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오군 생각이 간절했다. 20년 동안 빼놓지 않고 감사 전화를 걸어 주던 제자다. 내가 28세, 오군은 18세 때 처음 만난 사제 간이다.
오군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향인 충북 청주로 내려가 공무원을 지내기도 하고 문필가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후에는 충북대 교수가 되었다. 사회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는 사제 간의 친분이 더 두터워졌다. 한번은 서울에 와 모교인 중앙학교를 함께 거닐기도 했다. 같이 찍은 사진이 강원 양구 철학의 집에 걸려 있다. 중앙학교 때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이다.
최근에는 스승의 날에 걸려오는 전화가 대화가 되지 못하고 오군의 일방적 통화로 끝나곤 했다. 나보다도 먼저 귀가 멀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세요?" 하고 확인한 후에는 자기 얘기만 한다. 그러고는 "서울 가면 찾아뵙겠습니다" 하는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그치곤 했다. 나보다 제자가 더 빨리 늙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오군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향인 충북 청주로 내려가 공무원을 지내기도 하고 문필가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후에는 충북대 교수가 되었다. 사회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는 사제 간의 친분이 더 두터워졌다. 한번은 서울에 와 모교인 중앙학교를 함께 거닐기도 했다. 같이 찍은 사진이 강원 양구 철학의 집에 걸려 있다. 중앙학교 때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이다.
최근에는 스승의 날에 걸려오는 전화가 대화가 되지 못하고 오군의 일방적 통화로 끝나곤 했다. 나보다도 먼저 귀가 멀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세요?" 하고 확인한 후에는 자기 얘기만 한다. 그러고는 "서울 가면 찾아뵙겠습니다" 하는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그치곤 했다. 나보다 제자가 더 빨리 늙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작년이다. 내 가까운 지인이 청주에 문상을 간다고 하기에 내가 한 시간 동안 청주에서 오군을 만날 계획을 세웠다. 부인은 건강이 좋지 않아 못 나오고, 서울에 사는 따님이 친정에 들렀다가 오군과 상봉하는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약속한 장소로 갔다. 길가 2층에 있는 카페였다. 내 오른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어린애가 아버지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옆자리에 앉았다. 너무 반가워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내가 "오래 보지 못했는데, 건강이 이전만 못해 보인다"고 했더니 수긍하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면서 딸을 바라보았다. '네가 말씀 드려라' 하는 눈치였다. 따님의 설명을 들었다. 건강이 좋지 못했는데 교수님이 오신다니까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 둘은 60분이 너무 짧았다. 아마 이것이 마지막 만남일 것 같다는 예감이었다. 전화가 왔다. 서울로 갈 차가 도착했다는 것이다. 내가 오군의 팔을 붙들고 내려가 차를 탔다. 운전대에 앉아 있는 여자를 보고는 오군이 "저분은 누구세요?" 하고 물었다. 내가 대답하려고 할 때 차가 움직였다. 대답을 듣지 못한 오군은 오른손을 흔들면서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차 안에서 후회했다. '이 여자분은 내 친구야' 했더라면 오군이 얼마나 기뻐했을까. 내가 오랜 세월 병중의 아내를 돌보아 주었고 지금은 혼자인데, 왜 재혼을 안 하실까 하고 친구들과 걱정해온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한마디 거짓말을 했더라면 오군은 틀림없이 '역시 우리 선생님이 최고야. 백세에 여자 친구가 있고…'라면서 가족들과 기억에 남는 동창들에게 "나 김 선생님의 여자 친구를 보았다"면서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고도 남을 성격이었다. 또 그렇게 나를 좋아했다.
몇 달 후에 따님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그렇게 교수님을 좋아하셨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나는 약속한 장소로 갔다. 길가 2층에 있는 카페였다. 내 오른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어린애가 아버지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옆자리에 앉았다. 너무 반가워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내가 "오래 보지 못했는데, 건강이 이전만 못해 보인다"고 했더니 수긍하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면서 딸을 바라보았다. '네가 말씀 드려라' 하는 눈치였다. 따님의 설명을 들었다. 건강이 좋지 못했는데 교수님이 오신다니까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 둘은 60분이 너무 짧았다. 아마 이것이 마지막 만남일 것 같다는 예감이었다. 전화가 왔다. 서울로 갈 차가 도착했다는 것이다. 내가 오군의 팔을 붙들고 내려가 차를 탔다. 운전대에 앉아 있는 여자를 보고는 오군이 "저분은 누구세요?" 하고 물었다. 내가 대답하려고 할 때 차가 움직였다. 대답을 듣지 못한 오군은 오른손을 흔들면서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차 안에서 후회했다. '이 여자분은 내 친구야' 했더라면 오군이 얼마나 기뻐했을까. 내가 오랜 세월 병중의 아내를 돌보아 주었고 지금은 혼자인데, 왜 재혼을 안 하실까 하고 친구들과 걱정해온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몇 달 후에 따님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그렇게 교수님을 좋아하셨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