포니의 합창곡을 들으면서 눈을 감고 싶다는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정도는 못 되지만 내 삶을 일깨워준 개구리 교향곡을 한 번 더 들어보고 싶다. 그 자연의 하모니 속에는 비참과 죽음까지도 넘어서는 생명의 강렬함이 있었던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01/20180601016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