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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의 100세 일기(보험회사 직원은 나를 100세라고 믿지 않는다)

빠꼼임 2020. 2. 1. 19:06

보험회사 직원은 나를 100세라고 믿지 않는다

조선일보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19.06.01 03:00

[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 일기]

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모든 남성은 두 여성의 사랑으로 자라고 행복을 누리면서 살게 된다. 어머니와 아내의 사랑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결혼 전에는 어머니의 보호와 배려가 있었고, 그 후에는 아내의 도움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 기간에 얻은 교훈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그 사랑이 미미한 것 같아도 그것이 타고난 모성애임을 깨닫게 된다.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어머니가 손님에게 항상 하는 말씀이 있었다. "우리 큰아들은 나를 닮았으면 키도 크고 건강했을 텐데 저희 아버지를 닮아서 저렇게 태어났어요"라는 변명이다. 그러다가 50대 후반이 되자 "우리 큰아들은 왜소하고 약해 보이지만 아버지보다 나를 닮았기 때문에 건강은 해요. 앓지 않고 일도 많이 합니다"라고 은근히 자랑하곤 했다.

내 아내도 그 점은 비슷했다. 학창 시절에 만나 오래 가난과 싸워야 했다. 40대 후반부터는 "우리가 얼마나 가난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 덕택으로 이만큼 살게 됐잖아요. 다른 여자와 결혼했으면 이렇게 당신이 행복했겠어요?"라고 했다. 아내는 음식 솜씨가 없었다. 그래도 내가 "오늘은 김치찌개가 맛있는데?" 하면서 눈치를 살피면 "당신이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일하는 것은 다 내 은혜인 줄 아세요. 다른 여자 만났으면 어쩔 뻔했어요"라면서 좋아했다. 나는 속으로는 웃으면서도 "그러기에 항상 감사하고 있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 꾸며댄 말이 아내를 행복하게 하니까.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았다. 부족하기는 해도 그 마음은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1년 동안 미국에 혼자 연구교수로 갔을 때다. 떠나 보낸 날 저녁에 아내가 애들에게 "아버지를 보내고 나니까, 어린애 혼자 보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해서 애들이 다 웃었다는 것이다. 아무도 없을 때는 나에게 "당신은 내 남편이기보다 가끔은 막내아들 같다"고 했다. 웃을 수도 없고 웃어서도 안 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아내가 남겨준 한 가지 고마운 일은 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아주머니가 보험회사의 모집원이 되면서 간청해 오는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S생명보험에 가입한 것이다. 얼마 안 되는 액수의 종신보험이었다. 아내가 계속 그 배당금을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아내 대신 내가 수혜자가 되었다. 해마다 5월 말이 되면 내가 100만원씩 받으러 간다. 어제가 바로 그날이었다. 납입한 보험금은 얼마 되지 않았는데, 100세가 되도록 받기가 미안하기도 하고, 담당 여직원이 나를 본인으로 믿어주지
않아 걱정이다. 초등학교 입학 때 구두 시험을 보는 기분이 된다. 본인 확인이 미안한지 여러 가지를 물어본다. 절차가 끝났을 때, "명년에는 100세가 넘는데 그래도 계속 와도 되는가요?" 물으면서 함께 웃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고마워. 용돈을 챙겨줘서"라고 중얼거린다. 마치 아내가 하늘에서 '내 사랑이 얼마나 고마운지 아셨지요?'라며 웃는 것 같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31/20190531018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