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김형석의 100세 일기(너무 오래 산 것 같기도 하고)

빠꼼임 2020. 1. 21. 08:41

김형석의 100세 일기

[Why] 너무 오래 산 것 같기도 하고

조선일보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의 100세 일기]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제자, 한참을 내 얼굴 쳐다보더니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50년 전 김형석 교수님이랑 꼭 같이 생긴 사람을 봤어"


김형석의 100세 일기 일러스트
해마다 늦은 가을이 되면 연문인상(延文人賞) 시상식이 있다. 12회 시상식에 참석했을 때 일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대학 때 제자였던 연극인 오현경도 6~7명 탑승자 가운데 끼어 있었다. 처음부터 내 얼굴만 열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목례를 하면서 마주 보았다. 그래도 그 제자는 내 표정만 살피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에는 여러 사람 사이에 섞여 나도 정해진 좌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상식이 끝나고 길가로 나섰을 때였다. 한 제자가 주차장으로 가면서 "선생님 엘리베이터 안에서 오군을 보셨어요?"라고 물었다. 내가 "나를 쳐다보기만 하고 인사는 하지 않더라"고 했더니 그 제자가 말했다. "그래서 그랬구나. 오군이 우리들 동창이 있는 곳으로 뛰어오더니 '나 지금 엘리베이터 안에서 김형석 선생님하고 꼭 같이 생긴 사람을 보았어. 누군지 모르겠는데, 50여 년 전의 김 교수님과 똑같이 생겼데'라면서 흥분해 있더라고요"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다른 동창들이 "김 교수님이 아직 살아계셔"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 어떻게 되나. 우리가 이렇게 늙었는데…"라면서 놀라더라고 했다. 오군은 최현배, 김윤경, 정석해 교수님들과 함께 교단에 섰던 나를 그분들과 비슷한 나이로 보았던 모양이다. 그분들은 40~50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난겨울에 어느 지방에 강연을 갔다. 70대쯤으로 보이는 초로의 부인이 찾아와 "선생님, 제가 김 아무개 목사 아내입니다. 선생님께서 지방까지 오실 리는 없고 아마 동명이인이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뵈오니까, 아직 살아 계셨군요. 저는 지금쯤은 하늘나라에 목사님과 함께 계실 줄 알았는데"라면서 감격스러운 인사를 했다. 옆에 함께 서 있던 친구 분도 "저도 설교를 들으면서 틀림없는 교수님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기는 배화여고 학생 때 내 설교를 들었다는 것이다. 먼저 인사했던 사모(師母)는 "다시 태어나서 오신 것같이 반갑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무어라고 말하기가 어색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그렇게 쉽겠어요? 몇 해 더 세상에 남아 있다가 하늘나라로 가야지요?" 하면서 웃었다. 두 부인은 "오래오래 저희 곁에 계셔 주세요. 오늘
같이 말씀도 전해 주시고요" 인사를 하면서 내 곁을 떠나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밤 나 혼자 생각했다. 이제 곧 99세(白壽)가 되는 생일을 맞게 된다. 여러분이 내게 하는 인사가 모두 비슷하다. '좀 더 오래 우리 곁에 계셔주세요'라는 마음들이다. 왜 그런지 마음이 무거워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껴주는 동안 그분들 옆에 머무를 수 있다면 감사하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20/20180420018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