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 전후였을 것이다. 늦은 봄 따뜻한 햇볕을 즐기면서 동네 밖의 냇가에서 늦도록 놀다가 집으로 들어섰다. 몹시 시장기를 느끼고 있었다. 방문을 열려고 하는데, 어머니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와 말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장손의 생일인데 고깃국은 못 끓여도 쌀밥은 했어야죠. 조밥하고 고추장찌개밖에 없지 않아요. 몸이 약해 고생스럽게 키워온 것만 해도 억울한데…." 언제나 가난에 시달려 사는 어머니의 한풀이였다.
나는 문밖에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엄마, 나 왔어" 하면서 방으로 들어섰다. 그러면서 거짓말을 했다. "나 오늘 영길이네 집에서 놀았는데, 영길이 엄마가 내 생일이라고 이밥에 고깃국도 끓여 주어서 밥 많이 먹고 왔어." 저녁은 안 먹어도 된다며 그렇게 꾸며댔다. 어머니는 "그러면 잘됐다. 우리는 조밥에 김치만 먹으면 된다"면서 아버지와 식사를 했다.
나는 거짓말의 죗값을 치러야 했다. 배가 고프니까 잠도 오지 않았다. '내 생일만 아니었으면 거짓말도 안 하고 굶지도 않았을 텐데….' 오히려 생일이 원망스러웠다.
그런 일 때문일까. 나는 '생일 같은 것은 잊어버리자. 생각을 안 하면 그뿐이지'라는 생각으로 긴 세월을 살았다. 다른 사람의 생일에도 애정 있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38선을 넘어 탈북해 서울 중앙중고등학교에 부임한 지 1년쯤 지났을 때였다. 내 담임 반 학생 두세 명이 저녁 시간에 집으로 찾아왔다. 그러면서 "선생님 생일은 잘 모르겠으나 크리스마스가 되어 작은 선물을 가져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작은 상자를 열어보았더니 손목시계가 들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린 제자들이 시계도 없이 가난하게 지내는 내 모습을 보고 돈을 모아 성탄 선물을 했던 것이다. 그런 애정 어린 선물을 받은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나는 생일 선물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들, 특히 내 애정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과 주변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내 생일은 양력으로 4월에 있다. 해마다 4월 한 달은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선물을 하자는 생각을 했다. 내 생일을 축하하듯이 사랑의 선물을 나누어 주자고 생각했다.
지난달에 강연을 14회 했다. 금년 가을에 출간하기로 계획했던 원고 뭉치도 출판사로 보냈다. 어쩌면 나의 마지막 저서가 될지 모른다. 생일이 있는 4월까지는 끝내고 싶었던 원고였다.
어머니가 나에게 베풀고 싶었던 사랑,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사랑의 작은 한 부분이라도 남겨주었으면 하는 정성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내가 나누어 준 사랑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00세를 살았는데 "더 오래 사시라"는 축하를 받고 있다.
"하나밖에 없는 장손의 생일인데 고깃국은 못 끓여도 쌀밥은 했어야죠. 조밥하고 고추장찌개밖에 없지 않아요. 몸이 약해 고생스럽게 키워온 것만 해도 억울한데…." 언제나 가난에 시달려 사는 어머니의 한풀이였다.
나는 문밖에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엄마, 나 왔어" 하면서 방으로 들어섰다. 그러면서 거짓말을 했다. "나 오늘 영길이네 집에서 놀았는데, 영길이 엄마가 내 생일이라고 이밥에 고깃국도 끓여 주어서 밥 많이 먹고 왔어." 저녁은 안 먹어도 된다며 그렇게 꾸며댔다. 어머니는 "그러면 잘됐다. 우리는 조밥에 김치만 먹으면 된다"면서 아버지와 식사를 했다.
나는 거짓말의 죗값을 치러야 했다. 배가 고프니까 잠도 오지 않았다. '내 생일만 아니었으면 거짓말도 안 하고 굶지도 않았을 텐데….' 오히려 생일이 원망스러웠다.
그런 일 때문일까. 나는 '생일 같은 것은 잊어버리자. 생각을 안 하면 그뿐이지'라는 생각으로 긴 세월을 살았다. 다른 사람의 생일에도 애정 있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38선을 넘어 탈북해 서울 중앙중고등학교에 부임한 지 1년쯤 지났을 때였다. 내 담임 반 학생 두세 명이 저녁 시간에 집으로 찾아왔다. 그러면서 "선생님 생일은 잘 모르겠으나 크리스마스가 되어 작은 선물을 가져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작은 상자를 열어보았더니 손목시계가 들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린 제자들이 시계도 없이 가난하게 지내는 내 모습을 보고 돈을 모아 성탄 선물을 했던 것이다. 그런 애정 어린 선물을 받은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나는 생일 선물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들, 특히 내 애정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과 주변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내 생일은 양력으로 4월에 있다. 해마다 4월 한 달은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선물을 하자는 생각을 했다. 내 생일을 축하하듯이 사랑의 선물을 나누어 주자고 생각했다.
지난달에 강연을 14회 했다. 금년 가을에 출간하기로 계획했던 원고 뭉치도 출판사로 보냈다.
어머니가 나에게 베풀고 싶었던 사랑,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사랑의 작은 한 부분이라도 남겨주었으면 하는 정성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내가 나누어 준 사랑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00세를 살았는데 "더 오래 사시라"는 축하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