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100세일기]
지난 9월 서울법원 종합 청사에서 강연을 했다. 연말에는 대검찰청 초청 강연회가 있었다. 인상 깊은 추억으로 남은 자리였다. 옛날 내가 대학생일 때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다나카(田中耕太郞)라는 일본 법철학 교수의 강연이었다. 철학과에서는 들을 수 없는 강연이어서 더욱 감명 깊었는지도 모르겠다.
원시사회나 씨족 또는 부족사회에는 법률 관념이 없었다. 씨족이나 부족의 수장들이 재판을 맡았다. 그러다가 국가사회가 되면서 법이 필요해졌다. 그 기본과 목적은 사회가 누리고 있는 윤리적 규범이었다.
법의 집행은 정부나 삼권분립 사회에서는 사법부가 주관했다. 그러나 중심 기반은 그 사회가 살면서 지향하는 도덕 가치가 차지했다. 법은 윤리적 가치를 위해 사회악을 막는 기능을 담당했다. 도덕 가치가 법을 탄생시켰고, 도덕은 법보다 더 높은 선(善)의 가치를 지향했다.
그렇다면 선이란 무엇인가? 법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묻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윤리적 규범이 요청되는 내용이다. 공자의 가르침이 법보다 존엄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이유와 같다.
도덕적 가치와 규범은 무엇을 근거로 삼는가. 어떤 권위에 대한 존엄성이다. 윤리와 도덕의 근거와 목표는 권위가 없으면 성립되지 못한다. 그런 권위의 주체는 양심일 수도 있고 인격의 가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권위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인간 상호 간의 존엄성이다. 그 배후에는 예로부터 종교적 신앙이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으며 역사악(歷史惡·나치즘을 비롯해 역사에 등장한 거대한 악)과 인간의 운명은 더 높은 차원의 권위에 의존하게 된다는 결론이었다.
나는 그때 그 강연을 들으면서 법의 목적은 우리 삶을 불행과 고통으로 유인하는 사회악을 배제하는 데 있으나 도덕은 인간 행위의 가치와 행복을 높여주는 더 숭고한 차원의 가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일 인간의 영원한 가치가 존재한다면 종교적 신앙을 동반하는 권위 의식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수십년의 세월이 지났다. 다나카 교수가 종전(終戰) 후에 대법원장이 되었을 때 소화(昭和) 왕과 친교를 맺었고, 다나카 교수의 영향을 받아 일왕이 기독교로 귀의하지 않는가 하고 일부 국민이 의구심을 가졌다는 글을 읽었다. 일본 왕은 세 가지를 갖지 않는다. 이름이 있을 뿐 성씨(姓氏)가 없다. 특정된 직업이 없다. 그리고 종교 신앙을 갖지 않는다. 일부 국민은 '신도(神道)이즘'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나카 교수는 천주교인이었고 국민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로 생애를 보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인품을 갖춘 정신적 지도자가 많았으면 좋겠다. 대학에 총장의 존경을 받는 교수가 많아야 하듯이 대통령 주변에도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 있었으면 좋겠다.
원시사회나 씨족 또는 부족사회에는 법률 관념이 없었다. 씨족이나 부족의 수장들이 재판을 맡았다. 그러다가 국가사회가 되면서 법이 필요해졌다. 그 기본과 목적은 사회가 누리고 있는 윤리적 규범이었다.
법의 집행은 정부나 삼권분립 사회에서는 사법부가 주관했다. 그러나 중심 기반은 그 사회가 살면서 지향하는 도덕 가치가 차지했다. 법은 윤리적 가치를 위해 사회악을 막는 기능을 담당했다. 도덕 가치가 법을 탄생시켰고, 도덕은 법보다 더 높은 선(善)의 가치를 지향했다.
그렇다면 선이란 무엇인가? 법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묻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윤리적 규범이 요청되는 내용이다. 공자의 가르침이 법보다 존엄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이유와 같다.
도덕적 가치와 규범은 무엇을 근거로 삼는가. 어떤 권위에 대한 존엄성이다. 윤리와 도덕의 근거와 목표는 권위가 없으면 성립되지 못한다. 그런 권위의 주체는 양심일 수도 있고 인격의 가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권위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인간 상호 간의 존엄성이다. 그 배후에는 예로부터 종교적 신앙이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으며 역사악(歷史惡·나치즘을 비롯해 역사에 등장한 거대한 악)과 인간의 운명은 더 높은 차원의 권위에 의존하게 된다는 결론이었다.
나는 그때 그 강연을 들으면서 법의 목적은 우리 삶을 불행과 고통으로 유인하는 사회악을 배제하는 데 있으나 도덕은 인간 행위의 가치와 행복을 높여주는 더 숭고한 차원의 가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일 인간의 영원한 가치가 존재한다면 종교적 신앙을 동반하는 권위 의식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수십년의 세월이 지났다. 다나카 교수가 종전(終戰) 후에 대법원장이 되었을 때 소화(昭和) 왕과 친교를 맺었고, 다나카 교수의 영향을 받아 일왕이 기독교로 귀의하지 않는가 하고 일부 국민이 의구심을 가졌다는 글을 읽었다. 일본 왕은 세 가지를 갖지 않는다. 이름이 있을 뿐 성씨(姓氏)가 없다. 특정된
다나카 교수는 천주교인이었고 국민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로 생애를 보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인품을 갖춘 정신적 지도자가 많았으면 좋겠다. 대학에 총장의 존경을 받는 교수가 많아야 하듯이 대통령 주변에도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