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품정리인… 천국으로의 이사를 도와드립니다
조선일보
입력 2020.08.15 03:00 | 수정 2020.08.15 05:51
[아무튼, 주말]
[남정미 기자의 정말]
국내 처음 유품 정리 소개…
김석중 키퍼스 코리아 대표
"아! 아저씨들은 천국으로의 이사를 돕는 사람이구나."
일본 최초의 유품 정리 회사 키퍼스를 만든 요시다 다이치(57) 대표를 보고 동네 아이가 외쳤다. 그는 고인의 물품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아저씨 뭐 하고 있느냐"는 아이의 질문에 '유품 정리'라는 말은 어려울 것 같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고 답했는데, 아이의 눈에는 이 모습이 '천국으로의 이사'로 보인 모양이다. 요시다 대표는 이후 유품정리인이 누구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천국으로의 이사를 돕는 사람'.
김석중 대표는 2006년부터 15년째 ‘천국으로의 이사’를 돕고 있다. 고인이 남긴 물품을 정리하는 일이다. ‘유품은 쓰레기가 아니다’가 그의 첫 번째 신조. 사진 속 캐리어도 김 대표가 현장에서 발견한 유품이다. 고시원에서 숨진 27세 대학생이 여행 티켓과 함께 남겨놓은 것이다. 그는 6년째 이 캐리어와 함께 유품 정리 현장을 다닌다. 상자에 ‘귀중품’이라고 적혀 있다. / 부산=이신영 영상미디어기자
김석중(51) 키퍼스 코리아 대표는 천국으로의 이사를 15년째 돕는 유품정리인이다. 국내에 처음으로 유품 정리 서비스를 도입한 사람이자, '누가 내 유품을 정리할까' '유품정리인은 보았다!' 등 유품 정리에 관한 책 두 권을 번역하고 썼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정말 그럴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이들은 안다. 사람이 남기는 것이 이름만은 아니라는 것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 살면서 도구를 사용하고, 기록을 남기고 간다. 만약 오늘 우리가 천국으로 이사를 한다면, 오늘 내 물건이 유품(遺品)이 된다면…. 누가 내 유품을 정리할까.
유품은 쓰레기가 아니다
―유품 정리가 뭔가요.
"유품은 소유자가 사망하고 난 후 '남은 것', 고인이 어떻게 할 수 없어 누군가 정리를 도와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치운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저희의 첫 번째 신조가 '유품은 쓰레기가 아니다'입니다. 유품 정리하는 사람을 쓰레기 처리하는 사람으로 본다면, 유품은 쓰레기가 되고 고인은 쓰레기를 남겨 놓고 간 사람이 되죠."
―어떤 게 유품입니까.
"그 사람과의 추억이 깃들거나, 기억하고 보존할 만한 물건이 유품입니다. 대다수의 유족이 지금 당장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동산 임대 보증금 같은 큰돈이 먼저 보이고, 당장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물건부터 찾습니다. 그러나 세탁기, 냉장고는 그냥 남아 있는 물건일 뿐이에요. 생일날 선물 받은 소중한 지갑,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르는 문패, 처음 1등을 하고 받은 상장…. 이런 물건의 가치는 돈으로는 평가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유품 정리를 잘할 수 있나요.
"사실 유족이 직접 하면 가장 좋습니다. 유품 정리는 추억을 정리하는 일이자, 고인에 대한 원망이나 오해가 있다면 그걸 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어머니랑 갈등이 심한 의뢰인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셔서 유품 정리를 하는데, 어디에 뭐가 있는지 딸보다 근처 사는 이웃이 더 잘 알 정도입니다. 그런데 고인이 마지막까지 사용한 재봉틀에는 만들다 만 딸 옷이 있었습니다. 냉장고에는 딸 이름이 붙어 있는 과일청이 있었어요. 딸 주려고 만들었는데, 결국 못 주고 돌아가신 거죠. 의뢰인이 너무 많이 울어서 정리를 제대로 못 할 정도였습니다. 늦었지만 유품 정리를 통해 엄마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좋은 기회를 제가 가지면 안 되잖아요. 유족이 가져야죠."
―유족이 키퍼스 없이 유품을 정리한다면,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요즘은 사진을 찍어도 출력해 놓지 않습니다. 디지털 기기 안에는 엄청난 자료가 들어 있어요. 배터리가 꺼져 있고, 최신형이 아니더라도 휴대전화나 카메라 등은 챙겨야 합니다. 귀중품을 정리할 때는 반드시 베갯잇 속을 보세요. 어르신 중에는 귀중품을 머리맡에 두는 분이 많습니다. 장판 아래도 확인해 보고, 액자 뒤도 뜯어보시고요. 부모님이 오래 간직한 친구, 친척 전화번호는 버리지 마세요. 없애고 나면 나중에 연락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다시 살 수 있는 가구나 물품은 버려도 괜찮습니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 지금 판단 내리기가 어려운 물품은 일단 상자에 넣어두세요."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지인의 부친 유품을 정리해준 적이 있습니다. 문패며 앨범, 학교 졸업장까지 여러 유품을 정리해 건네줬는데, '이걸 왜 주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필요 없으면 내가 가지고 있을게' 하고 놔뒀다가, 6~7년 후에 다시 줬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왜 거기 있느냐. 너무 고맙다'고 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고인이 돌아가신 바로 그해에는 뭐든 무조건 없애려고만 합니다. 그러다 첫 제사를 지내고, 그다음 해 제사를 지내면서 생각합니다. '그때 그건 어딨지?' 그래서 유품 정리가 중요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찾을 텐데, 그때 가서 후회하니까요."
김 대표는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 살면서 도구를 사용하고 기록을 남긴다”며 “이걸 어떻게 할 건지 한번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45세부터 준비해 50세 이상은 반드시 ‘내가 죽은 다음의 일’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그는 권한다. / 부산=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천국으로의 이사를 돕는 사람
―어떻게 유품정리인이 됐나요.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다가 무역회사를 차렸습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회사 규모를 더 키우던 중, 젊은 직원 한 명이 사망했습니다. 사고사였는데 업무 중 재해는 아니라서, 보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혔습니다. 청년이 아깝게 죽었는데 보험금만 따지는 현실이 좀 서글프더군요. 돈은 많이 벌었지만 이렇게 일하는 게 맞는지, 인생에 대한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 무렵 일본 NHK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습니다. 요시다 대표가 나와 유품을 정리하는 내용이었어요. 거기서 '천국으로의 이사'라는 말을 듣는데, '탁' 하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어떤 점이 그랬나요.
"당시 사망한 우리 직원을 수습할 때, 유류품 중에서 회사 차 키가 나왔어요. 회사 대표로서 젊은 아들을 먼저 보낸 부모를 만나 그 열쇠를 받아 와야 하는데…. 그 순간이 형벌과도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에서는 유품 정리를 '천국으로의 이사'라고 하니까, '아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었던 거죠. '저런 일을 내가 좀 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요시다 대표에게 무작정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답장이 왔나요.
"아니요(웃음). 3번 이메일을 보냈지만, 모두 답장을 못 받았습니다. 그러다 일본에 사는 지인의 도움으로 키퍼스 후쿠오카 지점장을 소개받아, 요시다 대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왜 유품정리인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듣더니, 로열티도 받지 않고 한국에서 키퍼스 이름을 사용해 일해보라고 하더군요."
김 대표는 2006년부터 3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키퍼스 연수생으로 생활했다. 라면 상자 한 개 분량의 원룸을 정리하는 일부터, 대기업 회장님의 집무실 유품 정리까지 다양한 현장에서 일을 배웠다. 2010년 그는 운영하던 무역회사의 이름을 키퍼스 코리아로 바꾸고, 국내에 처음으로 유품 정리 서비스를 도입했다.
그가 한국에서 제일 처음 의뢰받은 곳은 고인의 사인이 자살인 현장. 경비원은 작업 차량이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것부터 막았다. 차량 외부에 '유품 처리'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집주인이 '우리 집에서 일어난 일을 광고하는 것이냐'며 항의했다. 결국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유품이라는 글자를 두꺼운 종이로 가린 뒤 손수레로 물건을 운반하며 첫 현장을 정리했다.
―유품정리인으로 지내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결국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한 태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죽음을 어둡고 불길하다고 생각하면 찝찝하고, 꺼릴 수밖에요. 저도 예전엔 상가(喪家)에 조문 다녀오면, 대문 앞에서 집 안에 있는 사람이 뿌려주는 굵은 소금을 맞아야만 집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의 삶의 방식이나 기술 등을 알 수 있는 건, 결국 먼저 간 사람의 유품을 통해서입니다. 박물관에 있는 수많은 물건, 문화재들이 생각해보면 다 유품입니다. 실제 일본은 세계문화유산을 지정해 보호하는 유네스코(UNESCO) 위원이 유품 정리업체 고문으로 있어요. 유명 예술가는 사후에 작품이 더 비싸게 팔리고, 골동품도 고가에 거래되잖아요. 유품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책에서 '삶을 스스로 포기한 젊은 청춘이라면 사진으로라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썼습니다.
"27세 대학생이 고시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현장을 가보니 운동할 때 먹는 단백질 파우더 두 통이 있더군요. 그 중 한 통은 뜯지도 않았어요. 해외여행 가려고 비행기 예약해 놓고, 여행용 캐리어도 준비해 놓았더군요. 이 아이는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이걸 다 남겨 놓고 죽었을까…. 비슷한 또래의 딸아이를 키우는데 마음이 너무 아파 펑펑 울었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딱히 목숨을 끊을 이유가 없는 것 같지만, 요즘 아이들이 가지는 압박감은 또 옛날과는 다른 듯합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해, 아예 삶을 놓아버리는 것 같아요. 점차 이런 일이 많아진다는 게 두렵습니다."
―캐리어는 어떻게 됐나요.
"가족들은 현장에 와보려고도 하지 않고, 캐리어도 필요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차마 아직 바퀴도 닳지 않은 그 캐리어를 버릴 수가 없어,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유품정리인이 본 세상
키퍼스 코리아는 사업 초창기엔 승승장구했지만, 유품 정리가 '청소'로 왜곡되면서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그는 "물건을 없애는 데만 초점을 맞추거나, 돈 되는 것만 골라서 파는 목적으로 (유품 정리 서비스가) 양분돼 버렸다"며 "그런 업체들과 시간과 가격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었다"고 했다. 99㎡(약 30평) 집의 유품 정리를 키퍼스 코리아에 맡기면, 약 300만원의 견적이 나온다. 경쟁 업체 중에는 키퍼스 코리아보다 70% 이상 저렴하게 견적을 내주는 곳도 있었다. 김 대표는 결국 2018년 유품 정리 서비스를 접었다가, 2019년 같은 이름으로 재창업했다. 그는 부산 부경대의 창업지원센터에 작은 사무실을 얻은 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키퍼스 노트'를 온라인상에 구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왜 다시 이 일입니까.
"제가 처음 한국에 이걸 소개했는데, 왜곡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기 힘들었습니다. 이걸 퍼뜨려놓고 안 할 수는 없잖아요. 유품 정리가 왜 중요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키퍼스 노트는 어떤 건가요.
"죽기 전에 유품 정리를 예약하고 싶다는 분들의 연락을 종종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이렇게 말해요. '예약했는데 제가 먼저 죽으면 어떡합니까?(웃음)'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유언부터 재산 현황,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아이디·비밀번호, 반려견 유무 등을 세세하게 쓰게 했어요. '이걸 남겨 놓고 돌아가시면, 만약 제가 살아있으면 이대로 해 드리겠습니다' 하고요. 유품 정리 예약을 하고 싶다는 건, 사실 지금 너무나 불안하다는 뜻입니다. 실제 돈을 받지도 않고, 법적 효력도 없지만, 안심시켜 드릴 목적으로 이를 쓰게 했습니다. 나중에는 책처럼 제본해서 무료로 나눠 드렸는데 돈도 많이 들지만, 이걸 찾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서 디지털화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를 종활(終活)이라고도 합니다. 웰다잉이 내가 잘 죽는 문제라면, 종활은 '나 죽은 다음에 일어날 일을 어떻게 할래' 하고 묻는 거예요."
―어떻게 하는 게 좋습니까?
"일단 스스로가 내가 죽고 난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 살면서 도구를 사용하고, 기록을 남기고 갑니다. 내 일기장, 아무한테도 알리고 싶지 않다고 하면 파쇄해서 없애야 합니다. 이걸 안 없애면 나는 평생 꼭꼭 숨길 거라고 했는데, 밝혀지게 되는 거예요. 이건 정말 남겨놨으면 좋겠고, 다른 사람에게 던져줘야 할 메시지가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거라고 생각해서 버리는 경우도 많아요. 이런 걸 한번만 생각해보면 '이건 누구한테 줘야겠다' '이건 미리 해야겠다'와 같은 순서가 정해집니다."
―언제부터 하는 게 좋을까요.
"45세부터 준비해서 50세 이상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봅니다. 장례식장에 가면 고인이 몇 세에 돌아가셨는지 나옵니다. 거기서 딱 한 번만 자기 연령대의 사람을 본다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이걸 유품정리인이나 장례지도사만 매일 본다는 게 아쉽습니다."
―유품정리인이 보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유품정리인은 매번 죽고 난 이후의 결과만 봅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경우가 많아요.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옵니다. 그걸 직시하고, 사람들과의 이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지금 주변에 있는 사람하고 어떻게든 즐겁게 지낼 수 있고, 좋은 기억으로 남을 유품도 많이 만들 수 있으니까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14/20200814026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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